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간 지 올해로 26년이 됐지만, 김성재가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평판의 일치에서, 춤에 대한 열정과 기량에서, 당대를 훌쩍 뛰어넘은 스타일의 세련됨에서 그를 앞설 스타를 나는 얼른 떠올리지 못한다. 그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고 ‘패피(패션피플)들의 패피’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한국 대중음악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가수로 떠올리기에 앞서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인간으로 떠올린다.
대개 그러하겠지만 그도 누군가에게 살가운 형이었고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운 친구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착한 아들이었고 그 누군가에겐 탐나는 남자였다.
그의 꿈은 치과의사였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영국과 일본에서 보내 영어와 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다. 연예인이 돼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석 달 벼락치기로 공부해 한양대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명민한 청년을 가만두지 않았다. 치과의사가 되기에 그는 끼가 너무 많았다. 바람대로 학업을 이어갔다면 그의 삶은 달랐을까.
이제 긴 여정을 끝마쳐야 한다. 1년6개월 동안 주말과 휴가를 이용해 취재했고, 2020년 5월부터 4개월가량 밤을 패가며 글을 썼다. 퇴근 뒤, 집 책상에 앉으면 이상하게도 힘이 났다. 그의 넋을 진혼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이었다. 스무 살 시절처럼 난 또다시 그에게 기대 살았다.
고비가 없진 않았다. 방대한 사건기록 전체에 대한 접근은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불허됐다. 대법원 사건검색에도 관련 공판기일이 나오지 않아 법조 관계자를 통해 어렵게 공판일자를 받았다. 다행히 취재 과정에서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의 상당 부분을 단독으로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사건 관련자들을 접촉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여러 각도로 당시 수사 관계자들을 접촉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또 다른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지금은 변호사로 전업한 1심과 항소심 재판부 판사들도 말을 아꼈다. 구속 과정에서 변호인으로 선임된 박영목 변호사와 2심 때 피고인을 대리한 천상현, 김형태 변호사 인터뷰가 더욱 값진 까닭이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확인된 사실 전부를 다 쓸 수 없다는 서술의 한계였다. 쓰고 지운 문장이 허다했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때때로 무력했다. 진실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진실은 가 있었다.
그때마다 두 장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사건 전날과 당일 검안 사진이었다. 밝게 웃던 그는 17시간 만에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 두 사진의 간극은 아득했다. 그 사진들은 내 글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리키고 있었다. 그 길에 당도하지 못한 채 사진과 사진 사이를 방황했다. 이 글은 그 방황의 기록이다.
돌고 돌아 길의 처음으로 돌아온 느낌길 끝에 서고 보니, 돌고 돌아 길의 처음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 글이 순하고 아름다웠던 영혼을 해원하는 것과 함께, 또 다른 미제사건을 막는 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결국 ‘김성재를 위한 레퀴엠(진혼곡)’은, 그를 잊지 못해 뒤척이는 우리 몫으로 남았다. 이제 끝나지 않은 김성재의 노래로 그를 부르려 한다.
오승훈 <한겨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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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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