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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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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성범죄자 될 수 없다?

강제추행 범죄자의 14.6%, 61살 이상 노인층노인에게 온정적인 수사기관·법원도 문제
등록 2021-11-07 06:47 수정 2022-05-17 01:40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피고인은 70살이 넘은 구세대로 (…) 세대 간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피고인은 아무 힘이 없고 병든 노인일 뿐 (…) 73살의 고령으로 두 차례 암 수술을 했으며, 체력이 저하된 상태로 심신이 정상이 아니다. 부산시장 취임 당시에도 치매 소문이 있었고, 성폭력 사건 직후 심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검사했더니 경도의 인지장애(치매) 진단을 받았다.”

노인 성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2020년 6월21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 결심공판을 방청하며 받아적은 피고인 쪽 변호사의 최후변론 일부이다. 노인 성범죄자의 심신상태, 생애 등을 들어 피해자에게 이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실제 많은 노인 성범죄자가 고령자에 대한 온정적 시각을 악용해 선처를 받아냈다. 이제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됐다.

한국은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16.5%

(853만7천 명)에 이르는 고령사회다.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통계청은 예측한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43.4%(2018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7%)의 약 3배에 달한다. 노인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다.

노인 범죄 비율도 증가 추세다. 대검찰청 ‘범죄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65살 이상 피의자 비율이 10%(2021년 1분기 기준)에 이른다. 2014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생계형 범죄가 대다수이지만 강간, 강제추행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경찰범죄통계’를 보면, 61살 이상 노인층은 강간 범죄자의 6.9%, 강제추행 범죄자의 14.6%를 차지한다. 해마다 증가 추세다. 노인 성범죄는 이제 더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노인 강력범죄가 늘어나는 요인으로 노인 인구 증가, 건강상태 개선, 경제적 빈곤, 사회적 지위 상실·고립 등을 꼽는다. 이외에도 ‘노인은 강력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과 그에 기반해 노인층을 범죄 대상으로만 보고 만드는 각종 정책, 노인층의 재사회화 교육 미비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해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노인 성범죄자에게 각종 이유를 들어 온정적으로 대하는 관행도 있다.

우발적 범행 주장하지만 사실 상습범

노인 성범죄자들은 여느 성범죄자와 마찬가지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상습범인 경우가 많으며 상당수 아동이나 장애인 등 취약한 피해자를 목표로 삼는다. 2014년 1~6월 서울지방경찰청이 아동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집중 단속해 20명을 검거했는데, 16명이 60살 이상 노인이었다. 최근에도 조카를 대상으로 성추행과 불법촬영 등 범죄를 저지른 60대 남성 노인, 13살 미만 손주를 대상으로 성폭행과 불법촬영 등을 한 70대 할아버지, 처음 만난 장애인을 성폭행한 68살 남성 등 취약층 피해자를 노리는 노인 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홀몸노인 수가 늘면서 돌봄노동자에 대한 성범죄도 이어진다. 2020년 서울시에서 요양보호사 23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2.4%가 ‘업무 중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만나는 많은 요양보호사가 업무 중 성폭력 피해를 토로했다. 그들 가운데 85%가량은 50대 여성이다. 대부분 50~60대 여성인 ‘보훈섬김이’ 역시 국가보훈처노조의 조사 결과 매년 응답자의 10% 이상이 성희롱·성추행 등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보훈섬김이’는 몸이 불편한 국가유공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데, 용어 변경이 필요한 직업 중 하나다.

노인 성범죄자라고 하면 거동이 불편하거나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홀몸노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계층의 노인이 성범죄를 저지른다. 특히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신의 지위, 권력 등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오거돈 같은 정치인을 포함해, 제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대학교수도 있다. 종교인이나 80대 노인회장 같은 성범죄 사례도 있다.

노인 성범죄자가 저지르는 성범죄 유형 중 90% 이상이 강간·강제추행이지만, 스마트폰 보급이 일반화되자 불법촬영 등을 포함한 디지털성범죄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길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을 휴대전화로 불법촬영을 하다가 도주한 70대 남성, 자신이 운영하는 모텔에 이동형 불법촬영 기기를 설치해 투숙객을 불법촬영한 60대 남성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현실은 이렇지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전히 노인 성범죄자에게 온정적 시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20대 피해자가 70대 남성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해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자 수사관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도 않고 피해자에게 ‘(인생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인데 좋게 해결하라’는 식으로 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노인을 기소해서 재판으로 넘어가더라도 피고인의 건강상태 등을 이유로 재판을 지연하거나, 피해자의 일방적인 이해와 관용을 강요하는 전략을 피고인 쪽이 구사하기도 한다. 피고인의 ‘고령’ ‘건강상태’를 이유로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도 많이 목격했다.

인생 얼마 안 남았으니 좋게 해결하자?

노인 성범죄자가 자신의 건강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지인이나 가족이 심각한 추가 가해를 하는 일이 많아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워한다. 취약계층인 가해자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내세워 신고나 고소를 막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도 선처를 구한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가해자의 경우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간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 피해자에게 심신 문제(치매, 정신질환 등)가 있다며 압박하기도 한다. 지인과 주변인이 피해자를 찾아와 신고·고소 철회나 합의를 강요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제 노인 역시 강력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노인 성범죄자는 어떤 계층이든 자신의 취약성과 우월성 모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성범죄자가 노인이라고 봐주는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오히려 그런 관행이 노인 성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관리를 어렵게 하고 취약계층 피해자를 양산함을 알아야 한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다. 그러나 누구나 ‘어르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인 역시 사회 일원으로서 책무가 있으며, 사회는 그런 노인을 보호·관리할 책임이 있다. 재범률이 높고 교정과 개선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받는 노인 성범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간 방치됐던 노인 범죄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생계형 범죄가 아닌 성범죄 같은 강력범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양형에 연령 반영을 숙고하는 등 그간 방치했던 노인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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