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국선변호사는 피해자의 권리와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피고인은 수사·재판 절차를 지원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저버렸다. 특히 기억 환기 차원에서 피해 내용을 물어보며 재연을 빙자한 위계를 사용해 추행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중하다.”
40대 남성 변호사 추아무개씨는 1심(광주지법 제3형사부 오연수 재판장)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021년 1월 구속 기소된 뒤 3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네 차례에 걸친 선고기일 변경 끝에 나온 결론이다. 7월 선고 바로 전날 피고인 추씨는 또다시 변론 재개 신청을 하며 선고를 미루려 했으나 재판부는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피해자 의사를 전달하는 대리인으로, 피해자를 보호·감독하는 관계가 아니므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를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 쪽 주장에 대해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의 취지(법률 조력, 추가 피해 방지 등)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법령의 위헌 여부가 아니라 재판부의 해석 범위를 다투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실형 선고 뒤 그는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은 시행 10년 정도에 접어든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의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도만 도입하고 변호사 개인의 역량에만 맡긴 채 법무부가 실태 파악이나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결과가 바로 이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 불만이 많던 피해자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신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참여했던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은 자괴감을 호소한다.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2012년 도입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피고인을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와 다르다. 이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당사자의 지위를 갖게 되는 피고인과 당사자가 아니라 참고인, 증인의 지위에 불과한 피해자의 차이와도 연결된다. 피고인 국선변호인은 법원에서 관리하며 헌법에 명시된 방어권을 보장하는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면,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법무부가 관리 주체이며 수사·재판 절차에서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법률 자문 등 보충적 역할을 한다.
2021년 현재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전담 변호사 23명과 비전담 변호사 6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피해자가 수임 비용을 부담하는 사선변호사와 달리 국선변호사는 국가가 비용을 낸다. 수사기관은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기 전에 피해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변호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변호사가 없을 경우 피해자 국선변호사 신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를 돕는다.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 조사 동석 △보복 위험에 대비한 피해자 보호조치 강구 △재판에서 사건에 대한 의견 진술 △피해자를 배제할 때 문제 제기 △공판검사와의 협의까지 그 역할은 방대하다.
그러나 이런 조력을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실제 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에 대한 피해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낮은 이유다. 2019년, 2020년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연대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국선변호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1 국선변호사 선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수사기관의 문제도 있지만, 국선변호사를 선임하더라도 피해자는 연락하기조차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재판으로 넘어가면 국선변호사가 공판에 출석하는 일이 드물고, 심지어 피해자 증인신문 때 동석하지 않기도 한다. 사건 파악이 안 돼 있거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한 정보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연차가 낮은 변호사들의 경우 경력을 쌓기 위한 용도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업무를 맡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피해자에게 전달하거나 경험 미숙으로 적절한 조력을 못하기도 했다. 연차가 제법 되는 변호사 중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 업무를 맡아 이를 본인의 개인 업무 광고에 적극 활용하는 이도 있었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알게 된 피해자의 정보를 유출한 피해자 국선변호사도 나왔다.
하면 할수록 손해 보는 국선 변호사 업무그러나 피해자 국선변호사 역시 본인의 업무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많이 토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피해자 변호가 피고인 변호보다 요구되는 것이 더 많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 변호는 단순 법률 조력의 차원을 벗어나 외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피해자와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이해부터 피해자의 상태, 상황에 대한 분석까지 전문적으로 해내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 변호는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든다. 변호사가 피해자의 억울함과 원망, 분노를 받아안아야 할 때도 있고, 피해자 변호 범위가 법적으로 한계가 있음에도 문제 해결 과정과 결과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기도 한다.
둘째, 보수가 적다. 2018년 이후 피해자 국선변호사 보수는 이전의 5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한다. 소명자료를 제출한 뒤 보수를 신청하는 방식의 번거로움이 크고, 조력을 위한 비용 중 통역 등 다양한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이 보전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지방에서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피해자 조력을 위해 피해자 국선변호인 제도를 도입했다고 요란하게 홍보한 법무부는, 실제 피해자 변호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파악하지 않고 그저 변호사들이 신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열악한 환경을 견디고 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할 법무부의 무책임한 행보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업무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피고인 국선변호인 제도는 재판장이 분기, 반기별로 국선변호인 평가서를 작성해 법원장에게 제출하고, 불성실한 변호 활동이 인정되면 법원장은 그 사실을 소속 변호사협회에 통보한다. 하지만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의 경우 실태조사나 관리 모두 법무부 장관의 재량에 맡겨진 상태다. 불성실한 변호 활동을 감지해도 명부 삭제 등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방치돼 있다. 실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 도입 뒤 퇴출된 변호사는 2020년 단 한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수사 초기부터 종결(재판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피해자를 조력하는 제도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관리·감독하는 주체인 법무부가 제구실하지 못하고 피해자들은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로 인해 부정적인 경험을 함에 따라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팽배해 있다. 검사가 형사사법 절차에서 피해자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마저 불성실하고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은 사선변호사를 찾아 법률 시장으로 내몰린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대상으로 ‘성범죄 전문 법인’임을 내세우는 이들만 장사하며 배를 불린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시행 10년에 접어든 이 제도에 대한 검토가 절실하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참고 문헌
1. 연대자 D, ‘성폭력 피해자 64명 대상의 대면/온라인 설문조사’, ‘마녀, 디케를 만나다’ 프로젝트, 2020년 1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우원식 “한덕수, ‘내란 특검’ 후보 추천 의무 오늘까지 이행하라”
[속보] 노상원 ‘계엄 수첩’에 “북의 공격 유도”… 정치인·판사 “수거 대상”
“탄핵 반대한다더니, 벌써 들뜬 홍준표…노욕만 가득” 친한계, 일침
[단독] HID·특전사 출신 여군도 체포조에…선관위 여직원 전담팀인 듯
안철수 “한덕수, 내란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 않는게 맞다”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내란 직후 임명…자격 없다” 국회 행안위서 바로 쫓겨난 박선영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