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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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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 후 자살 위험 8.3배, 정부는 “기다리세요”

③ 멀기만 한 국가
정부 자살사별자 지원한다면서 “치료비는 1년 이내, 저소득층만”
유독 자살률 높은 ‘자살사별자의 나라’ 예산·인력 투자는 찔끔
등록 2023-09-01 01:26 수정 2023-10-05 04:57
한국의 자살 현실을 다룬 드라마 <내일>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한국의 자살 현실을 다룬 드라마 <내일>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는 한국에서 자살사별자가 되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한겨레21>과 한국심리학회가 2023년 8월 초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인 4명 중 1명이 자살로 인한 사별을 경험했다.(‘자살사별자의 나라’ ① 참조)
국가가 자살사별자의 고통을 돌보는 건 또 다른 자살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가 이제 막 그 걸음마를 뗐지만 갈 길이 멀다.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진 사별자에게 다가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적은 비용으로, 사별자들이 알아서 찾아와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고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_편집자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상담 신청을 했는데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대기자가 많았는지 상담사가 부족했는지 모르겠어요. 전 당장 급한데 계속 기다리라고 하니까 지쳤던 것 같아요.”(김세연)

“사람들이 지역 자살예방센터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못해요. 조직도도 지역마다 다 달라서 어디는 정신건강증진센터고 어디는 자살예방센터가 있는 식이잖아요. 저는 센터별 조직도를 다 검색해서 겨우 찾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찾기 진짜 힘들 것 같아요.”(황웃는돌·예명)

‘자살 유가족은 자살 위험이 일반인보다 8.3배나 높다. 자살 유가족에 대한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 자살 예산 관련 정부기관 보도자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자살사별자는 드물다. 정부가 파악한 자살 유가족 수는 2953명(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2022년 기준)으로, 연간 8만 명으로 추산되는 신규 자살 유가족 수의 5%도 되지 않는다. 국가가 유족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실제 예산과 인력, 전문성의 자원은 턱없이 적게 배정되는 탓이다.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자살사별자 지원 실태를 5가지 장면으로 살펴봤다.

장면 1: 정부와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

자살사별자의 경우 스스로 존재를 알려야만 국가가 인지한다는 한계가 있고 자살사별자 스스로도 치료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 <한겨레21>이 한국심리학회와 진행한 공동 설문조사를 보면, 자살 사별 경험이 있는 응답자 467명 중 413명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63.4%)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고 ‘어디서 어떻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26.4%)고 답한 인원도 그다음으로 많았다.

이제까지 국가가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는 자살사별자가 각 지역 자살예방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직접 두드려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담기관 연결 창구 구실을 하는 ‘1393 자살예방상담전화’는 응대율이 70% 수준에 그친다. 대응 인력 부족으로 10통 중 3통은 놓치는 셈이다. 상담전화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을 취하려 해도 황웃는돌씨 지적처럼 지역마다 자살 예방 전담 기관이 달라 혼선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 정신질환자 사례 관리 등도 맡고 있어 자살사별자를 돕는 기관으로 인식되기 어렵다.

그나마 최근엔 자살 유가족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유관기관이 먼저 도움을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가 시범 운영 중이다. 경찰 등이 신고 접수로 알게 된 자살 유가족을 총괄적으로 행정 지원하는 서비스로, 2022년 8월 시작했다. 다만 이 서비스도 자살 유가족보다는 자살 시도자가 중점적으로 도움받는다. 최혜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비스 이용 현황 자료를 보면, 2023년 6월 말 기준 자살고위험군 원스톱 서비스 건수 3만7460건 중 자살 시도자 발견이 2만8833건이며 자살 유족 발견은 2979건에 그쳤다.

“원스톱 서비스를 해도 경찰이 단순히 유가족 연락처만 전달하거나 지자체가 야간 출동을 의무화하지 않아 유가족 만남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살 유가족이 고립되기 전에 국가가 미리 개입해 적극적으로 상담 필요성을 알려야 하는데 실무자들에게 그런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자살 유가족 동료 지원 활동가로 일하는 조동연 활동가의 말이다.

장면2: 치료비는 1년 미만, 저소득·혈연만 가능

자살사별자에 대한 정부 예산은 어떨까. 2023년 기준 보건복지부 예산 488억원 가운데 자살 고위험군 발굴·지원(196억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예산으로 자살 고위험군 치료비 지원과 자살 유가족 심리 부검,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 시도자 추적 관리 등을 모두 수행한다.

사업은 많고 예산은 부족하니 각종 제약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치료비 지원은 중위소득 120% 미만으로 버는 배우자와 4촌 이내 혈족만 가능하며, 사별 뒤 1년 안에만 지원이 된다.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데 지원받으려면 사회적·경제적 위기 상황임을 입증해야 한다.

“제가 상담 필요성을 느낀 게 사별 1년 뒤여서 상담비 지원을 못 받았어요. 사실 사별 직후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행정 등 닥친 일 처리하기도 바쁘거든요. 치료비 적용 기간이 더 길어져야 한다고 봐요.”(김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실제로는 상담 필요성이 인정되면 저소득층이 아니라도 가급적 민간기금으로 지원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혈연관계도 자격을 둬 제한하니 혈연 외 관계는 아예 지원 대상 밖이다. 최근 가족 관계가 다양해지며 애인이나 친구들도 자살 사별 경험을 겪지만 이들은 국가의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나는 애인과 10년을 함께 살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서 국가 지원 상담 서비스를 찾아봤는데 가족한테만 해당한다고 해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 뒤론 더 찾아보지 않았다.” 2년 전 애인을 사별한 한승현(가명)씨의 말이다.

장면3: 유족 두고 일반인 교육에 예산 집중?

자살 예방의 또 다른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도 예산을 턱없이 부족하게 배정하긴 마찬가지다. 자살예방법에 따라 시·도 지자체는 자살 예방 계획을 별도로 수립하고 예산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2022년 10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자살예방센터가 파악한 전국 229개 지자체의 평균 자살 예방 예산은 2억2천만원이었다. 연간 5천만원 이하인 곳도 13곳에 달했으며 총예산이 1350만원뿐인 지자체(경북 고령)도 있었다. 지자체 자살 예방 예산에 최소한의 기준이 없다보니 지역별로 예산 차가 심했다.

부족한 예산마저도 실적 내기 쉬운 사업 위주로 집행한다는 지적이 있다. 안실련이 2020년 전국 지자체의 자살 예방 사업 실적을 일반 시민-유가족-노인 대상 사업 세 가지로 분류한 보고서(‘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추진활동 현황 조사’)를 보면, 유가족 지원 사업 대상은 10만 명당 4명(인구 30만 명 이상 지자체 기준)으로 지원 실적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반면 노인 대상 지원 사업은 10만 명당 177명,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 지킴이’ 교육 사업 대상은 10만 명당 836명에 달했다.

생명 지킴이 교육은 주변의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해 기관에 연결하도록 지역 주민을 교육하는 사업이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유가족 지원보다 가벼운 교양 수업으로 이뤄지는 일반인 교육에 예산이 편중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충남 천안시의 한 자치구는 1년에 1만 명에 가깝게 생명 지킴이 교육을 했다. 예산 대부분을 일반 시민 교육비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조사를 진행한 양두석 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은 “일반 시민보다도 자살 유가족이 훨씬 위험한데 지자체는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지역 내에 자살 유가족이 얼마나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전경. 서울시 제공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전경. 서울시 제공

장면4: 500명으로 자살 고위험군 사례 관리?

500명. 전국의 자살 예방 전담 인력이다. 이마저도 국가가 인건비를 100%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와 절반씩 부담한다. 지자체가 추가로 인원을 채용하려 할 경우 추가 인건비는 오롯이 지자체 몫이다. 재정 부담을 느끼는 지자체들은 자살 예방 인력을 더 뽑기보다 기존에 있던 정신건강복지센터 인원에 업무를 얹는 것을 선호한다. 전국 자살 예방 사업의 전담자와 겸직자 비중은 4:6(2021년 사업 수행 인력 기준)으로, 전담자보다 겸직자가 더 많은 구조다.

기관 현황을 봐도 자살예방센터는 전국 42곳(독립 센터 4개, 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설 38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자살예방센터가 없는 지자체는 196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응대한다. 그런데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중증 정신질환자와 중독자를 주로 담당하는 기관이어서 자살 예방에만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

“자살사별자 사례 관리를 하려면 사별자가 ‘정서적 지지를 받고 있구나’ 하는 안정감을 받도록 상담사가 꾸준히 연락하고 챙겨야 한다. 그런데 (사례 관리 인원이) 50명씩 되면 당장 상담사가 전화하는 빈도부터 줄어든다. 라포(유대감) 형성도 어렵고 개입 자체가 힘들다.” 자살예방센터 직원 이아무개씨의 말이다.

‘2021년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를 보면 자살예방센터 등 공공 상담 기관 직원 1명당 평균 사례 관리자 수는 26.6명이다. 하지만 이는 수도권을 포함한 평균값이다. 제주(45.1명)와 충남(40.0명) 등 비수도권은 직원 한 명이 담당하는 사례 관리자 수가 월등히 많다.

자살 유족은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살을 사적 영역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움츠러들기 쉽다. 상담사들이 한층 적극적으로 사례 관리에 나서야 하는데, 업무 부담이 큰 상황에선 하기 힘든 일이다.

장면5: 고용 불안정에 상담사 수시로 바뀌어

“상담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매년 울면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만드는 것도 너무 폭력적이고 힘들다. 제발 같은 선생님과 안정되게 상담받고 하루빨리 이 아픔을 벗어나고 싶다는 유가족의 호소를 정부와 지자체가 가슴 깊이 새기길 바란다.”

2023년 4월18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 자살사별자가 천안시 서북부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사들의 불안정 고용을 해결해달라고 나섰다. 천안시가 센터를 민간 병원에 맡겼다가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사별자들을 상담하던 계약직 직원들이 대거 해고된 것이다. 지자체는 인건비 절감 등 이유로 지역 자살 예방 업무를 민간 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약이 끝나 위탁 기관이 바뀌면 상담사들의 고용도 함께 불안해지는 처지다. 안실련이 파악한 2021년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39.4개월로 3년 반 정도였다. 급여도 과장급 직원의 1호봉 월급이 226만원(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기본급 권고 기준) 수준이다.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사들은 자살사별자를 최전선에서 만나는 이들이다. 상담사 고용 여건이 자살사별자가 받는 상담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된단 뜻이다. 하지만 실상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으로 장기 근속자를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자살사별자를 지원하는 정부 예산이 점차 늘고는 있지만 현장 수요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조동연 활동가는 “자살률을 낮추는 데 자살 유가족 지원·관리가 효과적이란 사실은 이미 설득력 있는 연구로 입증됐다. 그것이 현장에서 실제로 이뤄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다은 서혜미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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