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18일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 특별심포지엄에 다녀왔습니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는 ‘자살위기 극복을 위한 성찰과 모색’으로, 첫 시간에는 연인을 잃은 사별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른 것들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Other Things)이 상영됐습니다. 장승희 감독은 다큐 제작 초기에 “자살을 둘러싼 감정들에 선입견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살이라는 경험이 “영화적일 것이라는 오해가 있었고, 그 틀에 인물을 맞춰갔다”가 그게 아님을 깨닫고 다큐의 방향을 바꿨다고 고백했습니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아버지를 자살로 떠나보낸 황웃는돌(필명)씨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에게 큰 상처를 줬던 여러 말 가운데 하나는 “삶의 드라마가 참 많아서 나중에 작품 쓰거나 논문 쓸 때 정말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황씨는 ‘저 사람은 그 논문 한 편 쓰자고 이렇게 힘든 인생을 선택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 단 한 번이라도 상상해본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직접 겪는다면 쉽사리 그리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잘 짜인 플롯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주인공이 역경과 좌절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감동적인 서사가 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살이라는 사건을 그 서사를 위한 소재로 취급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제가 만난 취재원은 ‘극복’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자기 경험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 취재원도 타인에게서 “대단하다” “용기 있다” 같은 말을 들을 때면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그 상실을 대가로 이런 ‘성취’를 이루고 싶었던 게 아니니까요.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 파일을 열어보면 자주 압도됐습니다. 취재원이 들려준 이야기는 오랫동안 그가 느껴온 감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일부조차 기사에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예컨대 사별자가 믿고 의지한 사람에게 외면당했다고 느꼈을 때의 고통, 선한 의도로 부적절한 위로를 건넸던 사람에 대한 분노, 자신이 과민 반응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감정을 통제하느라 기진맥진해지는 과정을 충분히 담지 못했습니다. 기사는 어디까지나 사실 위주로 써야 하니까요. “삶이 나를 고문하는 것 같았다”와 같은 문장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결국 덜어냈습니다. 자살사별자를 고통과 절망에 빠진 존재만으로 그려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모로 고민했지만 어려웠습니다. 남은 기사도 고민해서 쓰겠습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기사가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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