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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다, 마음 아픈 게 비정상인지”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 인터뷰… 4명 중 1명 자살로 사람 잃었는데 정신건강 서비스는 멀기만
등록 2023-09-02 10:25 수정 2023-09-16 11:25
지난 8월14일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지난 8월14일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한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가깝고 의미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을 자살로 잃었다. <한겨레21>과 한국심리학회가 공동기획해 진행한 실태조사는 자살 사별이 누구와도 무관한 일이 될 수 없음을 드러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은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손실을 끼치는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보지만, 한국 사회에선 개인의 선택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퍼져왔다.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사진)은 “그런 시각이 오히려 자살 예방을 어렵게 한다”며 “자살은 개인적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장애, 노화와 자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관련 정책을 제안해왔다. 2023년 초에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

갑작스러운 죽음, 살아 있던 기억 도려내는 것

—실태조사에서 가족이 아니라 연인, 친구, 지인 등 광범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자살 사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이의 죽음은 사람에게 굉장히 심적 고통을 안긴다. 갑자기 직장 동료를 잃는다면 하루에 8시간,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일단 그 사람이 없는 삶에 적응해야 한다. 가깝게 지내고 생활을 공유했다면 더 적응할 게 많은데 그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은 이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려면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기억을 도려내야만 한다. 이는 노환으로 인한 사별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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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왜 사회문제인가. 스스로 삶을 끝냈다는 점에서 개인의 선택일 수 있는데 왜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나.

“세계보건기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여러 국제기구가 자살을 ‘공중보건과 사회적 통합’ 문제로 보는 이유가 있다. 자살률은 정신건강의 중요한 지표다. 자살률과 정신건강은 역상관 관계에 있다. 별다른 개입이 없다면 높은 자살사고는 정신건강이 악화할 수 있음을 사회적으로 의미한다. 그 나라 국민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엔 상당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정신건강 악화가 경제에 실질적 악영향을 미치고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연구들이 나왔다. 이 시기 들어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이 자살률을 낮출 정책적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측면에선 정신건강뿐 아니라 결국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헌법엔 행복추구권이 있지 않나. ‘이만하면 괜찮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심리적 안녕감이나 만족감이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자살률이 높다는 건 심리적 안녕을 느끼는 사람이 줄고 있거나 많이 줄었다는 의미다.”

‘삶에 희망 없다’ 무망감, 우울보다 더 잘 자살 예측

—자살은 여러 요인이 작용해서 원인을 꼽기 어려운 죽음인 것 같은데, 심리학에서는 자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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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심리적 과정을 살펴본 최근 연구들은 자살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특성으로 우울, 불안 외에 무망감과 심리적 혹은 신체적 통증의 고통과 충동성을 주목한다. 삶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무망감은 우울보다도 자살을 더 잘 예측하고, 만성적 고통도 우울보다 자살을 더 잘 예측한다고 보고한다.

또 기질적으로 충동성이 높은 사람들은 자살을 포함한 위해 행동을 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크고, 기질적이 아니더라도 술과 마약 등 충동성을 높이는 약물의 남용은 자살로 인한 사망에 일관되게 기여한다고 나타난다. 실제 우리나라 자살 사망 사건의 상당수가 주취 중 일어난다.

최근 연구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마음이나 신체 모두의 만성적 고통이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무망감과 함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어 자해 억제력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당면한 고통을 없애고 싶다는 다급함이 충동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만성 통증이나 정신적 고통을 경감해주는 접근이 자살 예방에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살률 효과적으로 낮춘 선진국 있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는 문제인가.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한 나라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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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대체로 많은 선진국이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낮춰왔다. 핀란드 같은 경우엔 자살률이 수직 상승했다가 자살 예방에 성공해서 자살률이 뚝 떨어졌다. 자살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기에 다층적으로 접근할 때 예방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이 연구로 확인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신건강 서비스의 접근성 문제다. 최근에 나온 근거기반 심리지원 연구 중 하나는 7주가 지나 서비스를 받으면, 7주 안에 받았을 때보다 효과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데이터다.

한국은 우울이나 불안 등에 대해 전문적인 심리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에 5% 이상 투자할 것을 권장하지만, 한국의 경우 2020년 기준 1.6% 수준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중증 정신장애인 정책에 국한됐다. 기초자치단체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중증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주로 하는 예산도 부족하다.”

—이전보다 덜해졌다고는 해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정신건강 서비스의 문턱을 넘기 힘든 것 같다.

“역으로 나는 묻고 싶다. 마음이 아픈 게 비정상인가? 심리적 고충은 인간이라 있는 건데? 힘든 일이 있으면 마음이 아픈 게 당연하고, 굉장히 힘든 일이었으면 아주 오래가는 게 사실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문화가 있는 게 문제였다.”

쉽게 건강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개인이 상당한 비용을 내야 하므로 받기가 쉽지 않다.

“영국에서는 2008년부터 아이에이피티(IAPT)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우울과 불안 등 경도 및 중등도 정신질환의 심리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을 시작했다. 인지행동치료 등 근거에 기반을 둔 심리지원 서비스다. 평균 8회기를 했을 때 50%가 완전히 회복했고, 개선으로 따지면 70~80%의 효과가 있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 서비스지만, 영국의 정신건강 예산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비중이 크지 않다. OECD 분석 결과는 오히려 중증 정신장애인 입원 위주의 정책이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한국도 경미한 정신건강 문제를 어디 가서 이야기하고, 좀더 건강하게 회복할 대응 방식을 배울 심리지원 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다면 자살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3년 초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에 참여했다. 여기서 무엇을 논의했나?

“국민통합위에서 왜 자살 문제가 풀리지 않는지를 범부처로 살펴봤다. 많은 부처에서 와서 자살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처 간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논의했다. 어느 곳이고 마찬가지겠지만 부처 간 협력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부처 내에서도 심리지원을 하는 부서와 심리검사를 하는 부서가 달라 서로 소통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도 범부처 간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나가야 할 것 같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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