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보다 묘연이 먼저였다. 박소이, 원승연 ‘집에가야돼’ 대표는 고양이로 맺어진 인연이다. 어느 날 박 대표가 지인들과 함께 같은 학교 선배인 원 대표 자취방 집들이에 참석하게 됐고, 원 대표가 키우던 반려묘에 반해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고양이 하몽, 하양, 하랑이와 함께 다묘가정을 이뤄 공동 집사로 살다가 기존 고양이 용품 디자인에 한계를 느껴 ‘집에가야돼’도 창업하게 됐다. 독자적인 디자인과 안전성·내구성을 고려한 소재로 고양이 용품을 연구하고 공장을 직접 운영하며 애묘인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함께 생산, 판매한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원 대표와 브랜드 디자이너 출신의 박 대표가 각자의 경험과 역량을 살린 결과다. 두 사람이 사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를 찾아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집이 예뻐요. 고양이 세 마리와 사는 집 꾸미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 텐데요.
박소이(이하 박):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면서도 예쁜 집을 꾸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둘 다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예쁜 걸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사업 방향도 그렇게 잡았고요.”
원승연(이하 원):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커다란 캣타워나 캣휠처럼 기본적으로 집 안에 들여야 할 것이 있어 인테리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저희도 고양이가 좋아하는 상자 같은 걸 못 버리고 있긴 합니다.(웃음) 고양이가 사는 집이지만 사람도 같이 살아야 하니까 고양이한테만 좋은 집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박: “사람이 살기에도 편하고 보기에도 예쁜 집이 중요하죠. 같이 살아야 하니까요.”
원: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지만, 사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하니까 궁리를 잘해야죠. 어떤 집은 고양이가 아예 못 들어가는 곳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저희는 그것보다 사람이 쓰는 공간에 고양이 용품으로 인테리어 효과를 주는 걸 좋아해요. 사람과 고양이가 모두 좋아하는 예쁘고 편안한 담요를 놓아둔다든지, 벤치에 끈을 감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고양이 용품에도 인테리어 요소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박: “제가 회사에서 커다란 호피 무늬 터널을 선물받아 갖고 온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굉장히 싫어했어요.(웃음)”
원: “호피 무늬가 집 분위기를 너무 해치는 거예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색감이나 디자인에서 두 사람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찾기로 했어요. 그 결과 색감이 일관되고 모양도 예쁜 제품을 만들어 고양이에게 편안한지, 인테리어 효과가 어떤지 저희 집에서 먼저 테스트하게 됐죠.”
―고양이가 세 마리나 있는데 화분이 많네요?
박: “(웃음) 사실 다 조화예요. 고양이에게 위험한 식물이 있어요. 생화를 집에 두기는 불안해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조화를 사고 양재동 꽃시장에서 화분을 사서 심었어요. 이게 꿀팁이에요.”
원: “저희가 쉬는 공간으로 꾸민 (복층) 2층 휴게실과 1층 일하는 방엔 카펫을 깔았어요. 카펫을 깐 공간은 관리가 어려워서 청소기를 자주 돌려야 해요. 하지만 인테리어 효과도 좋고 고양이도 만족도가 높죠.”
박: “카펫 전용 청소기는 습식을 추천합니다. 요즘 굉장히 잘 나와요.”
―조명도 예쁜 것 같아요. 간접조명 위주네요.
박: “집에서 굳이 밝은 조명을 쓸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거실 롱스탠드는 저희가 직접 이것저것 사서 조립했고, 레일 조명을 달아 필요하다면 밝게 켜서 지냅니다. 형광등이 고양이에게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숙면하는 데도 적당히 어두운 조명이 좋고요.”
원: “플리커 현상이라고 하죠.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거리는 현상인데, 형광등은 1초에 100번 깜빡거려요. 사람은 몰라도 고양이는 빛의 깜빡임을 인지하거든요. 여기에 고양이 눈이 노출되면 시력이 떨어지고 피로도 쉽게 느낀다고 합니다. 플리커 프리 조명 제품이 나오니까 그것을 사용하면 돼요.”
―처음부터 집 꾸미기를 즐겨 하는 편은 아니었나봐요.
박: “저는 결혼 전엔 집을 꾸미고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저 서울 안에서만 살면 된다고 생각한 편이죠. 그런데 결혼해서 집을 예쁘게 해놓고 나니까 사는 동네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서울에 살 땐 서울 안에서만 재미있었는데, 광주에 이사 오면서 이천 도자기마을에 간다든지 강원도에 가기도 쉬워졌어요.”
―이 집을 사게 된 계기는요.
원: “처음 결혼해서 성남의 전셋집에 살았는데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쯤 부동산을 찾았는데 적절한 집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고양이가 있으면 안 된다는 집주인도 워낙 많아서 아무래도 그냥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죠. 월세나 은행 이자나 돈 나가는 건 비슷하다 싶었거든요.”
박: “아주 많은 집을 보고 다녔어요. 광주에서만 임장(부동산이 있는 현장에 직접 가서 확인함)을 두 달 가까이 다녔고 혼자서 40~50곳 정도를 본 것 같아요. 마지막에 한 번만 가보자고 해서 이 집을 보게 됐죠. 저만의 노하우가 생겨 이 집을 인터넷에서 보는 순간 딱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원: “저희가 집을 고를 때 열려 있는 부분이 하나 있었어요. 집을 투자 목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죠. 집을 되팔고 투자해서 얼마 남기는 게 중요하기보다 지금 당장 고양이 세 마리와 우리 두 사람이 재밌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진짜 집’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정말 많은 집을 봤고, 예쁘게 꾸미고 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항상 얘기했거든요.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의견이 안 맞으면 안 되니까 평소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집을 선택할 때 고양이도 고려했겠죠, 물론?
박: “그럼요. 사람마다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저는 엘리베이터도 포기할 수 있었지만, 고양이가 햇볕을 좋아하니까 무조건 남향이고 꼭 복층이었으면 했어요. 고양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요. 오늘 비가 와서 그런데, 밝은 날 볕이 정말 좋아요. 햇볕이 부엌까지 쫙 들어오거든요. 이 집으로 오기 전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받겠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미안했어요. 지금은 온갖 곳에 햇살을 받으면서 각자 널브러져 있어요. 그 모습이 제일 뿌듯해요.”
원: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다보니 한 마리당 10평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해요. 지금은 몽, 양, 랑이 각자만의 자리가 있어 밥도 따로따로 먹고 각자 누리는 핵심 공간이 생겼어요. 사람이 항상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따로 또 같이 공간을 누릴 수 있는 정도가 되죠.”
박: “계단이나 숨숨집(고양이가 숨어서 놀 수 있는 집 모양의 공간) 등 일부러 고양이들이 숨을 공간도 많이 만들어뒀어요. 낯선 사람이 와도 자기가 안정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두 분이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원: “한동안은 퇴근하면서도 집에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거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집이 편안하고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복층집에 처음 살아봐서 2층이 좋아요. 책이나 유튜브를 보고 뒹굴뒹굴하거나 누워서 고양이 만지며 놀 수도 있고요. 발코니에서 고기를 굽기도 해요.”
박: “저는 거실을 좋아해요. 제 로망이 담긴, 2m 넘는 큰 테이블을 뒀죠. 일도 하고 손님을 불러 놀 수도 있는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너무 만족합니다.”
―고양이가 두 분께 어떤 존재인가요.
박: “어릴 때부터 동물을 키워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아예 없어요. 부모님은 털 달린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주의셨죠. 집이 울산인데 서울 와서 자취하며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고 평일에도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쁘게 사는 타입이었어요. 제 한 몸 돌보기도 너무 힘들었어요. 동물은 사람 의존도가 높잖아요. 밥도 주고 놀아주기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생명을 데려오면 평생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무서워서 선뜻 키우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원: “저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키워서 친구처럼 같이 지냈기 때문에 오히려 반려동물 자체가 일상적인 느낌이었어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보고 처음 쓰다듬었고 고양이도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동물임을 알게 됐어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하몽이를 데려왔죠. 저 아이가 지금 저희를 맺어준 고양이에요.(웃음)”
박: “처음 오빠 자취방에서 하몽이를 만져보곤 깜짝 놀랐어요. 제가 동물을 만져본 게 생애 처음이었어요. 24년 만이에요. 무조건 회사에 들어가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눈떠보니 고양이랑…(웃음) 고양이 방석 만들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예전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고 행복해졌어요. 이제 전 좀 행복한 거 같아요.”
원: “요즘 자주 듣는 소리가 ‘행복해 보인다’예요.”
박: “저희가 고양이용품 사업을 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가족관계도 바뀌었어요.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던 부모님도 길냥이를 데려다 키우게 됐어요. 사이가 멀었던 엄마와 공통관심사가 생기면서 지금은 대화도 정말 많이 하고 나눌 수 있는 정보도 많아지고 여유가 생겼어요. 아빠도 고양이를 이불에 싸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우리 집 복덩이’라고 하세요. 고양이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같은 거라고 하잖아요. 이해가 돼요.”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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