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5호 표지이야기 ‘챗지피티 시대의 문해력 교육’을 취재하기 위해 15살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짧은 글을 두 번 쓰되, 처음엔 온전히 혼자 힘으로 쓰고 두 번째엔 챗지피티 등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쓰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챗지피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죠.
학생들은 참 똑똑하더군요. 챗지피티가 알려준 내용을 그대로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더해 변용했습니다. 활용법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주제에 대해 스스로 먼저 고민해본 뒤 챗지피티를 보완책으로 활용해야지, 반대로 하면 챗지피티의 제안에 생각이 갇힐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여기까진 기사에 나온 내용입니다. 기사와 무관하지만 실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대목은 따로 있었는데요. 주어진 주제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작문 주제는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이었는데, 학생 다수가 ‘지금 자신이’ 두려워하는 걸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실패, 비난, 전염병… 챗지피티가 여러 선택지를 주더라도, 결국 ‘내 마음’이 투영된 소재를 고르는 거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챗지피티 시대의 문해력 교육을 취재하는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건 뭐지?’ 저는 ‘불확실성’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은 원래 늘 불확실한 것이라지만, ‘챗지피티’가 제 인생을 더 불확실하게 하는 것 같달까요.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영상물도 제작한다는데 인간은 대체 뭘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건 ‘교육’입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실시간 외국어 통번역이 가능해진 시대에 지금처럼 외국어 교육에 집착해야 하는지, 웬만한 개발자는 대체 가능하다는데 대학이 코딩을 필수교양과목으로 고집해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물론 인공지능을 ‘잘 다루기’ 위해선 이전보다 더 ‘기본기’를 잘 갈고닦아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만, 그럼에도 교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고백하자면, 인공지능이 선물할 수 있다는 그 ‘끝없는 가능성’이 좀 숨 막힙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당신은 뭐든 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어’란 구호가 상상하게 하는 수많은 가능성과 선택지, 그게 인생을 더 ‘불확실’하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지난 표지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썼습니다. 가짜뉴스·혐오·피싱의 향연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내기는 중요한 과제라고요. 하지만 기사를 다 쓰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 ‘끝없는 가능성’ 앞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아이들에게 ‘단단한 마음’을 가르쳐주는 게 학교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요. 그 방법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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