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물건을 고르고, 구매하기를 누른다. 주문 완료. 다음날 아침, 현관문을 열면 주문한 물건이 배송돼 있다. 초현실적인 속도와 편리함에 중요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완벽해 보이는 이 시스템을 지탱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걸.
2020년 택배노동자들의 잇단 과로사에 이어, 2021년 6월17일 발생한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물류 혁신’ 등 세련된 이름으로 불리던 온라인 배송 서비스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냈다. 소비자가 주문을 누르는 순간부터 사람은 이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돼 빠르게 돌아간다. 물류센터에서, 거리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 사람은 사고와 과로의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흔들린다.
덕평물류센터 화재에 눈길이 가는 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살피지 못한 ‘이커머스 붐’의 그림자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2020년 전국에서 신규 등록된 연면적(각 층 바닥면적의 합계) 1천㎡ 이상 물류창고는 732곳으로 2019년(342곳)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연면적 1만㎡ 넘는 대형 창고는 2020년 한 해 동안 20% 넘게 늘어 ‘대형화’가 대세다. 모두 이커머스 수요가 폭증한 데 따른 것이다.
물류센터가 ‘더 빨리’를 최우선으로 하며 몸집을 불렸지만 화재 등 안전사고 방지 대책과 정부 규제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가 더 필요하지만 쿠팡 노동자들의 주장과 소방 당국의 초기 발표를 종합하면,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났을 때 스프링클러는 지연 작동된 것으로 보인다. 덕평물류센터를 비롯해 창고시설은 건물 구조 특성상 건축법 시행령의 방화벽 규제를 받지 않는다. 10m 이상 물건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대부분 물류센터의 내부 구조는 화재 예방과 초기 진압에 취약하다.
노동자는 모두 대피했지만, 경기도 광주소방서 김동식 119구조대장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보다 ‘더 빨리 배송’에 모든 시스템을 맞춘 선택이 낳은 뼈아픈 결과다.
소비자가 먼저 ‘쿠팡 탈퇴’로 칼을 빼들었다.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정부와 정치가 늦지 않게 응답해야 한다. ‘쿠팡 불매’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대안이 되기 어려운 현실 탓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많은 가정이 빠른 배송 서비스 덕분에 일상을 유지했다. 쿠팡 등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의 삶도 유지돼야 한다. 여러 기업이 새벽배송에 속속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소비자의 편리에만 초점을 맞춰 사람을 계속 ‘갈아넣는’ 시스템이 지속가능한지, 인공지능 알고리즘 최적화를 위해 사람을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게 옳은지… 정부와 정치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질 때다. 새로운 문제가 계속 불거질수록 ‘더 빠른,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늘 그래왔듯 그 답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공론화, 입법, 제도 개선, 적절한 기업 감시와 긴장 관계….
이승준 <한겨레>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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