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방 노마만리 대표 한상언씨가 수집한 1948년 북한에서 발행된 <노마만리>. 한상언씨 제공
일제강점기 ‘현’은 누이의 안내로 중국 베이징의 베이하이공원을 관광하고 있었다. 저쪽에 일본 군인이 나타나자 누이는 공포에 휩싸인다. 독립투사를 남편으로 둔 누이는 아이를 혼자 기르며 생계로 마약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일본 군인은 현의 학교 동창이다. 현은 도망가는 누이를 발견하고는 일본어로 “기다려”라고 말한다. 누이는 일본어를 못해서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현은 자신이 하는 말이 일본어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누이에게 자신의 말이 전달되기를 애타게 바라면서 소리친다.
김철의 <복화술사들>(문학과지성사 펴냄, 2008년)을 주저하면서 읽은 적이 있다. 앞 내용은 김사량이 194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향수’에 나오는 대목으로, <복화술사들>에서 김철이 ‘식민지의 복화술사들-조선 작가의 일본어 소설 쓰기’에서 들고 온 이야기다. 그는 “제국의 지배 아래서 제국의 언어로 발언하는 피식민지인은 일종의 복화술사”라고 이야기한다.
단편소설 ‘향수’는 일본어로 발표됐다. 평양 대부호의 아들인 김사량은 1914년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태어나 ‘내선일체’가 본격화한 학교 교육을 받은 뒤 도쿄제국대학에서 수학했다. 그가 쓴 ‘빛 속으로’(光の中に)는 1940년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혼혈로 태어난 소년과 조선인인 것을 감추고 살아가는 청년의 만남을 소재로 했다.
김사량의 가장 유명한 글은 <노마만리>다. 조선학도로 중국에 파견됐다가 탈출해 조선의용군에 참여한 자기 경험을 쓴 보고문학이다. 김사량은 일본이 패망한 뒤 고향 평양으로 돌아갔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서 북한군과 남하하다가 강원도 원주 야산 부근에서 소식이 끊겼다. 그때 나이 36살이었다.
그의 전력 때문에 김사량의 문학은 한국에서 금기시됐다. 여러 번의 정치 격변을 겪으며 북한에서도 잊혔다. 그러다 1973년 재일 문학가들에 의해 일어판으로 <김사량 전집> 5권이 출판됐고 1987년 북에서, 그리고 1989년 남에서 뒤늦게 그의 작품집이 나왔다. 소설가 황석영은 신문 연재에서 김사량의 ‘빛 속으로’를 소개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식민지 시대의 작가와 작품 열 편을 뽑으면서 마지막으로 김사량이 있다는 점이 든든했다.”(<경향신문> 2012년 2월3일)
뉴라이트의 역사 도발이 시작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년)에 필진으로 참여한 김철은 한국인이 한글로 쓴 문학이라는 정의가 어떻게 한국문학을 한계 짓는가를 묻기 위해 김사량을 예로 들었다. 일본어로 쓴 문학 역시 한국문학이 아닐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조심스럽고 섬세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2023년 갑자기 두려움도 없이 다시 ‘반공 이념’의 시대로 직진한다.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폄훼한 ‘친일 이념’이 여기에 합쳐진다. 윤석열 정부는 도대체 역사의 수레바퀴를 어디까지 되돌리려는 것인가. 어떻게 돌리자는 말인가. 일본어로 글을 쓰고 북한군으로 참전한 김사량은 당신들이 친애하는 식민지 지식인인가, 일본어 작가인가, 당신들이 적대시할 공산주의자인가.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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