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결혼식 참석차 내가 사는 도시에 온 아빠와 만났다. 용산역 안 어느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레퍼토리처럼 돼버린 결혼 이야기에 도달했다. 지난 추석 때는 준비된 참을성이 동났는지 할아버지 묘 앞에서 “아, 결혼 얘기 하지 말라고오~” 하며 생떼를 부렸는데, 이번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을까?”라고 아빠에게 돌려 물었다. 아빠가 내놓은 답이 뜻밖이었다. 바로 “네가 사는 구조” 때문이라는 것. 그 구조 때문에 내가 딱히 외롭지도 않고 잘 먹고 잘 지낸다는 것.
맞다. 그 ‘구조’가 아니었다면 내 서울살이는 훨씬 힘들었을 거다. 어땠을지 상상도 잘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란, 내가 10년 가까이 여성 친구들과 한집에 사는 방식을 말한다. 거실과 부엌을 공유하는 하우스메이트 수준으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어느새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재작년부터는 유기견을 입양해 함께 돌보며 살고 있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났다. 물론 처음부터 가족이 되기 위해 모인 건 아니지만 어떤 씨앗들은 공유했다.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학교 안팎의 여러 현장에 연대하면서 가꿔온 지향점이 한집을 넘어 한 사회 안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게 했다. 여성과 퀴어, 소수자가 이루는 공동체에 대한 로망도 공유했고, 사회적으로 안정됐다고 여겨지는 정상가족보다 그쪽을 더 자유롭고 해방적으로 느꼈다. 그 안에서 내가 나일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조금씩 자라나는 나무처럼 이 방향으로 삶의 가지를 뻗었다.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뉴스에 분노하며 위로하고, 온갖 스포츠에 새롭게 도전하고, 채식 요리를 나눠 먹고, 강아지를 함께 산책시키며, 다달이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며 사는 우리. 뭐라 할까, 이 안정감을? 이 고요한 파동이 멀리 떨어진 각자의 부모님들에게도 전해진 탓에, 딸들이 결혼하지 않고 이대로 쭉 살 것 같은 불안감마저 선사한다. 이미 존재하는 이런 삶의 방식이 법과 정책과 규범으로부터도 지지받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얼마 전 여성가족부도 비혼·동거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한 참인데, 여성가족부를 대신하겠다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이런 일을 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 내 생활동반자들과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되고, 주거정책의 도움을 받아 함께 마련한 집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을 테다.
지난달엔 대학 친구의 결혼식에 생활동반자들과 다 같이 다녀왔다. 처음 가본 퀴어 결혼식이었다. 지금까지 본 결혼식과 무엇이 달랐냐면, 퀴어 하객이 가득한 것, 비건 코스 요리가 준비된 것, 신부의 반려견이 화동이 되어 예물을 가져다준 것, “차별과 혐오가 아닌 연대와 사랑”을 말하는 성혼 선언문이 낭독된 것, 결혼식 이후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괌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달랐다. 반면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아름다운 커플이 이 식의 주인공이란 것,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 것이 여느 결혼식과 같았다.
이 자리에 참석하고서야 비로소 죽기 전 해볼 만한 의례로서 결혼식을 고려해보게 됐다. 아니면 지금 사는 친구들과 함께 ‘친족식’을 열어 삼(三)가의 부모님과 친구들을 모아 파티를 여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제멋대로인 우리 개가 예물을 날라주길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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