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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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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변사 사건, 곧바로 부검했더라면…

호텔 CCTV는 지워지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체 사진 찍고…
수사와 검시 별도로 진행되는 한국 검시제도의 후진성이 문제
등록 2021-04-03 05:47 수정 2021-04-06 05:24
사건 전날 찍은 영상에서 김성재가 웃고 있다. 그는 12시간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사건 전날 찍은 영상에서 김성재가 웃고 있다. 그는 12시간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1995년 11월20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인기 댄스그룹 ‘듀스’의 전 멤버 김성재(23)가 숨진 채 발견됐다. 듀스 해체 이후 성공적인 솔로 데뷔 무대를 마친 다음날이었다.
1993년 4월 노래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이 록이었다면, 김성재와 이현도로 이뤄진 듀스는 뉴잭스윙과 솔 등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일관되게 추구한 뮤지션이었다. 듀스를 한국 힙합의 원조라고 하는 이유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26년이 됐다. 그 무심한 세월 동안,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재 변사 사건이 대한민국 연예계 최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 가운데 6개월 이상 지났는데도 피의자를 검거하지 못한 사건을 실무상 미제사건으로 본다. 대검찰청의 2019년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 총 발생 건수 849건(기수·미수 모두 포함) 가운데 808건에서 피의자를 검거했고, 41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김성재의 유족은 오늘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가장 격이던 큰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탓에 온전히 망자를 떠나보낼 수조차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당시 수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김성재 변사 사건은 경찰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 당시 검시제도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 증언을 배척하거나 채택하는 등의 문제 또한 유효하다. 모두 김성재 변사 사건으로 짚어봐야 할 공익적 가치다.
지난 1년6개월여 동안,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수사·공판 기록과 당시 신문·잡지 기사 등 3천 쪽 넘는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당시 수사기관·법원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다. 유족과 지인들을 만났고 법의학자와 의사들의 조언도 구했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김성재 전 여자친구 쪽 변호인들도 수차례 접촉했다. 이제 26년 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죽음의 진상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주 
연재 순서

① 운명의 밤

② 오른팔의 주사 자국

③ 누가 부검을 반대했나

④ 진정서와 동물마취제

⑤ 제보자와 황산마그네슘

⑥ 누락된 증거와 첫 공판

⑦ 법의학 vs 법의학

⑧ 교체된 검사와 변호사

⑨ 무너진 유죄의 근거들

⑩ 왜 영구미제가 되었나

주요 등장인물
K 김성재 여자친구
정희선 전 국과수 소장, 당시는 국과수 약독물과장
이정빈 검찰 쪽 법의학자

피고인 K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으면서 김성재 변사사건은 영구미제가 됐다. 사건이 미궁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초동수사 부실과 현행 검시제도에 있었다. 김성재 몸에서 동물마취제를 발견해 수사 방향을 뒤바꾼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은 김성재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무엇보다 범죄 증명의 핵심은 사건 발생 초기 증거 확보를 위해 범죄 현장 보존을 철저히 하고, 변사자나 현장 주변 등 현장사진과 더불어 호텔에 설치된 CCTV(폐회로텔레비전)의 필름, 현장 증거물을 채취하는 일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황산마그네슘과 졸레틸50을 주사하고 남은 빈 약병이나 주사기가 수거됐다면 이른 시간 내에 약물이 확인돼 사건이 쉽게 종료됐을 것이다. 부검 결과를 통보받고 뒤늦게 호텔에 설치된 CCTV의 필름과 졸레틸50을 주사하고 남은 약병이나 주사기 등의 증거물을 채취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호텔 규정에 따라 폐쇄회로는 10여 일이 지나서 이미 지워진 상태였고 방을 청소한 쓰레기 등은 일찌감치 치워졌다. 역시 철저한 초동수사가 사건 해결의 필수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1

유년 시절의 김성재. 그의 꿈은 치과의사였다. 학업을 이어갔다면 그의 삶은 달랐을까. 유족 제공

유년 시절의 김성재. 그의 꿈은 치과의사였다. 학업을 이어갔다면 그의 삶은 달랐을까. 유족 제공

부실한 초동수사가 문제였다

경찰의 초동수사는 왜 그토록 부실했을까.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가 김성재 변사사건을 되돌아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다수 미제사건에서 나타난 초동수사의 부실은, 근본적으로는 수사와 부검이 별도로 진행되는 한국 검시제도의 후진성에 기인한다. 즉 부검으로 사인을 결정하고 사체소견을 해석하는 부검의의 일과, 현장에 대한 검시조사와 사망의 종류, 증거물 수집 같은 수사기관의 일이 분리돼 있다.2 수사와 검시가 분리된 탓에 사건 현장에서 법의학적 지식을 가진 검시관이 검시하지 못한 채, 사건 발생 하루 이틀이 지난 시점에야 국과수를 통한 부검이 진행되는 실정이다. 초동수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는 얘기다.

김성재 사건의 경우, 사건 당일 사체는 응급처치를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망이 확인됐지만 직장(대장의 가장 아랫부분) 온도, 시반(사후 피부에 생기는 반점)과 시강(사후 경직도) 등은 곧바로 측정되지 못했다. 사건 현장은 보존되지 않았고, 부검은 이튿날 오전에야 진행됐다. 범죄 현장이 아닌 병원 영안실에서 검시가 이뤄진 것은, 사건 접수가 늦었다는 점도 한 원인이지만, 검시제도의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또 다른 미제사건인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김성재 사건보다 5개월 앞서 일어난 이 사건에서 아파트 욕조물에 잠겨 있던 사체는 부검을 위해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화장실과 욕조물의 온도, 직장 온도는 측정되지 않았다. 초기 시강 정도와 동공 관찰 등도 없었다.

법의학자들은 두 사건 모두 발생 당시 현장에서 검시가 이뤄졌다면 영구미제가 되는 일은 막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판 당시 검찰 쪽 증인으로 나섰던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성재 사건 당시에도 채증이 허술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개탄했다.

“보통 부검 재감정에 들어가면 해석은 달라질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fact)이 뒤바뀌지는 않습니다. 김씨 사건에서 경찰이 수집한 사실은 형편없었습니다. 어떤 현상이 나오면 사실을 딱 떨어지게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실을 소홀히 하고 감정적으로 기술했어요. 시신에 나타나는 시반은 ‘사실’의 문제인데 경찰은 ‘그렇다, 아니다’라고도 쓰지 않았어요. 시신을 찍은 즉석카메라 상태도 엉망이었죠. 게다가 시신을 제대로 찍지도 않고 옮겼습니다. (증거가) 날아가버린 것이죠.”3

이 교수의 말처럼 사건 당일, 검안 과정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체 사진을 찍은 점은 경찰의 치명적 실수였다. 이는 훗날 법의학자들의 양측성 시반 감정이 부정당하는 근거가 됐다. 결과적으로 사망 추정 시각이 미궁에 빠지는 계기였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수사에서도 경찰은 피해자들의 사체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으면 따로 현상하지 않아도 돼 편리하지만, 사진의 화질에서 필름카메라에 못 미치는 것은 분명했다. 1995년 당시 경찰의 법의학적 지식 수준이 낮았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김성재 사건 이후 검시 현장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로 서서히 대체됐다.

냉장고 들어갔던 사체의 직장 온도를 잰다고?

일반적인 수사 또는 내사 절차와 비교해, 검시는 사체를 대상으로 법의학적 지식에 과학적 수사 기법을 결합해 증거를 모으는 일이다. 검시 과정의 작은 오차, 실수, 지연만으로도 증거가 오염되는 일이 발생하고, 죽음의 원인에 대해 잘못된 증거 판독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전문가들이 검시 결과에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검시 결과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4 변사사건은 주검의 부패로 인해 검시 과정의 실수를 만회할 수조차 없다.

최영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은 <한겨레21>과 2013년 3월에 한 인터뷰에서 한국 검시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건 현장에서 사체를 보존하는 법적 조항이 전혀 없다.5 경찰이 현장에서 (사체) 사진을 찍은 뒤 옮겨도 불법이 아니다. 그렇게 옮겨진 사체는 대부분 동네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경찰이 일차적으로, 검사가 최종적으로 부검 여부를 결정한다. 오늘 사망한 변사사건 사체가 있으면 아무리 빨라야 다음날 아침에 국과수 부검실로 들어오는 거다. 사체의 경직 상태나 직장 온도 등 사후 경과 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의 절반은 이미 날아간 상태인 거다.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체의 직장 온도를 따지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겠나. 그러다보니 우리는 일부분의 경직 상태, 복부에 나타난 피부 변화, 부패 진행 정도 등 나머지 절반을 보고 사후 경과 시간을 추정한다. 이렇게 처음부터 법의학 전문가가 사건 현장에 갈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게 한계라고 본다.”

영국과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는 초동수사 단계부터 법의학자가 직접 검시한다. 검시 단계에서 수사기관의 관여 없이 부검 여부가 결정되고, 검시가 검시관 또는 법의관의 주도로 이뤄지기에 수사기관이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독일·유럽·한국 등 대륙법계 국가들에 비해 독립성이 보장되는 이점이 있다.

아마추어적인 검시는 구조적 한계라 하더라도, 당시 경찰은 보강증거 수집에서도 면밀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서야 CCTV 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다른 화면이 녹화된 일이나, 사건 초반 마약 사고사에 대한 확신에 차 있다가 동물병원장의 제보 이후 K가 약품을 구입한 사실에 환호해 디테일을 놓쳐버린 점 등은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으로 남았다.

물론 26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도 없지 않다. 경찰청은 2006년 검시조사관 제도를 도입해, 현재 100여 명의 검시조사관을 변사사건 현장에 투입한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인 검시조사관은 의학 지식과 임상 경험이 있고 법의학 지식까지 갖춰 자칫 자살로 묻힐 만한 사건들을 밝혀낸다. 김성재 사건처럼 변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죄 관련 지식이 부족한 민간 의사에게 검시를 위탁하던 관행이 개선된 것이다.

가족과 나들이를 간 김성재(오른쪽). 어머니 육미승씨는 1969년 이화여대를 졸업해 상업은행에 취업한 엘리트였다. 유족 제공

가족과 나들이를 간 김성재(오른쪽). 어머니 육미승씨는 1969년 이화여대를 졸업해 상업은행에 취업한 엘리트였다. 유족 제공

영·미에선 법의학자가 초동수사 때 직접 검시

그러나 법의학자가 사건 현장에 직접 투입되는 미국·영국 등과 비교할 때 질적 차이가 엄연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경찰 검시조사관들은 법의학자보다 전문적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 검시관 제도 도입 움직임이 간헐적으로나마 이어지는 이유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 때 검시관이 갖춰야 할 자격과 직무, 검시관 양성에 대한 사항, 검시연구원 운영 등의 내용을 담은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2020년 7월엔 검시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토론회도 열었다. 앞서 2005년 유시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도 검시제도 개선 법안을 국회에서 발의했지만, 검찰·경찰·국과수·법무부 등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17대 국회 내내 표류하다 결국 폐기됐다. 18대 때는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총리 직속 검시위원회 설치 등을 뼈대로 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역시나 제정되지 못했다.

제도 도입이 연거푸 좌절된 것은 예산과 인력 때문이다. 법의학 자체가 비인기 분야인데다 직급과 처우가 낮아 후학 양성이 어려움에 따라 인력풀이 협소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검시관 양성을 위한 예산 지원은 당장 눈에 보이는 치적이 아니다. 제도의 피해를 본 이가 모두 죽은 자라는 사정도 제도 개선을 더디게 한다. 김성재 사건이 오늘날 다시 일어나더라도, 영구미제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검시제도 같은 구조적 문제점과 함께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26년이 지났지만 김성재 변사사건은 여전히 대중과 법원 사이의 괴리가 심한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들의 분노와 의혹에는 과연 이유가 없는 것일까.

당시 판결은 사망 시각 추정, 치사량, 전문가 증언 배척, 살해 동기 해석 등에서 따져볼 대목이 적잖다. 한 법률가의 표현처럼 모든 것은 비판을 통해 진화한다. 법원 판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비춰보면 항소심 판결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변호인의 실험 등을 받아들여 법의학자들이 양측성 시반을 근거로 추정한 사망 시각을 배척한 점 △변호인 쪽 법의학자의 감정증언을 채택하며 검찰 쪽 법의학자들의 감정증언을 통째로 배척한 점 △개를 대상으로 한 치사량 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곧바로 적용한 점 △알코올처럼 약물 반응은 사람마다 다른 점 △졸레틸 한 병은 치사량이 아니라는 판단이 설득력 있으려면, 비슷한 시기에 졸레틸을 산 사람이 K 말고도 김성재 주변에 여럿인데 그중 K가 산 약물의 함량이 치사량에 부족했어야 한다는 점 △소변에서 나온 마그네슘염을 몸속에 있는 물질로 본 점 △피부에서 검출된 마그네슘염은 논의조차 되지 않은 점 등을 두고 비판이 제기된다.6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가능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실패로 영구미제가 됐다는 점에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지만, 유족은 이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그사이 국가배상청구권 소멸시효(5년)는 지나가버렸다. 2020년 K 쪽이 ‘김성재 사인은 약물중독사’라는 취지로 보도자료를 내 사자명예훼손 논란이 일었지만, 형편이 어려운 유족은 법적 대응을 할 여력이 없다. 세월은 오늘도 무심히 흐른다.

오승훈 <한겨레> 기자 vino@hani.co.kr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1. 정희선,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는 사람들>, 알에이치코리아, 2015년
2. 하태훈, ‘현행 검시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형사정책>, 한국형사정책학회, 2006년
3. <동아일보> 2011년 8월29일치
4. 김태우, ‘검시제도 개선방안’, <법제논단>, 2013년 2월
5. 변사사건 처리규칙은 2019년 3월에야 경찰청 훈령으로 제정됐다.
6. 항소심 판결에 대한 대표적 비판은 도진기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의 ‘듀스 김성재 의문의 타살, 법원 판결 과연 최선이었나’, <월간중앙> 2017년 2월호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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