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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늘 우리 안에 있었다’…100년 전 혁명의 해

등록 2023-09-15 22:21 수정 2023-09-21 15:53
영화 <밀정> 포스터. 영화사 하르빈 제공

영화 <밀정> 포스터. 영화사 하르빈 제공

100년 전 1923년은 일제에 대항한 무장투쟁이 활발하던 때였습니다.

‘폭발물 비밀 반입 사건’이 적발된 것은 1923년이었습니다. ‘5월 사건’, 주동자가 황옥이라 ‘황옥 사건’이라 부릅니다. ‘의열단 사건’으로도 부릅니다. 이때 처음 무장투쟁단체 의열단 이름이 알려집니다. 파괴용, 방화용, 암살용으로 나뉜 이 폭탄은 36개나 됐습니다. 폭탄은 기성품이 아니라 사제였습니다. 갸름한 술병처럼 생긴 ‘암살용’ 폭탄에는 황린이 담겨 있었습니다. 폭발해서 파편이 튀어 황린이 인체에 닿으면 피부가 타들어가게 됩니다. 김원봉 의열단 단장은 해방 뒤 박태원(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저자이자 언론인)과 한 인터뷰에서 ‘마쟈르’라는 헝가리 청년이 폭탄을 제조했다고 말합니다.(임경석, ‘암살용 사제폭탄과 함께 등장한 이름 의열단’)

‘종로경찰서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난 때도 1923년이었습니다. 범인이 숨어 있다는 첩보를 받고 조선총독부 경찰이 달려가지만, 김상옥은 경찰 간부 세 명을 총격하고는 달아납니다. 실상 그가 행하려 한 것은 ‘조선 총독 암살’이었습니다. 거사일 경찰에 쫓기게 됐습니다. 일본군 수백 명이 김상옥 한 명과 대치합니다. 이 총격은 세 시간이나 계속됐다고 합니다. 김상옥은 철물점을 운영하고 결혼해 두 딸을 둔 34살의 청년이었습니다.(임경석, ‘혁명가의 총구 경성 뒤흔들다’)

이 ‘폭발물 밀반입 사건’을 영화화한 게 <밀정>입니다. 주동자 황옥은 일제 경찰 출신으로, 계획에 가담했지만 자신은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투입된 ‘이중첩자’라고 주장합니다. 끝까지 어느 말이 진실인지 모릅니다. 여러 증거를 통해 그가 실제로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하는 이도 많습니다.(황용건, ‘항일투쟁기 황옥의 양면적 행적 연구’) <밀정>의 제작자 이진숙 프로듀서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황옥은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로 다시 태어납니다. 또 한 명의 주연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의 모델은 독립운동가 김시현입니다. 해방 뒤 국회의원까지 되지만 이승만 암살 사건을 기획합니다. 김시현이 밝힌 저격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대통령은 독재자이며 정실인사를 자행할뿐더러 민생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다. (…) 동란이 발발하자 이튿날 도망가버리고 백성들보고는 안심하라 뱃속에도 없는 말을 하고 한강 철도까지 끊어 선량한 시민들은 남하조차 못하게 만들어놓고 사과조차 없으니 그게 대통령이란 말인가. (…) 그를 살해한 뒤 누구를 대통령으로 시켜도 이 대통령보다는 나을 줄 안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5년간 감옥생활을 합니다.

2016년 개봉 당시 만난 <밀정>의 김지운 감독은 “시대의 무게감 때문에 영화 스타일, 자의식을 접어두고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시작은 ‘콜드 누아르’였지만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점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도 했습니다. 2023년 9월12일 서울 종로구 CGV피카디리 극장에서는, <밀정>을 다시 보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개봉 때 보고 이번에 2회차 관람을 한 지인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가슴에 다가온다”고 말했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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