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1일부터 검찰과 경찰이 수평적 관계로 바뀌었다. 검찰의 송치 전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1차·일반적 수사의 주체가 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로 제한되며, 다른 범죄들의 1차 수사 종결은 경찰이 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경찰은 수사를 통해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기존과 다르게 검찰로 넘기지 않고 불송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거기에 피의자의 소재가 불분명할 때는 경찰이 수사중지 결정을 할 수 있다.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 시정조치, 재수사 등을 요청하고, 일반인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해 경찰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했다.
“경찰이 지난해까지 정비해온 통제·점검·확인 등 보완시스템이 올해 검경수사권 조정 시행 후 현장에서 무리 없이 작동되고 있다. 법과 제도가 바뀌고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인력이 제대로 배치돼 교육·훈련으로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책임수사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할 것으로 생각한다.”
2021년 4월19일 ‘검경수사권 조정’과 ‘책임수사 시스템’에 대한 김창룡 경찰청장이 내린 평가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평가는 이르며, 현장은 실질적 변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야 하는 일반인 피해자 처지에서는 검경수사권 조정이 인권 침해나 부실 수사로 이어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 전 지연고소(피해 이후 일정 시간이 흘러서 하는 고소 형태)를 결심한 피해자들에게 나는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하라고 권해왔다. 경찰은 고소장 접수 단계부터 다양한 이유를 들어 접수를 거부하고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반면,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성폭력, 교제폭력,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검찰이 아니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야만 한다. 경찰 윗선은 고소장 반려, 고소 취하 등을 일선에서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접수 단계부터 반려되는 사례가 나온다.
고소장 접수 이후는 어떠한가. 수사관은 피해자 보호와 권리 제도를 성실하게 안내해야 하지만 안내서만 제공할 뿐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피해자가 관련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안내서에 언급한 지원 제도를 경찰이 이해하지 못해 피해자가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수사기관은 범죄피해자에게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제도 안내서’를 제공·설명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신뢰관계인 동석, 국선변호인 제도, 가명 조서, 인적사항 미기재 혹은 기재 뒤 삭제, 신변보호, 수사과정 통지 등을 경찰에 요구할 수 있다.)
언급한 사례들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변화와 쇄신을 강조한 경찰 수뇌부의 다짐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경찰을 피해자들에게 믿으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수사는 어떠한가.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가해자를 특정할 것을 피해자에게 요구하거나, 관련 자료를 모두 피해자에게 찾아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한다. 피해자가 다수일 때 다른 피해자에게 연락해 수사 협조 요청을 받아내라고도 한다. 증거자료를 취합해 정리해서 가져가도 제대로 보지 않을 때도 많다. 2021년부터 수사 진행 과정을 통지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제때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가해자들에게만 ‘착한 수사관’반면 가해자(피의자) 수사는 부실하다. 성범죄 가해자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 등에 들어가보면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 6회 이상 덮어쓰기를 하면 포렌식을 해도 디지털성범죄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증거인멸 방식을 소개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가해자들이 말하는 ‘착한 수사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수사관이란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고,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데다, 법적 지식도 부족한 이를 말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가해자들이 반기는 이유가 이것이다.
피해자 진술시 조서 작성 과정은 어떠한가. 메모장 활용, 녹음·녹화제도 도입 등 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사관의 ‘2차 가해’를 기록하거나 입증할 수 있는 장치가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엉망인 경우가 많다. 변호사가 동석해도 제때 조력하지 못하게 하거나, 소 취하와 합의 강요는 물론 편견을 담은 질문을 던져 피해자를 고통 속에 빠트린다. 수사관이 작성한 조서의 수준 역시 피해자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거나, 답변을 왜곡하고,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집어넣는다. 조서를 꼼꼼하게 확인할 시간을 주지 않으며, 수정을 요청하면 윽박지르며 거부하기도 한다. 기록·문서가 중시되는 사법절차에서 조서가 엉터리로 작성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가 떠안는다.
법리적 검토 능력은 어떠한가. 법 조항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거나, 조항 적용을 잘못하거나, 판례 해석을 제대로 못하기도 한다. 성범죄 사건은 적용 법률이 다양하고, 전향적인 판단과 보수적인 판단이 공존하기에 법리적 이해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도 그렇다. 그래서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초기 단계부터 변호사 등 전문가 조력이 더 필요하다고들 한다. 경찰에게 법리적 검토와 적용 능력이 충분하면 좋겠으나, 현장 수준은 처참하기 때문이다. 판례 분석이나 법리 적용 능력이 떨어져 피해자를 돌려보낸 사례도 여전히 존재한다.
경찰은 외부의 우려를 의식해 ‘인권경찰, 회복적 경찰활동’ 등을 내세우며 쇄신하겠다고 밝힌다. 국가수사본부 설치로 수사 업무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한다. 자치경찰제를 확대해 민생치안을 책임지고, 대화와 협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발굴해 경찰이 중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회복적 경찰활동을 하겠다고 내세운다. 수사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관련 정보를 제때 전달하며, 수사 진행과 결과를 통지하고, 불송치 결정이나 수사중지 결정 등에 대한 이의제기에 적극 협조하겠단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당장 피해자들은 고소장 접수부터 어렵다고 말한다.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질 만한 자격과 능력이 현재 경찰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사례는 계속 나온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경찰과 검찰의 관계로만 보지 말고 일반인과 경찰의 관계로도 봐야 하는 이유다. 현장에서 직접 영향받는 것은 바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경찰을 신뢰하고 싶다. 피해자에게 피해 이후 수사기관에 찾아가는 일이 어렵지 않고, 찾아가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다. 강력한 무기를 쥔 경찰에 대한 시민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시스템은 망가지기 쉽다. ‘인권경찰’은, ‘책임수사’는 구호로만 되는 게 아니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너머n’ 아카이브(https://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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