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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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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우리보다 깻잎을 더 사랑하나봐요”

등록 2023-08-11 19:11 수정 2023-08-19 09:21

7월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깻잎을 땄다는 니몰(캄보디아 20대 여성·가명)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기운 없이 말했다. 니몰씨는 이마에 흰색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좀 시원해서 열이 내릴 것 같아요.”

‘허가’받은 컨테이너에서

그는 병원비가 걱정된다며 병원에 안 간다고 손사래를 쳤다. 건강보험료로 매달 13만원씩 내고 있음에도 그는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약국에 가자고 했지만 여기에서 시내에 있는 약국까지 차로 30분이나 걸렸다.

“내가 내일 일해야 해서 약국 가기 싫어요. 그냥 이렇게 쉴래요”라며 니몰씨는 컨테이너집으로 들어갔다. 집 구조는 이상했다. 문을 열면 화장실이 먼저 나왔다. 반대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작은 주방이, 앞쪽에 성인 두 명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이 있었다. 사업주는 에어컨을 설치해준다고 약속했지만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열을 식히기에 부족했다. 이런 집에 매달 두 명이 25만원씩, 월세 50만원을 내고 살았다.

니몰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열을 식히러 나가자고 했다. 컨테이너집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깻잎 향이 느껴졌다. 오른쪽에는 니몰씨와 동료가 온종일 딴 깻잎이 가지런히 담긴 바구니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하루 내내 열 받은 깻잎을 식히기 위해 사업주는 물을 뿌리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는다. 우리는 사업주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비닐하우스 안에서 열을 식혔다. “사장님은 우리보다 깻잎을 더 사랑하나봐요.” 니몰씨가 부채질하며 말했다.

2020년 12월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자다가 사망했다. 영하 18도까지 내려가 한파경보를 내린 날이었다. 부검 결과는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전문가들은 숙소에 난방장치가 작동하지 않아서 추위가 간경화를 악화했으리라 봤다. 이런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이주노동자는 1인당 적게는 15만원에서 25만원씩 내고 살았다.

신속하게 고용노동부는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내 숙소와 같은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신규 고용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슬쩍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임시숙소)을 받은 경우에는 허가’된다고 덧붙였다. 컨테이너집에 살 수 없지만, 허가받은 컨테이너에서는 살 수 있었다. 말장난 같은 제도였다. 이주노동자는 폭우 피해를 입은 집에, 폭염에 달궈진 집에, 냉난방 장치도 없는 집에 높은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

캄보디아 노동자의 부고 소식들

캄보디아 노동자의 활동이 활발한 사회관계망에 요즘 부쩍 부고 소식이 올라온다. 캄보디아 노동자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각각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이상소견이 있으면 한국에서 일할 수 없다. 건강보험료를 매달 13만원 내지만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 참다참다가 죽기 직전에 병원을 찾기도 한다.

그런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자다가 쓰러져 죽는다. 노동자가 구급대원들에게 둘러싸인 사진과 그 옆에 생전 모습의 사진이 같이 올라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댓글이 달린다. 부검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사망원인을 알기 어렵다. 대부분 열악한 노동환경·주거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폭염이 뉴노멀’이라며 “이젠 지구 열대화”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보내는 폭염경보 문자는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밥상 위에 오를 음식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그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죽지 않을 노동환경에서 일하길, 자다가 죽지 않는 주거환경에서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우춘희 작가의 ‘노 땡큐!’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 써주신 필자와 사랑해주신 독자께 감사합니다. 우 작가는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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