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향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자식들 얼굴 보러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민족 대이동’이란 말도 농경사회 유물로 남을 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동뉴스’(우리동네뉴스)를 준비했습니다. 명절에도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겨레> 전국부 소속 기자 14명이 우리 동네의 따끈한 소식을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고향 소식에 목마른 독자에게 ‘꽃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_편집자주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 중류에 나주혁신도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광주시와 전남도가 공동으로 조성했습니다. 전국 혁신도시 10곳 가운데 입주 시기가 2013년으로 일렀고, 한국전력 등 대규모 공공기관 16곳이 이전하는 등 혁신도시 본보기로 꼽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을 설립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포스코가 포항공대를 설립했듯이, 한전이 세계 수준의 에너지 특화 대학을 세워 산·학·연 통합 효과를 내겠다는 뜻입니다. 한전공대는 2022년 개교를 목표로 캠퍼스 건립과 교수진 초빙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한창 기대에 부풀어 있어야 할 나주 주변이 시끌시끌합니다. 지역 시민단체가 최근 잇따라 성명을 냈습니다. 대학 터를 기부한 부영주택에 과도한 특혜를 주지 말고 이익을 나누자고 합니다. 반면 부영주택은 ‘어려울 때 도왔는데 선의를 몰라준다’며 억울해합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노무현 정부 시기, 나주혁신도시를 공동 조성할 때 광주시와 전남도는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시가 들어서니 셈법이 달라졌습니다. 교통기반을 구축하고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개발기금을 만드는 데 이견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한전공대 입지를 선정하던 2018년 마찰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광주는 혁신도시를 전남에 양보했으니 한전공대는 광주시에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남은 한전(나주)과 공대(광주)가 따로따로 살림하는 게 말이 되냐고 맞섰습니다. 결국 2018년 말 국무총리 소속 입지선정위원회가 떴고, 점수 경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급해진 전남은 한전공대 터를 내놓겠다고 했고, 나주에 골프장을 운영하던 부영주택을 접촉했습니다. 부영주택은 골프장 75만㎡ 중 절반인 40만㎡를 내놓았습니다. 대학 터를 제공하면서 저울추는 전남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부영주택은 ‘통 큰 기부’ ‘신의 한 수’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일부는 ‘기부냐 거래냐’라며 뒤탈을 걱정했습니다.
2019년 1월 한전공대 입지가 나주로 정해지자, 부영주택은 대학 터로 기부하고 남은 토지의 활용 계획을 세웁니다. 이듬해 6월 골프장 절반을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기 위한 도시계획 변경안을 제안했습니다. 이 안에는 2026년까지 35만㎡ 넓이 터에 아파트 5328가구를 짓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나주시는 이를 받아 토지 용도를 자연녹지지역에서 3종 주거지역으로 바꾸는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골프장 터의 용도지역을 자연녹지에서 전용주거 1·2, 일반주거 1·2를 넘어 5단계 상향하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용적률을 179.9%, 최고층을 28층으로 바꾸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추진합니다. 여태껏 이 도시의 기준(용적률 175%, 최고층 25층)에 비춰 사업자에게 유리한 파격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변경안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나주시 도시계획위와 전남도 도시계획위에서 확정되려면 통상 1년쯤 걸린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이 기부 ‘대가’가 과도하지 않은지 따져봤습니다. 이들은 2021년 1월 토론회를 열어 도시계획 변경의 타당성과 혁신도시 전체에 끼치는 영향을 점검했습니다. 행정행위로 생기는 개발이익을 기업과 주민이 합리적으로 공유하는 방법과 사례를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논의 끝에 나주혁신도시 부영골프장 용도지역변경반대 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합니다. 이 단체에는 광주전남혁신도시 공공기관 노조협의회를 비롯해 광주전남혁신도시포럼, 광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자치21, 빛가람 주민자치연대 등 단체 70여 곳이 참여했습니다.
시민운동본부는 “부영주택이 800억원짜리 골프장을 기부하고 5천억원의 반대급부를 요구한다”고 주장합니다. 도시계획을 변경했을 때 머무는 인구 5만 명, 아파트 1만7942가구 규모로 설계된 나주혁신도시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여깁니다. 도시의 녹지율이 35.1%에서 24.9%로 떨어지고, 아파트는 2만3325가구로 늘어나 삶의 질이 나빠진다고 지적합니다. ‘명품 혁신도시’라고 해놓고 뒤늦게 멋대로 도시계획을 바꾸면 계약 위반 아니냐고 항변합니다.
이 도시 주민 10명 중 7명은 토지용도 변경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1월28~31일 주민 588명에게 벌인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주민 의견을 확인한 시민운동본부는 도시계획 변경 절차를 중단하라고 나주시에 요구했습니다. 중단하지 않으면 주민 서명운동은 물론 공익감사 청구, 행정소송 등으로 맞서겠다고 벼릅니다.
시민운동본부는 나아가 개발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사전협상을 제안합니다. 부산은 조례로, 서울은 지침으로 도시계획시설을 폐지하거나 용도지역을 변경하면서 사전협상을 하도록 뒷받침합니다. 서울시는 최근 10년 동안 대형 사업의 공공 기여율을 강남 현대글로벌비즈니스센터 36.8%, 용산 관광버스터미널 35.0%, 강동 서울승합 43.0% 등으로 협상했습니다. 기준은 따로 없지만 용도지역을 1단계 상향할 때 공공 기여율 30~40%를 요구합니다. 광주시는 중앙·중외 등 도시공원 9곳과 호남대 쌍촌캠퍼스를 개발할 때 사전협상으로 성과를 냈습니다.
조진상 동신대 교수(도시계획학)는 “대학 터 기부를 공공 기여율로 환산하면 16%에 불과한 만큼 변경안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도시계획위에서 이익공유 논의를 하기 어렵고, 도시계획 절차를 매듭지은 다음에는 사업자를 협상에 끌어낼 수단이 없어져버린다”고 우려했습니다.
도시계획 절차 끝나기 전 협상해야주민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나주시는 2월3일 열려던 주민공청회를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3월로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전자공청회와 관계 기관 협의는 진행 중입니다. 강인규 나주시장은 “주민과 의회의 의견 수렴 등 정해진 절차를 통해 여러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태양광·풍력발전 등과 달리, 도시계획 변경에 따른 개발이익을 나누는 방안은 아직 법적 근거가 없다는 원론적 반응입니다. 사업자인 부영주택은 스스로 제안한 도시계획 변경안이 정식 안건으로 채택된 뒤 대응을 삼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 해 이상 부영골프장 남은 터의 도시계획 변경을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단체·나주시청·부영주택이 머리를 맞대고 ‘솔로몬의 지혜’를 도출하기를 기대합니다.
나주=안관옥 <한겨레>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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