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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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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멍 들었는데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한다

청주교육청 초등 교사들이 직접 만든 ‘학대 체크리스트’ 20개 문항
등록 2021-11-02 23:02 수정 2021-11-03 13:13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 뭘 할 수 있을까요?”

한 장학사가 물었다. 2021년 5월3일, 충청북도 청주교육지원청에서 실시간 화상강의로 진행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교육이 끝날 무렵 나온 질문이다. 294명 전 직원이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시간 동안 2008~2014년 아동학대로 숨진 아동의 실태를 탐사보도한 <한겨레> 기사를 묶은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시대의창) 공동저자로서 취재 현장 이야기를 한 뒤였다.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25개 직군 중 개별 체크리스트는 의료계 정도에만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나서주세요.”

의심될 때 가장 먼저 꺼내볼 자료 되길

그 뒤 청주교육지원청은 ‘초등학교용 아동학대 징후 체크리스트 제작 협의체’와 현장교사 9명이 참여하는 체크리스트 제작 실무단을 자발적으로 꾸렸다. 이들은 신고의무자 공통 체크리스트를 학습하고 초등학생의 신체·정서·성 학대와 방임을 감지하게 해줄 문항을 연구했다. 교사, 경찰, 의사,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전문가 140여 명의 검토를 거쳤다.

그리고 9월29일 교육계의 첫 아동학대 체크리스트(사진)를 발표했다. 체크리스트는 모두 20개 문항이다. 1개 문항 이상에 ‘예’라고 체크된 경우 아동학대를 의심해볼 상황이라고 체크리스트는 안내한다. 문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처 및 흉터에 대한 아동과 보호자의 설명이 불명확하거나 일치하지 않는다 △아동이 보호자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보이고 집에 가는 것을 주저한다 △어른이 다가가면 깜짝 놀라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실수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불안·초조해하며 과도하게 걱정한다 △수시로 욕설이나 자기 비하 발언을 한다 △취학 시기에 입학하지 않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지각이나 결석을 자주 한다 △나이에 비해 몸무게가 지나치게 적거나 많은 등 불균형한 신체 상태를 보인다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하거나 조숙하고 해박한 성 지식을 보인다.

이 작업을 기획한 청주교육지원청 학생지원과 노미란 장학사는 “학대 피해 아동의 40%가 초등학생인 만큼 학교에서 아동학대가 의심될 때 누구라도 제일 먼저 꺼내어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싶었다”며 “너무 설명이 많아 무겁거나 지나치게 담은 내용이 없으면 활용도가 떨어질 것 같아, 한 장의 리플릿(종이쪽) 형태로 만들고 카드뉴스도 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시간”

체크리스트 제작 작업에 참여한 장예슬 교사(옥포초등학교)는 “얼굴에 피멍이 들었는데 한사코 ‘계단에서 넘어졌다’던 아이가 결국 ‘도와주세요, 아빠가 무서워요’라고 해서 신고했다가 협박과 폭언에 시달렸다”며 “학교에 근무하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학대 상황에 대한 판단과 신고에 따른 두려움’일 텐데 이 체크리스트가 객관적인 도움을 얻는 첫 번째 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현정 교사(성화초등학교)는 “아동학대는 어른의 눈이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현정 상담교사(각리초등학교)는 “위기 학생을 종종 만났는데 그때마다 초기에 그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다”며 “학대받는 아이들의 심리적 어려움이 드러나는 부분을 객관화해 누구든 조기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자기 자리의 시스템부터 바꿔나가기. 청주교육지원청이 보여준 희망이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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