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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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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라이스해먹다

등록 2023-03-29 02:21 수정 2023-03-30 04:14
한일정상회담의 메뉴. 렌가테이 페이스북

한일정상회담의 메뉴. 렌가테이 페이스북

오므라이스를 만들어본 적 있나요?

미리 밥을 볶아서 접시 위에 담아놓습니다. 달걀 세 개를 깹니다. 보드라운 식감을 위해서는 체로 걸러내야 하지만, 설거짓거리가 늘어나니 알끈을 젓가락으로 건져내는 것이 좀더 수월합니다. 소금을 넣고 휘저어서 균질한 용액을 만듭니다. 버터를 녹입니다. 식용유도 됩니다. 녹았다 싶으면 달걀물을 붓습니다. 달걀물이 조금 굳어지는 찰나부터 젓가락으로 조금 저어주면 달걀은 포슬포슬 뭉글뭉글해집니다. 한쪽으로 기울인 프라이팬의 경사면을 이용해 동그랗게 접습니다. 잠깐 모양을 만드는 무아지경의 찰나가 지나면 보드라운 것을 품은 미끈한 오믈렛이 만들어져… 있을까요? 열에 아홉은 망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열 번을 채우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어보지 못했고 한 번도 이상적 형태에 가닿지 못했습니다.

오므라이스가 입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오무라이스’입니다. ‘오무라이스해먹다’에 새로운 뜻이 생길 것 같습니다. 다 양보하고 밥 먹고 오는 외교를 뜻하는.

3월16~17일 한-일 정상회담 만찬장에 ‘오무라이스’가 올랐습니다. 너무 소박하다? 보수언론 덕에 스키야키, 우동, 함박스테이크, 하이라이스(하야시라이스)를 같이 먹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모테나시’(대접)받았다고 일본어도 소개합니다. ‘오모테’ 뜻이 겉(表)인데 ‘나시’(없음)가 붙어, 겉과 속에 차이가 없는 솔직한 대접이라는 해설이 붙습니다. ‘모테나스’(す) 앞에 미화어(높임말 역할)를 붙인 말이라 단순히 ‘대접하다’, 잘해봐야 ‘환대하다’라는 뜻인데 잘 해석하려다 오류를 범합니다. 그곳에서 ‘속도 없이’ 웃은 것은 한국 정상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일본이) 유사시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만 꼭 그걸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유사시 한반도 일본 개입 허용’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긴장한 탓이었을까요? 2023년 삼일절에는 기념비적 기념사를 남깁니다. 일제에 항거해 온 국민이 일어선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정상회담 뒤 국민 설득에 나선다며 “일본은 사과를 많이 했다”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는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꾸 강조하는 ‘미래’ 앞의 소유격은 ‘일본’일까요? 표지이야기에서 조일준 선임기자가 이해할 수 없는 정상회담의 맥락을 들여다보고 국제역학을 따져봤습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한-일 관계 개선만 말하고 ‘그다음(의 비전)’이 없”다고 합니다. 이완 기자가 인터뷰한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 역시 “왜 우리 때문에 한·미·일 협력이 안 이뤄진다는 생각에 동의한 것처럼 행동하냐”고 합니다.

처음 ‘만리재에서’를 쓴 구둘래입니다. 열 번 쓰면 잘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은 망한 것 같습니다. 오므라이스를 더 빨리 잘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겨레21> 최장 체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으로 그 기록을 연장했습니다. 제가 ‘과거’ ‘현재’를 맡는다면 새로 온 김효실 팀장이 ‘미래’를 맡습니다. <한겨레21>은 김 팀장과 함께 디지털 분야의 도전에 나섭니다. 발령이 난 뒤에도 기사를 쓴 이완 팀장은 신문 경제산업부 산업팀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완 팀장의 관대함과 성실함을 잊지 못할 겁니다. 건승을 빕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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