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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버스 타고 가세요”의 진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비난 발언, 그 진위는?
등록 2022-04-11 16:33 수정 2022-04-14 02:33
2002년 9월11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선로 점거투쟁에 나선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이 경찰에 의해 옮겨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년 넘게 이어져왔다. 연합뉴스

2002년 9월11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선로 점거투쟁에 나선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이 경찰에 의해 옮겨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년 넘게 이어져왔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했다. 그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페이스북과 방송을 통해 전파된 이 대표 발언의 진위를 따져봤다.

‘2022년까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박원순 시장과 약속을 했고, 이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오세훈 시장에게 항의한다는 의미로 서울시민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 운행을 반복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2022년 3월25일 이 대표 페이스북)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건 사실이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인 2015년 12월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이동권 증진 실천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서울 지하철 전 역사 ‘1동선 확보’(역 출입구부터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 이동 가능)와 2025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 등을 약속했다. 현재 서울시 지하철역(서울교통공사 운영 구간 기준·1~8호선과 일부 9호선 역) 중 ‘1동선’을 확보한 역은 93.0%(2021년 기준)다. 서울 시내 저상버스 보급률은 57.8%(2020년 기준)다.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1역 1동선’을 100% 확보할 계획이다. 2022년에서 2024년으로 기한을 연기했다.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킨 건 박원순 시장만이 아니다. 2002년 8월29일 이명박 서울시장도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에는 2004년까지 모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여러분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도 마련토록 했다’고 했다.

정작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이 전면에 내건 요구사항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2021년 12월6일 혜화역 지하철 출근 선전전을 시작할 때 요구사항은 ‘교통약자법’ 개정안 국회 통과였다. ‘버스 교체·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등) 지역 간 차별 철폐’ 등을 위한 법 개정이다. 법 통과 이후 2022년 1월 무렵부터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론 ‘특별교통수단 운영’ ‘탈시설 권리’ `하루 24시간 활동 지원' '장애인 평생교육' 등을 위한 국비 예산 보장과 관련 법률·시행령 제·개정 등이다. 이런 요구와 항의의 대상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아닌 국회와 정부(대통령직인수위원회)다.

‘이동권 관련해서 전장연의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 서울시민 불특정 다수를 볼모 삼는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3월26일 페이스북)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대통령직인수위에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위하는 게 아니다. 다만 설치율이 100%에 미달한다는 건, 여전히 사고 위험을 내포한다. 설치율(89.9%)이 현재보다 불과 3%포인트가량 낮았던 2017년 10월20일에도 신길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가 벌어졌다. 통계에 가려진 현실이다.

“0에서 94까지 설치율이 올라가는 동안에 지하철 문에 휠체어를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30, 40분씩 그렇게 서울 지하철을 마비시켜서 얻은 결과냐,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예산이 조금씩 배정되고 그래서 설치된 거거든요. 0에서 94까지 오는 과정 중에 그게 없었는데 94에서 100으로 가는 과정 중에 그게 필요할까요?”(4월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설치율 0%에서 94%까지 오는 과정 중에 ‘그게’ 있었다.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와 버스를 점거했다. 2001년 2월6일 서울역 지하철 1호선 철로 점거(30분가량 진행, 32명 경찰 연행), 3월9일 제1차 ‘장애인과 함께 지하철을 탑시다!’ ‘지하철 연착 투쟁’, 7월23일 제1차 ‘장애인과 함께 버스를 탑시다!’ 버스 점거 투쟁 등이 있었다. 2002년 5월22일 발산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사고 이후엔 8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단식 농성, 9월 시청역 1호선 철로 점거(1시간가량 진행, 76명 경찰 연행) 등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서울시로부터 ‘지하철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 추진’ 약속을 받았다. 2005년 1월27일엔 ‘교통약자법’이 제정됐다. 처음으로 법에 ‘이동권’ 개념을 명시했다.

‘또다시 전장연은 실토합니다. 결국 지하철 시위를 하는 이유는 이미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의) 94% 설치가 되었고 3년 뒤에 100% 설치될 것으로 약속이 완료된 이동권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평생교육법안, 탈시설 지원 등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지하철 타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아닙니까?’(3월27일 페이스북)

이제 와서 실토한 게 아니라, 2021년 12월6일 이후 전장연이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하며 줄기차게 요구한 내용이다. 교통약자법 개정안 국회 통과와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및 관련법 제·개정을 촉구했다. 투쟁 대상은 ‘지하철 타는 시민’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다. 지하철역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본격화한 상징성 있는 공간일 뿐이다.

‘출입문 사이에 고의로 정지해서 지하철 운행을 막는 모습. 할머니 임종 지키러 가야 한다는 시민의 울부짖음에 버스 타고 가라고 응대하는 모습, 더 이상 이걸 정당한 투쟁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3월25일 페이스북)

지하철 출발이 지연되자, 한 승객이 ‘할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한다’고 호소하는 장면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영상에는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이 그 승객에게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모습도 담겼다. 이 장애인은 지하철 출발 지연 과정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앞뒤 영상을 보면 그는 “버스 타고 가세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저도 그런 걸 당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저도 그래서 임종을 못 봤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지 못한 사연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대표의 글에선 이런 맥락이 삭제됐다.

“(박경석 대표의) 배우자 되시는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이번에 종로도 출마하셨죠. 그분이 과거에 문재인 정부의 인권위원, 장애인 담당 인권위로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위는 이번에 제가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 특수관계에 있는 분들은 이 사안에 대해서 좀 발언을 자제해달라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 장애인 혐오 발언을 이준석이 한 게 있으면 그걸 소개해 주시면 되는 거고 이렇게 우르르 이렇게 해서 특수관계에 있는 분들끼리 이렇게 이런 분위기 만드시면 안 됩니다.”(4월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22년 4월1일 전장연 박경석 대표 등과 면담한 인권위 관계자가 ‘이준석 대표 발언 이후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혐오나 차별이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한 데 대한 이 대표의 발언이다. 전 인권위원의 가족관계(전장연 대표의 배우자)를 고려해 현직 인권위 관계자들이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배복주 부대표는 2017년 12월 국가인권위 인권위원(비상임)으로 선임돼 2020년 2월 물러났다. 이 대표의 말을 조금 빌리면, ‘혐오 딱지’를 붙이기 전에 장애인 혐오 발언을 소개하면 되듯, ‘특수관계 딱지’를 붙이기 전에 부적절한 발언을 지적하면 된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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