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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서 시커멓게 멍들어도…스토킹 처벌 10만원 때와 뭐가 달라졌나

신당역 스토킹살인 1주기에 인천에서도 스토킹살인… 친밀성 핑계로 가해자 봐주고 피해자 보호 못하는 수사기관, 법원 등 바뀌어야
등록 2023-09-16 10:54 수정 2023-09-17 08:25
1년 전인 2022년 9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1년 전인 2022년 9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21년 3월 김태현이 자신이 스토킹하던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일가족을 살해했을 때, 스토킹 처벌은 범칙금 최대 10만원에 그쳤다. 이렇게 스토킹에 기반한 강력사건이 이어지자, 20여 년 표류하던 ‘스토킹처벌법’이 같은 해 10월 제정·시행됐다. 드디어 국가가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해 개입하겠다고 선언하니,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언어로 표현하고 피해 구제와 회복을 위해 국가기관을 찾았다. 스토킹 112신고 건수는 법 시행 전인 2021년 3월 328건에서 법 시행 직후 11월 3140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 1~8월 신고 건수는 2만1815건, 하루 평균 90건이다.(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이 수치는 법 시행 뒤 스토킹범죄가 늘었다기보다 국가가 개입하기 전 묻혀 있던 범죄 피해가 비로소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스토킹범죄 중 실형 받지 않은 경우 95%

2022년 9월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살인 사건’ 피해자도 사법시스템으로 피해를 구제받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흉기를 준비해 자신의 일터로 찾아온 전주환에게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국가를 믿었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이 여전히 스토킹을 ‘개인 문제’로 취급하며 안일하게 대응한 탓이다.(제1433호 ‘이 사회와 정부는 피해자 보호할 의지가 있나’ 참조) 나 역시 스토킹 피해자였기에 피해자의 고통을 일부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사건 다음날 신당역을 찾아 피해자를 추모하며 그의 몫까지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지난 1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현재 스토킹범죄는 징역 3년 이하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 선고가 가능하지만, 처벌은 미흡하다. 한나라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2023년 1~5월 스토킹범죄(단일범죄)로 기소돼 판결이 확정된 사건 385건을 분석해보니 실형은 5.4%(21건)에 그쳤다.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33%(126건)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이 27%(106건)였으며 공소기각도 32%(122건)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과거 교제한 사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를 명시한 판결 등을 고려하면 법원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친밀성, 범행 기간, 재범 위험성 등의 선해를 토대로 선처를 남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023년 1~5월 1심이나 항소심 결과가 나온 스토킹범죄 1295건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밀한 파트너(전·현 연인, 배우자 등)인 경우가 58%(748건)이며, 스토킹이 살인·강간 등 중대범죄와 연결된 43건 중에선 친밀한 관계가 79%(34건)였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오히려 그 친밀성을 핑계로 국가 개입 범위를 축소하려는 태도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피해자 의사를 내세워 피해자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안전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여러 사례가 있음에도 국가 개입의 적절한 시기와 범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도 시스템 불신으로 이어진다.

결국 스토킹범죄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안일한 대응은 “젠더 기반 폭력으로서의 성질과 친밀성이 고려되지 않은 스토킹의 법적 모델과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불일치”(김정혜, ‘강압적 통제로서 친밀한 파트너 스토킹의 특성과 대응 방향’, 2023년)로 규정할 수 있고, 일터에서 발생한 1년 전 사건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7월 인천에서 발생한 스토킹살인 사건 피해자가 생전 가해자 설아무개씨에게 폭행당해 팔뚝이 멍든 모습. 유족 제공

지난 7월 인천에서 발생한 스토킹살인 사건 피해자가 생전 가해자 설아무개씨에게 폭행당해 팔뚝이 멍든 모습. 유족 제공

설씨의 차가 출근하는 피해자의 차를 위협적으로 따라오는 모습. 유족 제공

설씨의 차가 출근하는 피해자의 차를 위협적으로 따라오는 모습. 유족 제공

법 제정 때부터 ‘예견된 구멍’ 손봐도 한계 여전

스토킹처벌법 제정 때부터 지적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7월11일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다.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어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양형위원회가 스토킹범죄를 양형기준 설정 대상 범죄로 의결하며 2024년 양형기준 시행도 예고했다. 그러나 개정안도 스토킹범죄 유형을 열거 형태로 제한해 온·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이고 위험한 스토킹범죄 유형에 대응하기 어렵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삭제했지만 그와 유사한 한계를 가진 잠정조치와 사전심문의 검토가 부족해, 자칫 피해자 의사를 내세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로 변질할 가능성도 남았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 경찰이 직권으로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뒤 2023년 7월까지 11%가량의 위반율을, 법원 직권으로 서면경고·접근금지·구금 등을 명할 수 있는 ‘잠정조치’는 같은 기간 8%가량의 위반율을 기록했다.(권인숙 의원실) 위반이 이어지다 피해자가 살해되는 사건들도 발생했다. 2023년 7월17일 인천에서 스토킹으로 고통받던 피해자가 어머니와 어린 딸이 함께 있던 자신의 주거지에서 살해된 사건도 그랬다.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통과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설씨에게 법원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유족 제공

설씨에게 법원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유족 제공

이 피해자도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잠정조치 등 각종 피해자 보호 조치를 활용했지만 소용없었다. 9월19일 첫 재판을 앞둔 가해자는 ‘보복살인’이 아닌 ‘(일반)살인’으로 기소돼, 자신의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최소 징역 5년 이상인 살인죄에 비해 보복살인은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됐다.(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피해자 유족이 최근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며 수사기관 대응에 대한 성토를 이어간 배경에는 현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함께 피해자 어머니와 딸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스토킹은 피해자 주변으로 피해가 확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족은 왜 피해자 이름 공개했나

신당역 사건 가해자 전주환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며 인천지법에서 진행하는 이 사건 재판도 모니터링할 것이다. 신당역 10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도 다시 찾을 예정이다. 피해자는 잊으려 해도 사회는 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심지어 이 사건들은 피해자가 기억하고 변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사회는 이에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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