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북면 일대 산림보호구역에 있는 ‘금강소나무 숲길’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생태여행지다. 지역공동체는 자연을 보전하려고 가이드 동반 예약 탐방제를 도입했고, 여행자는 잘 보전된 자연을 누리고 알아가며, 주민들은 숲길 탐방 운영과 안내에 핵심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춘 여행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당장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걷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뿐. 지난 십수 년간 우후죽순 늘어난 걷기여행 길의 현실을 짚으며, 자연과 문화·역사 속에 파묻히기 좋은 길 10곳도 함께 소개한다._편집자주
수원 화성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곽길이 있다. 건축주인 정조 이산과 설계자인 다산 정약용의 자취를 느끼며 걷는 길이다. 또 조선 왕조와 조선인들이 끝내 이루지 못한 자생적 근대화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으며 걷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화성 걷기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정조의 순행 코스를 따랐다. <정조실록> 1797년 1월29일 기사를 보면, 정조는 신하들과 막 완공된 화성을 한 바퀴 돌았다. 정조의 화성 순행은 ‘화양루 북쪽에서 시작해 화서루(화서문)와 공심돈에 이르렀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화양루 북쪽은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우나 전체 코스를 고려하면 대체로 서장대와 화서문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질적으로 정조의 화성 걷기는 행궁 북쪽의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부근에서 시작됐다.
화서문(빛나는 서문)은 화성의 4개 문 가운데 서문이다. 북문 장안문과 남문 팔달문의 누각이 2층인 반면, 화서문과 동문 창룡문은 1층이다. 화서문엔 서울의 동대문처럼 한쪽이 열린 옹성(성문 밖에 반원형이나 ㄷ형으로 둘러 쌓은 방어 시설)이 있다. 화서문은 1층 누각이 낮은데 바로 옆 당당하게 선 서북공심돈 탓에 더 낮아 보인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동북쪽의 화홍문(북수문), 방화수류정과 함께 화성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정조는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공심돈은 우리 성곽 제도에서 처음 있는 것이다. 신하들은 마음껏 구경하라.” 정조가 자랑스럽게 말한 이유는 이 공심돈이 자신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공심돈은 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의 계획엔 포함되지 않았다. 공심돈이란 ‘속 빈 돈대’라는 말이고, 돈대는 땅을 높인 곳을 말한다. 높이 세워서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대응하는 곳이다. 중국 톈진의 공심돈에서 가져온 서북공심돈은 조선 최초의 공심돈이다.
서북공심돈에서 북문인 장안문까지의 거리는 600m 정도다. 이 구간은 화성 전체에서 가장 평탄하며, 성 밖은 ‘장안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 구간에선 나무와 꽃, 잔디로 덮인 성 밖 길을 걷는 것도 좋다. 성안으로 걸으면 북서포루를 만나는데, 이 건물은 독특하게도 바깥쪽은 우진각지붕, 안쪽은 맞배지붕을 이고 있다. 성안 동네엔 오래된 주택을 카페로 만든 곳들이 눈에 띈다.
장안문은 북문이지만 정문이다. 통상 한국의 전통 도시에선 남문이 정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원은 북쪽 서울에서 오는 임금(정조)을 마중하기 위해 북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장안문은 한국의 성문 가운데 가장 크며 옹성까지 설치돼 더 장대해 보인다. 장안문의 옹성은 막혀 있고, 옹성 중앙에 작은 문과 누각이 있다. 검은 벽돌로 쌓은 옹성은 이국적이다.
장안문에서 350m가량 떨어진 화홍문(북수문)으로 가는 길도 평탄하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화홍문(빛나는 무지개문)은 수원천에 놓인 수문이자 다리로 7칸의 아치로 이뤄졌다. 서울 홍지문 옆의 오간수문(5칸 수문)보다 2칸이 더 많다. 화홍문 앞엔 반달 모양의 광장이 있어 다리를 쉴 수 있다.
화홍문에서 50m 정도 올라가면 방화수류정(꽃을 찾고 버들을 따르는 정자)이 나온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모든 건축물 가운데 단연 아름답다. ㄱ자 모양 누각에 툇마루를 덧붙이고 툇마루 위로는 다시 팔작지붕을 덧붙여 지붕이 활짝 핀 꽃잎처럼 화려하다. 방화수류정 밖으로는 둥근 용연(용 연못)과 섬을 조성했다.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풍경도 아름답다.
정조는 방화수류정에 과녁을 설치하게 했다. 명사수였던 정조가 먼저 세 발을 쐈고 신하들에게도 쏘게 했다. 심지어 구경하던 백성들에게도 활을 쏘게 한 뒤 1등에게 전시(임금 앞에서 보던 무과 3차 최종 시험)를 볼 수 있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리고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방화수류정에서 각건대(동북포루)까지 150m는 오르막이다. 각건대에 오르면 서쪽으로 방화수류정과 장안문, 동쪽으로 동장대와 동북공심돈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300m 동쪽에 있는 동장대(동쪽 장군대)는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서쪽 장군대)와 짝을 이룬다. 동장대는 ‘연무대’라는 다른 이름처럼 무술 훈련장이고, 서장대는 전투 지휘소다. 현재도 동장대 아래에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된 넓은 활터가 있다.
순행 중 정조는 동장대에 올라 한바탕 연설을 했다. “화성에 성가퀴(성 위에 숨어서 싸우기 좋게 쌓은 덧담)를 설치해, 이제야 우리도 제대로 된 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 요지였다.
동장대에서 동쪽으로 100m 남짓 가면 서북공심돈과 짝을 이루는 동북공심돈이 나온다. 동북공심돈은 네모난 서북공심돈과 달리 둥글고 더 넓죽하다. 동북공심돈에서 창룡문(푸른 용 문)과 봉돈(봉화 돈대)을 거쳐 남수문에 이르는 1.5㎞는 평탄하고 곧은 길이어서 조금 지루하다.
이 길의 끝에 2012년 복원된 9칸 아치의 남수문이 있다. 동남각루에서 남수문으로 내려오면 갑자기 산중에서 속세로 떨어진 듯하다. 남수문은 지동시장, 미나리꽝시장, 영동시장, 팔달문시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수문을 지나자마자 화성은 끊어진다. 팔달문까지 130m가량이 시장 건물들로 막혀 있다.
사관도 이 코스가 지루했는지 <정조실록>의 기록도 간략하다. “창룡문의 옹성 밖으로 나가 남수문의 돈대 윗길을 지나 팔달문 누각에 올라 쉬었다.”
다시 팔달문에서 서남암문(서남 비밀문)까지 400m는 가파른 산길이어서 조금 힘들다. 서남암문에 오르면 남쪽 화양루(서남각루)로 가는 190m의 용도(골목길)가 나온다. 양쪽에 담장이 있고 평평해서 걷기 좋다.
다시 서남암문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450m를 걸어 올라가면 팔달산의 정상이자 지휘소인 서장대(화성장대)가 나온다. 여기선 화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광교 신시가지까지 잘 보인다. 서장대에서 화서문 쪽으로 내려가면 화성 걷기 한 바퀴가 완성된다. 전체 길이는 5.7㎞.
정조는 서장대에서 신하들과 저녁을 들고 밤에 횃불 점호를 했다. 서장대에서 신호포를 쏘고 나팔을 불면 화성 곳곳에 배치된 병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들며 함성을 질렀다. 이 세 차례의 횃불 점호는 정조 화성 순행의 절정이자 마무리였다.
이날 <한겨레21>과 화성 걷기에 동행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화성은 자연과 어울린 아름다운 곡선의 성곽이고, 조선 후기의 높은 과학기술을 보여주며, 정조 왕권주의의 상징물이다. 처음 걸으면 놀라고 두 번째는 생각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수원=글·사진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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