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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스 김성재 죽음에 얽힌 진실을 말하자면…

1995년 김성재 변사 사건 실화 르포르타쥬 첫회…범인도, 숨진 이유도 미궁에 빠지게 한 초동수사와 검시제도의 문제점 파헤칠 예정
등록 2021-01-09 14:12 수정 2021-03-03 08:43
1995년 김성재의 솔로 데뷔 무대. 당시 방송 화면

1995년 김성재의 솔로 데뷔 무대. 당시 방송 화면

1995년 11월20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인기 댄스그룹 ‘듀스’의 전 멤버 김성재(23)가 숨진 채 발견됐다. 듀스 해체 이후 성공적인 솔로 데뷔 무대를 마친 다음날이었다.
1993년 4월 노래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이 록이었다면, 김성재와 이현도로 이뤄진 듀스는 뉴잭스윙과 솔 등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일관되게 추구한 뮤지션이었다. 듀스를 한국 힙합의 원조라고 하는 이유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26년이 됐다. 그 무심한 세월 동안,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재 변사 사건이 대한민국 연예계 최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 가운데 6개월 이상 지났는데도 피의자를 검거하지 못한 사건을 실무상 미제사건으로 본다. 대검찰청의 2019년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 총 발생 건수 849건(기수·미수 모두 포함) 가운데 808건에서 피의자를 검거했고, 41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각주 1).
김성재의 유족은 오늘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가장 격이던 큰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탓에 온전히 망자를 떠나보낼 수조차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당시 수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김성재 변사 사건은 경찰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 당시 검시제도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 증언을 배척하거나 채택하는 등의 문제 또한 유효하다. 모두 김성재 변사 사건으로 짚어봐야 할 공익적 가치다.
지난 1년6개월여 동안,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수사·공판 기록과 당시 신문·잡지 기사 등 3천 쪽 넘는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당시 수사기관·법원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다. 유족과 지인들을 만났고 법의학자와 의사들의 조언도 구했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김성재 전 여자친구 쪽 변호인들도 수차례 접촉했다. 이제 26년 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죽음의 진상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주

연재순서
① 운명의 밤

주요 등장인물
K: 김성재 여자친구
L: 김성재 고교 동창이자 사건 당시 매니저
육미승: 김성재 어머니
류노아·김진·김조앤·트리키·니콜: 김성재 백댄서
진세라: 뮤직비디오 <말하자면> 여주인공

“연습량이요? 연습량은 짧은데요. 한 달 만에 이 정도 할 수 있는 자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좀 거만해서 죄송한데요. 진짜 이건 자신 있어서 하는 소리예요.”

첫 솔로 데뷔 무대를 마치고 분장실로 돌아온 김성재가 휴지로 이마의 땀을 훔쳐가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무대는 노래와 퍼포먼스 그리고 의상까지 모두 역대급이었다. 1995년 11월19일, 일요일이었다.

듀스 해체 이후 이현도와 함께 그해 7월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간 성재는, 9월 초 솔로 데뷔 제안을 받았다. 음반사는 11월에 귀국해달라고 했다. 음반 작업과 안무 연습, 뮤직비디오와 사진 촬영까지 모두 두 달 안에 이뤄졌다.

귀국 전야, 성재는 현도와 저녁을 먹었다. “현도야, 우리 얼마 만에 떨어져 있게 되는 거냐?” 성재가 말했다. 홀로서기에 부담을 느끼는 듯한 모습에 현도는 격려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야, 너 한국 가면 된다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듀스 김성재인데 뭘 걱정해.” 그날 둘은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못다 한 얘길 나눴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 현도는 성재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각주 2).

솔로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11월15일 수요일 오전, 귀국한 성재는 백댄서팀 ‘WEST’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 스위트 별관 57호에 짐을 풀었다. 두 달 동안 임대한 숙소는 방 세 개에 화장실이 두 개 딸린 45평(약 149㎡) 구조로 한 달 임대료가 650만원이었다. 성재는 귀국 이튿날인 16일 오전부터 잡지 인터뷰, 라디오 출연 등으로 19일까지 바쁜 일정을 보냈다. 성재의 시계는 듀스 때만큼이나 바삐 돌아갔다.

11월19일 일요일. 종일 날이 흐렸다. 오전에 잠시 눈이 내리다 그쳤다.

성재 일행이 데뷔 무대인 SBS <생방송 TV가요 20>에 출연하기 위해 밴을 이용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 SBS 공개홀에 도착한 시각은 낮 12시 무렵이었다. 방송은 오후 4시20분 시작이지만 리허설을 해야 했다.

이날 성재 데뷔 뒷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촬영됐다. ‘김성재 데뷔 뒷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영상은,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오후 5시께 성재가 무대에 섰다. 듀스 시절 영상이 무대 뒤편 스크린에 펼쳐졌다. 이현도가 작사·작곡한 <말하자면>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사랑 고백 못하는 남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댄스곡이었다. 성재는 한 달 동안 준비한 비장의 안무를 선보였다. 김성재의 시간이었다.

데뷔 무대에선 백댄서팀 WEST도 눈길을 끌었다. 흑인인 트리키와 니콜은 사촌지간이었다. 무엇보다 아이스하키복을 활용한 무대의상이 압권이었다. 성조기 문양의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성재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입는 반바지로 된 보호대를 착용했다. 손에는 아이스하키 장갑을 꼈고 바이크 마스크를 목에 두르고 고글형 선글라스를 썼다. 미래에서 온 스타일이었다.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성재는 복도에서 대기실로 이동하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양현석, 이주노와는 서울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에서 춤추던 시절부터 형·동생 하던 사이라 포옹을 나눴고, 동갑내기 서태지와는 목례로 인사했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한 두 댄스그룹 멤버들이 한 화면에서 조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장면이었다.

1993년 4월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자 한국 힙합의 원조였다. 1994년 발매된 리믹스 앨범 <리듬 라이트 비트 블랙>에 담긴 사진. 한겨레 자료

1993년 4월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자 한국 힙합의 원조였다. 1994년 발매된 리믹스 앨범 <리듬 라이트 비트 블랙>에 담긴 사진. 한겨레 자료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

“엄마 봤어?”
방송을 마친 성재가 어머니 육미승에게 전화했다. “당연하지, 너무 멋있었어.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멋있더라. 그동안 고생 많았지?” 육미승이 말했다.
“엄마, 지금 감격해서 막 떨려. 동료 가수들이 정말 멋있었다고 진심으로 축하도 해줬어!”
“성재야, 지금 엄마가 숙소로 갈게.”
“아니야, 엄마! 다 같이 저녁 먹고 숙소에 간대. 내일부턴 하늘이 두 쪽 나도 노아하고 집에 가 있을게. 오늘 밤에 집에 갈 짐 다 쌀 거야.”
“빨리 보고 싶은데….”
그날따라 육미승은 이상하게 숙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성재와의 마지막 통화였다(각주 3). 

운명의 밤이 오고 있었다. 경찰·검찰 단계 진술과 1·2심 판결문 등을 보면, 여자친구 K가 성재로부터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KFC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은 건 저녁 6시30분께였다.

두 사람은 1993년 9월 서울 강남의 ㅈ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교제했다. 어릴 적 꿈이 치과의사였기 때문일까, 성재는 D대학 치대에 다니는 K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1995년 초 치대를 졸업한 K는 국가시험에 떨어져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K는 성재로부터 자신의 데뷔 무대를 녹화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K는 검은색 털가방에 녹화한 비디오테이프와 화장품, 지갑, 호출기 등을 넣고(각주 4) 흑갈색 코트를 걸친 채 자택인 서울 여의도 S아파트를 나섰다.

K는 부모 명의의 42평형에 보모 할머니, 동생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부모는 고향인 전북 지역에서 오래 약국을 운영했다.

K가 흰색 그랜저(서울2르8○○○)를 이용해 압구정동으로 향한 시각은 저녁 7시가 갓 넘었을 때다. 30여 분 뒤 KFC에 도착하니 성재와 류노아, 김진, 김조앤, 트리키, 니콜과 진세라, 매니저 L,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9명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LA에서 촬영한 <말하자면> 뮤직비디오의 여자주인공으로 출연한 진세라는, 한국 연예계에 데뷔하기 위해 성재와 같이 귀국한 교포였다.

저녁을 먹은 뒤 근처에 있던 당구장 ‘다트머스’에 간 성재 일행은 20여 분 만에 당구장을 나섰다. K가 운전한 그랜저에는 성재·김진·류노아가 탔고, 귀가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4명(김조앤·트리키·니콜·진세라)은 L이 운전하는 밴을 이용해 숙소인 스위스그랜드호텔로 향했다. 밤 9시를 지나고 있었다.

밤 10시 무렵, 차례로 숙소에 도착했다. 거실에 모여 K가 녹화한 데뷔 무대 영상을 보고 또 봤다. 모두 ‘첫 방송이 잘됐다’며 기뻐했다. 소파에 앉아 밀러 맥주를 마시던 성재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김진, 김조앤, 니콜, 진세라, 트리키가 먼저 방으로 간 때는 11시30분께였다. 김진과 김조앤, 진세라가 가장 안쪽 큰방을 썼고 니콜이 그 옆방, 거실 가장 가까운 방은 트리키가 썼다. 거실에 남은 성재와 K, 류노아, L은 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얘길 나눴다.

유작이 된 김성재의 솔로앨범. 한겨레 자료

유작이 된 김성재의 솔로앨범. 한겨레 자료

모두가 잠자리에 들고, 둘만 남았다

새벽 1시 무렵 피곤하다며 류노아가 큰방으로 갔다. 다용도실의 빨래건조기를 작동시킨 L이 거실에 요를 깔았다. 성재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때 큰방에서 류노아가 말했다. “형, 거실에서 자지 말고 나랑 방에서 자자.” 호텔 투숙 이후 줄곧 거실에서 성재와 함께 잠을 자던 L은 이날따라 류노아의 말에 요를 들고 큰방으로 갔다. 그때 K는 성재의 메이크업을 지워주고 있었다(각주 5). 

같은 시각, 육미승은 경기도 안양시 평촌 자택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매니저를 하다 군에 입대한 이상만이었다.
“웬일이니?”

“미안해서 전화했어요. 아까 방송할 때, 성재 형이 숙소로 오라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못 가고 지금 집에 들어왔어요.”
“나도 성재에게 너무 가고 싶은데….”
“그럼, 갈까요? 어머니하고 지금 성재 형한테 갈까요?”
“근데 지금 가면 성재 깨우지 않을까?”
두 사람은 오늘 첫 데뷔가 참 멋있었다는 말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 마음이 괜히 든 건 아니었는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육미승은 그날을 회상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시각, 모두가 잠자리에 들고 거실엔 성재와 K, 둘만 남았다. 이 시간대의 진술은 K가 유일하다. K는 소파에 누워 있는 성재 팔을 주물러주며 방송 얘길 나누다 새벽 3시40분께 집으로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K의 귀가 시간은 훗날 첨예한 공방의 대상이 됐다.

11월20일 월요일 아침 6시. 매니저 L이 거실로 나왔다. 성재는 소파에 엎드려 머리를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돌린 채, 베개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 누워 있었다. L은 성재를 깨웠다. 반응이 없었다. L은 피곤할 거라는 생각에 좀더 자도록 뒀다. 6시30분. 의상과 소품 등을 챙기던 L이 큰방으로 가서 류노아, 김진, 김조앤, 진세라를 깨웠다. 이후 다시 성재를 깨웠지만 반응이 없었다. 트리키와 함께 일어나라며 성재의 어깨를 들어 올렸다. 몸이 축 늘어졌다. 입술이 파랬다(각주 6). 이때 류노아는 성재 입 주위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봤다(각주 7). 성재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김진이 소리쳤다. “성재 오빠가 안 움직여.” 이때가 6시40분이었다. 트리키와 L이 엎드려 있던 성재를 똑바로 눕힌 뒤 재차 그를 흔들었다. 시계는 6시5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류노아가 프런트에 전화했다.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서부소방서 홍은파출소의 구급대원이 119지령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은 시각은 7시7분이었다. 4분 만인 7시11분, 구급대원들이 호텔에 도착했다. 별관 정문에서 직원 안내를 받아 2층 57호실에 구급용 들것을 들고 들어갔다. 해 뜨기 직전이었다.

파랗게 된 얼굴과 입술… “운명하셨습니다”

성재는 입구 오른쪽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귀걸이를 하고 초록색 긴팔 티셔츠에 청색 반바지 차림이었다. 현장의 베개커버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는데, 류노아와 L은 이를 발견했다고 했지만 구급대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구급대원은 서둘러 경동맥을 확인했다. 맥을 잘 느낄 수 없었다. 외상은 없었지만 얼굴과 입술이 파랗게 되는 청색증을 보였다. 상태가 긴급한 것으로 판단해, 성재를 들것으로 옮긴 뒤 차량으로 이송했다.

7시21분, 호텔을 출발한 구급차는 인근 세림간호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에는 L과 류노아가 동승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7시24분이었다. 구급대원들은 당직의에게 성재를 인계한 뒤 돌아갔다. 당직의는 성재의 눈꺼풀을 뒤집고 호흡을 확인했다. 동공이 이미 확장돼 있었고 호흡은 멎은 상태였다(각주 8). 

“운명하셨습니다.” 당직의가 말했다. 날은 맑았지만 추웠다.

오승훈 <한겨레> 기자 vino@hani.co.kr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다음주 리얼리Zoom-듀스 김성재 변사 사건 ②오른팔의 주사 자국으로 이어집니다. 

각주 
1. 박광민, ‘장기 미제사건 수사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동국대 법학과 석사논문, 2019
2. 이현도, <스물네 살의 사자후>, 예당미디어, 1997
3. 육미승, <말하자면>, 위미디어, 1998
4. K 경찰·1심 공판 진술
5. L 경찰·검찰 진술
6. L 1·2심 공판 진술
7. 류노아 1심 공판 진술. 반면 L은 2심 공판에서 입 주위에 피 흔적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
8. 당직의 2심 공판 진술
알려왔습니다

오승훈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김성재 여자친구 K의 입장을 청취하려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인터뷰 또는 서면 취재 요청을 했으나 그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보도 이후 K가 2월17일 변호인을 통해 <한겨레>에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K의 변호인은 내용증명에서 “해당 기사는 각주와 같이 이현도의 수필집과 김성재 모친 육미승의 수필집(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며 “이현도와 육미승은 K의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K가 김성재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인물들이며, 그들이 작성한 수필집은 개인의 당시 감정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상황을 미화하거나 과장시킬 수 있으며, 허구를 포함할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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