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자야(가명, 몽골 출신 40대 여성)씨를 만난 것은 2021년 10월, 경상도의 한 시내 인력사무소 앞이었다. 그의 머리 모양은 언더컷으로, 아래쪽은 머리카락을 짧게 밀었고, 위쪽은 금발로 염색해서 하나로 묶었으며, 키도 훤칠했다.
졸자야씨는 2009년 결혼해 한국으로 왔고, 당시 그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6개월 정도 결혼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집을 나왔다. 부산의 한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고 여러 일터를 전전했다. 월급을 떼인 적도 있었지만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2020년 1월,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그는 경남 진주에서 설 선물세트로 사과를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용허가제로 오기로 한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19 탓에 입국을 못하자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해졌다. 졸자야씨는 농촌으로 갔다.
“지난해에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코로나19) 많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양파밭 사장님이 우리한테 물어봐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우리가 ‘몽골 사람이에요’라고 하니까 밭에 와서 일해도 된다고 했어요. 일하러 갔는데 사장님네 아이가 저희한테 또 물어봐요. ‘몽골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 그럼 코로나 걱정 안 해도 되네’라고 말해서 너무 귀여웠어요.”
한국에서 코로나19에 가장 많이 걸리는 사람들의 국적은 어디일까? 당연히 한국인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이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특정 국가 출신의 이주민이 코로나19에 걸린다’는 차별과 혐오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 시각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도 전달됐다.
코로나19 시대에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재택근무를 하며 이동거리를 최소한으로 할 때, 졸자야씨는 경상도 곳곳에 있는 마늘·양파·미나리·사과 밭부터 가구공장, 육류 포장, 식당일, 모텔 청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불러주는 곳에 달려갔다. 그렇지만 졸자야씨가 가지 못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몽골이었다.
“불법 사람들(미등록 이주자)이 힘든 게 있어요. 엄마 아빠가 아프시거나 돌아가시면 몽골에 못 가잖아요. 그게 제일 마음 아파요. 우리 가족 모두 코로나19에 걸렸어요. 아빠도 지난해에 돌아가셨는데 몽골에 못 갔어요. 많이 울었어요.”
비자 기한이 만료돼 미등록으로 사는 졸자야씨는 몽골로 출국하면 다시 한국에 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미등록 노동자가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지만 정작 본국에는 가지 못했다.
졸자야씨가 보여준 휴대전화에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얀센 백신을 추가 접종한다는 안내 문자가 와 있었다. 이 문자를 받을 당시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이 백신을 접종받으려는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가 코로나19에 걸리면 한국 사람도 걸릴 수 있으니까 우리는 백신을 다 맞아요. 그런데 백신 맞으러 가서 경찰에 잡히면 다른 사람들이 안 가요. 일단 백신 접종은 해야 해요. 그리고 단속은 나중에 해야 해요. 사람들이 잡히면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때문에 백신 접종받으러 안 가요. 외국인이 코로나19 걸리면 한국 사람도 걸리잖아요. 그거 위해서도 잡기는 나중에 해야 해요.”
졸자야씨와 대화가 끝나고 어둑해진 길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시내 도로를 무단횡단하려고 하자 졸자야씨가 말렸다. “그러니까 우린 불법체류자인데 불법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합법적으로 살아야 해요. 우리는 꼭 횡단보도로 길 건너요.”
미등록 체류 상태로 살아가며 힘든 점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졸자야씨는 늘 반듯했다. 한국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지, “우리는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잡아먹지 않았어요”라고 강하게 말했다. 횡단보도로 길을 건넌 뒤, 헤어지면서 졸자야씨는 인사말을 건넸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주니까 고마워요. 사람들이 와서 일해달라고, 이런 식으로 말했지, 우리한테 직접 와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었어요.”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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