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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실리콘밸리에선 ‘슈퍼맘’이 아니어도 괜찮아

소셜벤처 몰려 있는 ‘성수밸리’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여성 52명 심층분석
한국은 일과 양육 ‘이중부담’ 비중 높아… 미국은 엄마아빠 서로 도와

제1378호
등록 : 2021-08-29 01:40 수정 : 2021-08-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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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25~34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M자 곡선’이 만들어진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비영리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2018년부터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임팩트 커리어 W’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은 ‘경력단절여성’이 아닌 ‘경력보유여성’으로 호명됐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 독려하고 지지받는 경험을 쌓았다.

루트임팩트는 다년간의 프로그램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경력보유여성의 경험이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21년에는 박은연 박사(우나 메사 어소시에이션)·김영미 교수(연세대 사회학)가 한국과 미국의 여성 52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경력보유여성의 목소리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일·가정 양립을 위한 첫걸음으로 성평등한 유연근무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_편집자

평균 연령 38~39살, 평균 자녀 수는 1.3명, 전원 대졸. 학교 졸업 뒤 직장을 다녔고, 결혼·출산·육아를 경험했다. 여기 나이도, 환경도, 교육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들이 있다. A그룹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B그룹은 소셜벤처 등이 몰려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른바 ‘성수밸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의 차이점은 바로 사는 곳이 다르다는 것, 이로 인해 다니던 직장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25~34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형 M자 곡선’이 만들어지는 원인이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비영리단체 ‘우나 메사 어소시에이션’(Una Mesa Association)의 박은연 박사와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20년 4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간 심층 인터뷰를 통해 두 곳에서 일하는 여성 52명의 삶의 경로를 추적하고 분석했다. 경력보유여성의 재취업 등을 지원해온 비영리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주관으로 시작된 이 연구에 따르면, 성수밸리 여성은 실리콘밸리 여성에 견줘 일과 육아를 이중부담하는 비율이 높았고, 삶의 만족도도 실리콘밸리 여성보다 낮았다.

성수밸리
한국 소셜벤처에서 근무하는 김우정(46)씨와 안효경(36)씨는 모두 돌봄노동 전담자가 되면서 경력이 단절됐다. 마케팅·브랜드 컨설팅 분야에서 일했던 김씨는 첫째 아이를 가지면서 경력단절이 시작됐다. 둘째 아이까지 키운 뒤 그가 사회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7년. 앞서 일한 기간과 꼭 같다. 김씨는 “공부를 더 하는 바람에 나이가 (평균보다) 더 많은 상태에서 회사로 들어갔고, 이 때문에 육아와 함께 사회와는 ‘바이 바이’(Bye, bye)라고 생각했다. 경력이 끝났고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경력단절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선 모든 여성이 출산 뒤 3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주변 여성들이 다 그렇게 복귀하니까 3개월이면 몸도 회복되고 아이랑 친밀도가 쌓여 안정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줄만 알았죠.” 그가 복귀를 포기한 건, 첫째 아이를 잠깐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갔다 온 사이 아이에게 사고가 나면서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자 자신이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새우거나 외국 출장을 다니는 일이 잦은 업무였는데 육아와 병행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일하는 건 ‘내 욕심’이란 생각도 자꾸 들었고, ‘엄마가 희생해야 한다’는 의식도 있었고요. 남편은 그렇지 않았는데 저만 자꾸 죄의식이 생겼던 거예요.”

한 달 50만원짜리 재택 알바도 떨어져
김씨가 다시 취업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무기력하게만 있지 않고,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스스로 ‘경력단절여성’이란 주홍글씨를 달았다. ‘과거에 일적으로 인정받았던 나’는 사라진 채 아이에게만 파묻혀 사는 ‘이름 없는 엄마’였던 시기였다”고 그는 돌아봤다.

안효경씨는 비교적 일찍 취업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첫 직장이 생겼다. 교육 컨설팅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던 안씨에게 뜻밖의 일이 닥쳤다. 어머니가 아프면서 어머니를 돌볼 전담자가 필요했다. 안씨는 결국 회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결혼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지금껏) 일을 잘해왔으니 다시 (회사에) 잘 돌아올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안씨는 이후 취업시장을 맞닥뜨리면서 뒤늦게 “곧 아이를 출산할 여성이 사회로 다시 돌아가는 장벽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있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임신이라도 해야겠다 싶었고, 아이를 낳고 나선 ‘적어도 3년은 엄마가 키워야지’라며 스스로 (일종의) 핑계를 대왔다”고 했다.

새롭게 일을 구하려는 시도를 안 했던 건 아니다. “취업 사이트를 통해 이곳저곳 지원해봤는데 잘 안됐죠. 면접 볼 때 ‘아이가 아주 어린데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사회로 너무 돌아가고 싶어서 ‘일찍 출근도 하고 야근도 할 수 있다’고 거짓말했다가 결국 나중에 ‘못 갈 것 같다. 죄송하다’고 한 적도 있어요. 내가 지원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아이 등·하원을 신경 쓰기 위해 경력과 아무 관련 없지만 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반 사무직에 지원한다거나, ‘맘카페’에서 한 달에 50만원짜리 재택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기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니까 자존감도 떨어지고 주눅 들어 있었어요. (기존에) 남편이랑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 남편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도 많이 났죠. ‘만약 남편이 나처럼 재취업을 준비한다면 과연 남편도 아이 등·하원 문제까지 신경 쓸까?’란 의구심도 들었고요.”

정부의 지원책도 효과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그는 “경력단절여성을 대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모집공고가 떴지만 대부분 인구조사를 담당하는 단기계약직, 방과후 교사, 상담사, 콜센터 등 경력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체감하며 없었던 분노도 생겼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정소영(43)씨와 성기애(41)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거주 중이다. 정씨는 2008년 남편 직장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현재 아이 세 명을 키우며 QA(Quality Assurance·품질보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원래 한국에선 생물학을 전공하고 연구했는데 미국에 와서 전공을 바꿨어요. ‘코세라’(Coursera)라고 하는 온라인교육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해 지금은 상근직(Full-time Job)으로 일하고 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완전히 다른 직업을 얻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재취업 과정에서 회사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일은 없었다.

‘아이 때문에 일 제대로 할 수 있냐’고 묻지 않는다

정씨는 “일하는 이들 대부분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엄마나 아빠란 점을 다들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돌봄을 하면서 주어진 일을 잘해낼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고정해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유연하게 나눠서 하는 것도 인정됐다. 아이가 아플 때 병가 등 유급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정씨는 “팬데믹으로 학교가 ‘셧다운’ 됐을 때 회사가 눈치 보지 않고 일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아빠들이 학교 현장학습 등에도 활발히 참여하다보니, 회사에서도 ‘아이가 있는데 일만 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느 정도 직급이 있는 남성이라 해도 회사 일뿐만 아니라 양육이나 아이의 학교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씨 부부는 아이 양육과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나름의 합의선을 만들었다. 셋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만 정씨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이후 정씨가 상근직으로 일하면 남편이 조금 더 육아를 맡는 식이다. 정씨는 “남편도 스스로 양육자란 점, 제게 커리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보니 서로서로 돕는 형태”라며 “육아에 최선을 다하되 (서로)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다른 도움도 받자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성기애씨는 2014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옮겨온 뒤 이곳에서 웹개발 플랫폼 기업 ‘꿈’(Qoom)을 창업했다. 창업까지 걸린 시간은 약 5년이다. 비자 문제로 정식으로 취업하진 않았지만 그는 이 시기 동안 틈틈이 UX(사용자경험) 디자이너나 프로젝트 매니저 등으로 일했다. 비록 정기적인 ‘월급’을 받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성씨는 “관련된 일을 계속해왔기에 경력이 단절된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기간에 실리콘밸리 인근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재취업을 돕는 비영리단체 ‘심플 스텝스’에서 봉사활동을 지속한 경험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생활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면서 계속 일하려는 여성 선배들이 주위에 멘토로 있죠. 이곳에서도 이공계는 ‘남초’ 분야지만, 서로 동지처럼 응원해주고 낯선 곳에서 위축되지 않게 보듬어주는 (일종의) 커뮤니티가 있다보니 연대감이 형성됐고,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 북돋워준 것이 창업하는 데 큰 용기가 됐어요.”

4가지 유형
앞서 네 여성의 삶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박은연 박사와 김영미 교수는 한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고학력 경력보유 여성 52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이들의 생활양식과 경험, 행동에 따라 네 유형으로 나눠 설명했다. △양육과 직장에 대한 부담을 함께 지는 ‘이중부담’형 △출산 때 경력이 단절됐다가 돌봄 부담이 줄어든 뒤 일하길 바라는 ‘포스트 돌봄기’형 △남편과 일·양육·가사를 함께 상의하고 돕는 ‘네트워크 워라밸’형 △일도 좋지만 가사·양육의 가치를 인정받는 삶에 만족하는 ‘만족스러운 돌봄자’형이다.

지지자는 ‘나’ vs ‘남편’
이 중 한국의 경력보유여성(32명)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이중부담’형으로 전체의 55%였다. ‘이중부담’형은 “남편이 마음껏 일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육아를 도와주지는 않”고, 나의 든든한 지지자로 ‘나 자신’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가족의 권유로 경력이 단절된 사례였다. 반면 미국의 경력보유여성(20명)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 유형은 ‘네트워크 워라밸’형으로 전체의 31%였다. 이들은 남편을 일과 양육에 대해 서로 상의하고 돕는 실질적인 조력자이자 지지자로 꼽으며, 경력단절의 사유와 시점도 각기 다양했다.

네 유형 중 ‘네트워크 워라밸’형은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이중부담’형은 가장 낮았다. 또 ‘네트워크 워라밸’형의 평균 자녀 수는 1.3명으로 ‘이중부담’형의 1.1명보다 많았다. 월소득도 ‘네트워크 워라밸’형이 약 2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은연 박사는 “개인적 조건이 유사한 한국의 경력보유여성들이 실리콘밸리의 환경에 놓이면 재생산성과 생산성, 양쪽이 모두 20% 이상 높아질 확률이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연구진은 여성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규범적 환경’(Normative Environment)과 여성이 이용 가능한 ‘사회적 자원’(Network Resource) 두 기준에 따라 똑같이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이라도 세부 유형이 나뉜다고 봤다.

한 여성이 아이를 안은 채, 여성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인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 중 재취업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7.8년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경제적 자원보다 중요한 ‘네트워크’
규범적 환경은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성역할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이는 경력을 이어가려는 여성의 열망이 조정되는 기준이 된다. ‘여성이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육 역시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에선 여성이 ‘이중부담’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성수밸리에서 근무하는 김우정씨가 “아이를 돌보지 않는 죄책감”을 느꼈다거나 안효경씨가 “취직을 알아볼 때도 아이의 등·하원을 걱정”하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남녀 모두 육아를 할 수 있으며 육아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내 아이를 꼭 내가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환경에선 여성이 ‘네트워크 워라밸’형으로 생활할 수 있다.

연구진은 또 경제적 자원보다 ‘사회적 자원’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경력단절여성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취업 기회를 주고받고, 이들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돌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할수록 일과 가정의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우정씨와 안효경씨는 모두 경력보유여성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의 ‘임팩트 커리어 W’ 프로그램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다.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무너졌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 이름을 다시 찾은 기분”(김우정)이고 “회사에서 여성들이 결혼·출산·육아로 연례행사처럼 사라지는 것만 보다가 (내가 겪은 걸) 먼저 경험한 여성을 만나면서 연대감을 통해 치유받았다”(안효경)고 말했다. 성기애씨가 ‘심플 스텝스’라는 여성 커뮤니티를 통해 끊임없이 동력을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안: ‘일하는 방식’의 전환
여성의 경력이 한 번 단절되면, 이를 복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복귀 이후에도 계속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다. 여성가족부의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2019년)를 보면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 중 이후에 재취업한 적이 있는 여성은 전체 응답자의 57.7%였으나, 조사 시점까지 취업 상태를 유지한 여성은 45.2%, 재취업한 첫 일자리에서 계속 일하는 여성은 24.6%에 불과했다. 이들이 재취업하는 데 걸린 기간도 평균 7.8년이다. 박은연 박사는 “한국 여성의 M자형 곡선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에 비해 심각한 수준일 뿐 아니라, 특히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은 경력단절 이후 다시 고용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L자형 양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짚는다.

연구진은 경력보유여성의 경험과 생각을 유형화하면서 ‘경력보유여성’ 내부의 이질성을 짚어냈다. 한발 더 나아가 경력단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무엇이 환경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알면 (변화를 만드는) ‘지렛대’를 당겨볼 수는 있잖아요. 규범과 문화를 바꾸는 건 쉽지 않지만 일하는 방식을 바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할 수는 있죠.”(박은연 박사)

실제로 연구진이 국내 소셜벤처 107곳과 스타트업 20곳 등 총 127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7%가 경력단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 내 성평등한 유연근무제 안착’과 ‘남성 육아휴직 확대’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았다. 특히 “유연근무를 육아기 여성의 근무형태로 제한할 경우 일터 안에서 여성의 주변화, 돌봄 영역에서 남성 부재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성별 구분 없이) 시간과 공간을 재량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한 근무를 확산해야 남성의 육아와 가족 돌봄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도가 정착될 때 가사노동을 성별에 따라 분담해온 규범적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아울러 일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동료와 같은 ‘사회적 자원’의 영향을 받는 만큼 수평적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원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여성이 정보와 기회, 영향력 등을 공유하면서 일터와의 연결망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지금처럼 공공보육이나 아동수당 등 경제적 지원에만 국한되는 정책을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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