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했다고 생각해.” 회사 대표는 한승현(31·가명)씨를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한씨가 갑자기 출근하지 못했던 사유를 ‘같이 지내던 친구가 죽었다’고 설명한 뒤였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완전한 이야기도 다른 직장 동료에겐 알리지 않았다. 약 1년이 지난 뒤 한씨가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왜 그만두는지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웠다. 성별이 같은 고인은 한씨가 스무 살 때부터 스물아홉까지 사귄 연인이었다. 한씨의 20대에 늘 고인이 있었고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2018년 한씨는 처음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이사한 집에 침대·옷장·냉장고 등 가구를 새로 사서 뒀다. 뿌듯하고 기쁜 시간이었다. 한씨는 “우리가 생각했을 때 집다운 집 같았다”고 했다. 여러 가구를 배치할 수 있을 만큼 넓고, 요리하길 좋아하는 연인이 음식을 만드는 데 적합한 구조였다. 다만 언젠가부터 “감정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한씨는 이별을 말했다. 2주 뒤 연인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애도할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자살사망자의 가족만이 아니다. 연인, 친구, 직장 동료, 지인 등 고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은 사람의 슬픔은 상대적으로 더 인정받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가족 외 관계에 있는 자살사별자는 고인과 맺었던 관계와 그로 인한 고통이 과소평가되기 쉽다. 사회적으로도 스스로도 ‘가족보다는 슬픔이 덜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한국심리학회와 공동기획한 자살 사별 경험에 관한 실태조사를 보면, 연인이 자살한 사람은 배우자를 자살로 떠나보낸 사람만큼 심리적 고통을 느꼈다. 우울, 자살행동, 사별슬픔 등에서 자살 사별 대상이 자녀(16명), 배우자(15명), 연인(8명)인 경우 부모, 형제자매, 친구, 지인, 직장 동료, 친인척 등을 포함한 모든 관계에서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2003명 가운데 ‘자 살 사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467명(23.3%)의 평균 우울 점수(PHQ-9)는 7.14점이다. 10점 이상이면 우울위험군으로 본다. 자살 사별 대상이 자녀인 경우 16.13점, 배우자 15.93점, 연인 15.63점으로, 세 집단은 사별자 전체 평균보다 우울 점수가 2배 이상 높았다.
사별자의 자살행동척도(SBQ-R) 평균 점수는 6.92점이었다. 이 척도는 7점 이상을 자살행동위험군으로 분류한다. 자녀를 자살 사별한 경우엔 10.63점, 배우자 12.13점, 연인 12점으로 세 집단이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다.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연인의 비통함도 큰 것이다. 연인을 자살로 떠나보냈다는 응답자 8명은 사별 뒤 모두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성소수자는 친구나 연인이 사망했을 때 ‘박탈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를 경험하는 대표적 집단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사이였음에도 고인과의 관계를 주변에 밝히지 못하거나, 원가족의 의사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쩌면 원가족보다 더 가까웠을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인정받지 못하고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동성인 연인을 잃고도 ‘친구가 죽었다’고밖에 표현하지 못한 한씨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법적 가족이 아니었기에 당장 장례를 치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고인과 연락이 닿는 연고자도 없었다. 고인의 어머니는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와는 연을 끊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지만 2013년 자살했다. 어린 조카도 함께 죽었다. 연인은 가족의 잇따른 죽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때때로 한씨를 탓했다. 언니랑 같이 살자는 자신의 제안을 무시한 한씨 때문에 언니가 죽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연인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무서워하게 됐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인이 운동 등 취미활동을 시작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안정된 시기는 5∼6년이 흐른 뒤였다.
한씨가 고인의 사망신고를 하기까지는 약 2주가 걸렸다. 장례식은 그로부터 한 주 뒤에 치를 수 있었다. 뒤늦게 고인의 친인척과 연락이 닿았다. 장례식에서 한씨가 실질적 상주 역할을 하기까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그해(2020년) 보건복지부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동거인이나 친구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치를 수 있도록 ‘가족 대신 장례’ 지침을 만들었다. 지침이 적용된 첫해였기에 구청과 병원의 혼선이 컸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았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해 가까운 사이였음을 인정받아야 했다.
사랑이 끝난 게 죄는 아니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눈치채지 못한 것도, 자신이 ‘헤어지자’고 말했던 것도 후회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알 수 없어서 어머니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도 이걸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인기피증이 생겨 회사를 그만둔 뒤 1년6개월가량은 집에서 은둔하다시피 지냈다. 장례식이 끝난 이후 아무것도 없는 빈소에 와줬던 대여섯 명의 동성애자 지인에게도 다시 연락하지 못했다. 한씨는 “그때 와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나라는 존재가 안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했다.
‘언니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 있어도 될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죽어서라도 없던 일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 기억이 사라지면 고통이 덜해질까 싶어 최면으로 기억을 지우는 방법도 알아봤다. 이전까지 한씨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매일 소주 1∼2병씩을 먹고 간신히 잠들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겨레21>과 한국심리학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성적 지향에 따라 자살사별자의 우울·자살행동에도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자살 사별을 경험한 성소수자(22명)는 이성애자보다 우울 정도가 심각한 우울위험군 비율이 더 높았다. 이성애자(445명)의 경우 우울 정도가 심각한 위험군의 비율은 23.7%인 반면, 성소수자는 63.6%에 달했다. 또 성소수자 자살사별자는 10명 가운데 8명꼴로 자살행동(자살사고·계획·시도 등) 위험군이었다. 이성애자의 경우 자살행동 위험군은 전체의 42.9%였다. 이 수치도 결코 낮지 않지만 성소수자는 77.2%로 월등히 더 높았다.
박도담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상담사 모임 ‘다다름’ 대표는 “어떤 고통이 더 심할 거라고 함부로 비교하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박탈된 애도나 숨겨진 애도를 겪는 경우는 다른 자살사별자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파트너와의 관계를 주위에 알리지 않고 둘만 알고 있었다면, 고인이 떠난 뒤 그 사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주변에 관계를 알리지도 못했는데 파트너가 있었다는 점도 밝혀야 하고, 본인을 커밍아웃하거나 고인의 의사를 모르는데 아우팅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파트너의 성적지향과 정체성을 빼고 이야기하면 어떤 점은 숨겨야 하므로 상실감을 있는 그대로 나누기 어려워 (성소수자 사별자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영(30·가명)씨는 2022년부터 한 식당에서 1년째 일하고 있다. 한곳에서 이렇게 꾸준히 일한 건 인생에 처음이었다. 2013년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마저 이어가진 못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더는 휴학이 연장되지 않았을 때 제적을 택했다. 그 무렵 취업에 성공해서다.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또 실패하고 망쳤다는 생각에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학적이 있었을 땐 과외를 할 수 있었지만 ‘대학 재학 중’을 떼고 나니 과외 선생님이 될 순 없었다. 소득이 높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몇 달간 빨래하지 않거나 방을 치우지 않아 “뉴스에 나오는 ‘쓰레기 집’처럼 생활했다”고 했다. 2019~2020년 무렵엔 위기 상황에 놓여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 가구에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씨의 연인은 2015년 자살했다. 2013년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운명처럼 만난 사람이었다. ‘소울메이트’라고 느꼈고, 그해 여름부터 사실상 동거를 시작했다. 성별이 같은 그의 연인은 “그대로 살았다면 교수나 연구자가 됐을 것 같은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한편으론 “부모의 간섭, 입시준비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막 연애를 시작한 20대 초반”이었다. 2015년 어느 날 새벽,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자는 그를 깨워 경찰서로 데려갔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힌 영상을 보여주며 연인의 신원을 이씨에게 확인했다.
장례식엔 가지 않았다. 연인의 친구들이 빈소를 찾았을 때 그의 부모는 ‘우리 애는 유학 간 거로 생각해달라’며 사인을 주변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성소수자 친구 몇 명이 빈소를 찾아 상주를 보고 절했지만, 상주가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경찰서에서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며칠 뒤 장례 절차가 끝나고 분골이 안치된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본가로 돌아간 그가 2∼3주간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을 때 어느 시점에 어머니는 “네가 과부냐?”라고 말했다. 이 시기 다른 기억은 거의 없지만 화낸 기억이 있다. 낙인찍힌 죽음, 혼인과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관계,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가 낙인찍은 사람들은 충분히 비통해하기 어려웠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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