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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가스총, 장난일까 살기일까

공판에서 부딪힌 법의학자들, “졸레틸50·황산마그네슘 복합 투여 상승작용으로 사망” vs “주검 혈중 농도는 치사량이 될 수 없다”
등록 2021-03-01 01:00 수정 2021-03-03 16:53
솔로 데뷔 음반에 실린 안성진 작가의 김성재 화보 사진. 수많은 연예인을 카메라에 담았던 안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난 최고의 피사체로 김성재를 꼽았다. 유족 제공

솔로 데뷔 음반에 실린 안성진 작가의 김성재 화보 사진. 수많은 연예인을 카메라에 담았던 안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난 최고의 피사체로 김성재를 꼽았다. 유족 제공

1995년 11월20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인기 댄스그룹 ‘듀스’의 전 멤버 김성재(23)가 숨진 채 발견됐다. 듀스 해체 이후 성공적인 솔로 데뷔 무대를 마친 다음날이었다.
1993년 4월 노래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이 록이었다면, 김성재와 이현도로 이뤄진 듀스는 뉴잭스윙과 솔 등을 기반으로 흑인음악을 일관되게 추구한 뮤지션이었다. 듀스를 한국 힙합의 원조라고 하는 이유다.
그가 떠난 지 올해로 26년이 됐다. 그 무심한 세월 동안,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재 변사 사건이 대한민국 연예계 최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은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킨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 가운데 6개월 이상 지났는데도 피의자를 검거하지 못한 사건을 실무상 미제사건으로 본다. 대검찰청의 2019년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 총 발생 건수 849건(기수·미수 모두 포함) 가운데 808건에서 피의자를 검거했고, 41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김성재의 유족은 오늘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가장 격이던 큰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탓에 온전히 망자를 떠나보낼 수조차 없었다. 한국 사회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당시 수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김성재 변사 사건은 경찰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표적 사례다.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 당시 검시제도의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 증언을 배척하거나 채택하는 등의 문제 또한 유효하다. 모두 김성재 변사 사건으로 짚어봐야 할 공익적 가치다.
지난 1년6개월여 동안,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수사·공판 기록과 당시 신문·잡지 기사 등 3천 쪽 넘는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당시 수사기관·법원 관계자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했다. 유족과 지인들을 만났고 법의학자와 의사들의 조언도 구했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김성재 전 여자친구 쪽 변호인들도 수차례 접촉했다. 이제 26년 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죽음의 진상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주
연재 순서

운명의 밤
오른팔의 주사 자국
누가 부검을 반대했나
진정서와 동물마취제
제보자와 황산마그네슘
누락된 증거와 첫 공판
⑦ 법의학 vs 법의학

주요 등장인물
K 김성재 여자친구·피고인
육미승 김성재 어머니
L 김성재 매니저
배○○ 반포동물병원장
정희선 국과수 약독물과장
2021년 2월17일 K의 변호인이 <한겨레>를 상대로 보내온 연재 중단 및 게시 중단 요청 내용증명. 가스총을 쏘고 결박했다는 김성재 지인들의 당시 법정 증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2021년 2월17일 K의 변호인이 <한겨레>를 상대로 보내온 연재 중단 및 게시 중단 요청 내용증명. 가스총을 쏘고 결박했다는 김성재 지인들의 당시 법정 증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김성재 변사사건 재판의 쟁점은 피해자의 사망시각이 피고인 K가 숙소를 나온 새벽 3시40분 이전인가 이후인가, 피해자 사인이 피고인이 구입한 졸레틸50 등으로 인한 것인가였다. 공판 내내 혐의를 입증하려는 자와 결백을 입증하려는 자의 싸움이 이어졌다.

4~5차 공판은 1996년 3월26일 화요일 하루 동안 열렸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였다. 앞선 공판과 같은 303호 대법정이었다. 재판부는 하루에 두 번 재판을 속행하면서 공판을 서두르고 있었다.

K에게 574만원을 보낸 육미승

오전 공판에선 검사와 K 사이에 팽팽한 문답이 오갔다. 검사는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사망 추정 시각이 새벽 2시50분 이전으로, 그때는 K와 함께 있던 시점이라며 압박했다. K는 호텔에서 나올 때까지 김성재가 살아 있었다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검사는 왜 잠자다 호텔에서 나왔냐고 물었다. K는 과거에도 잠을 계속 잔 일이 없고 도중에 깨서 집으로 왔다고 진술했다. K가 사건 전 자살하려다 발각된 일을 두고 검사가 자신을 비롯해 인명을 경시하는 생각을 가진 것 아니냐고 물어 K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1 재판장은 오후 2시에 공판을 다시 열겠다고 말하며 4차 공판을 마무리했다.

이날 오후 2시, 5차 공판이 열렸다. 오후 공판에선 K에게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을 팔았다고 제보한 반포동물병원장 배○○과 김성재의 어머니인 육미승 등이 출석했다. 이날 배○○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1995년 11월 초라고 말한 졸레틸50 판매 시점이 9월 초일 수 있다며 앞선 진술을 번복했다. 사건 발생일과 졸레틸50 등의 구매일이 차이 날수록 피고인의 혐의는 상대적으로 옅어졌다. 이날 공판 증인 출석 이후에 배○○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이날 변호인들은 사건 전 육미승이 두 차례에 걸쳐 74만원과 500만원을 피고인 계좌에 입금한 이유를 물었다. 돈거래를 할 정도로 K를 믿고 가깝게 지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다. 육미승은 74만원은 김성재가 빌렸던 의상비를 갚은 것이고, 500만원은 김성재가 미국에서 지낼 때 생활비를 전달해달라고 입금했다고 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검찰과 변호인들은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들에겐 자신이 의도한 대로 재판을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재판장이 6차 공판기일을 알리며 공판을 마무리했다.

6~7차 공판도 같은 날 오전 오후에 걸쳐 열렸다. 4월15일이었다. 오전 10시 김성재 기획사의 선임 매니저이던 정재문에 대한 증인심문이 이뤄졌다. 변호인은 김성재 소속사가 사건 현장을 조작한 게 아닌지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이어갔다. 같은 날 오후 2시, 7차 공판이 속행됐다. 매니저 L이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다. L은 1995년 7월 초 피고인의 집에서 가스총을 맞고 나온 김성재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K가 눈에 살기를 띤 채 ‘너는 죽어야 돼’라며 가스총을 쏘았다는 얘길 김성재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당시 김성재 얼굴은 붉고 옷은 찢어져 있었다고도 했다. 이때 변호인이 반대심문에 나서 가스총으로 인한 피해 정도는 눈이 약간 따가운 정도이고 가스 냄새도 나지 않았다는데, 의도적으로 꾸며내기 위한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L은 김성재 몸에서 가스 냄새가 난 것은 사실이라고 맞섰다. 당시 변호인들은 “K의 조작 실수로 가스총이 발사된 것”이라며 “당시 가스총에는 인체에 무해한 시험탄인 물탄이 장전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많던 취재기자는 없어지고

오후 공판에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김광훈과, 김성재 몸에서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을 발견해낸 정희선 약독물과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김광훈은 틸레타민보다 더 효과가 약한 향정신성의약품 펜사이클리딘(PCP)으로도 사망한 사례가 있고 심지어 그 양(0.3㎎/㎖)이 김성재 몸에서 검출된 틸레타민 양(0.85㎎/㎖)보다 적었다고 했다.

또 사체에서 나온 다른 한 가지 물질인 졸라제팜에 대해선, 유사한 화합물인 디아제팜으로 사망한 사례보다 졸라제팜의 혈중농도는 낮지만 약효가 더 강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충분히 사망할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에 의한 중독이 복합돼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김성재 소변의 마그네슘염 함량은 대조 사체보다 5~15배 이상 높게 나왔다.

치사량을 둘러싼 논란은 졸레틸50 한 병이 몸에 투입되면 얼마만큼의 양이 되는지 확인한다면 쉽게 정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에 따라 대사량이 달라 같은 양을 주사해도 몸에서 검출되는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김성재 몸에 투여된 졸레틸50이 한 병이었는지 두 병이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동물병원장이 한 병을 팔았다고 한 진술 때문에 법적 다툼은 한 병이 치사량에 해당하는지에 집중됐다.

4월15일 오후 2시, 7차 공판이 속행됐다. 오후 공판에는 증인으로 출석한 정희선이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이 함께 인체에 투약되면 상승효과가 일어나 약물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증언했다. 또 일반인이 졸레틸50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기일을 알리며 오후 공판을 마무리지었다. 중반을 넘어선 법정 공방에서 피고인과 증인심문을 통해 다뤄진 사항은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의 치사량 여부 △부검감정서상의 사인 △김성재와 K의 관계에 따른 살해 동기 등이었다.

8~9차 공판은 4월29일 월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연이어 열렸다. 오전 공판에 검찰 쪽 증인으로 또다시 참석한 정희선은 사체에서 검출된 황산마그네슘이 치사량인지는 모르겠다며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의 남용 가능성(마약 대용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증언했다. 재판장이 오후 2시에 다시 재판을 열겠다고 말했다. 공판이 막바지로 넘어가면서 초기에 견줘 사회적 관심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공판을 중계하는 언론 보도도 없었다. 그 많던 취재기자는 자취를 감췄다.

1심 재판 당시 서울지법 서부지원으로 호송되던 피고인 K의 모습. 살인 혐의자에게 붙는 노란색 수번을 달고 있다. 스포츠경향 제공

1심 재판 당시 서울지법 서부지원으로 호송되던 피고인 K의 모습. 살인 혐의자에게 붙는 노란색 수번을 달고 있다. 스포츠경향 제공

졸레틸50 맞은 개는 죽지 않아

오후 2시, 9차 공판이 열렸다. 김성재를 처음 발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백댄서 류노아가 법정에 섰다. 류노아는 사건 전날 밤 김성재 팔에 주사 자국은 없었고, 김성재와 K의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미국에서 K와 전화할 때마다 “이×아, 제발 좀 그만 놔둬라. 짜증 난다”고 말한 적 있고, 한국에 와서는 둘이 말다툼을 벌였다고 했다. K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간다고 하니 김성재가 절대 못 오게 한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고도 했다. 귀국 뒤 김성재가 K를 매일 만난 것은, 일주일만 있으면 일본으로 유학 가니까 잘해달라는 K의 말에 마지못해 응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기일을 정한 뒤 9차 공판을 마무리했다.

10~11차 공판은 5월13일 월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연이어 열렸다. 10차 공판에선 변호인 쪽이 요청한 K의 친구와 수의사가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변호인 쪽의 반격이 시작됐다. K의 친구인 전○○은, K가 명랑하고 쾌활해 친구가 많았다며 학창 시절 인기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김성재와의 사이도 별문제 없었다고 덧붙였다. K로부터 일본 유학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변호인은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수의사 김○○에 대한 심문을 이어갔다. 변호인은 김○○에게 실험을 의뢰한 바 있었다. 김성재 몸에서 검출된 틸레타민과 졸라제팜의 함량을 개에게 주입할 경우 사망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김○○은 실험 결과로 봤을 때 졸레틸50이 키 180㎝, 몸무게 75㎏ 정도의 젊은 남자에게 치사량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변사자 몸에서 나온 졸레틸50의 양으로 개에게 투약했을 때, 3마리 모두 죽지 않고 1시간 만에 깨어났다고 했다. 이때 동물실험에서 김성재 사체에서 검출된 황산마그네슘은 개에게 주사되지 않았다. 같은 조건으로 실험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변호인은 수의사의 실험이 녹화된 영상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날 오후 2시, 다시 재판이 열렸다. 11차 공판이었다. 김성재를 부검한 법의학자 김광훈과 사인을 감정한 고려대 법의학연구소 황적준 교수가 검찰 쪽 증인으로 다시 법정에 섰다. 먼저 김광훈은 김성재의 사인은 약물중독이라며 검출된 농도면 치사량으로 보지만 객관적 자료가 없어 치사량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을 같이 투약하면 사망에 이르는 시간이 빨라질 수 있고 즉사할 가능성이 있다며 양측성 시반으로 봤을 때 사망시각은 새벽 3시 이전이라고 했다.

곧바로 이뤄진 변호인의 반대심문에서 김광훈은 졸레틸50의 원료인 틸레타민을 미국에선 마약으로 규제를 심하게 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또 마그네슘염 치사량이 360~420ppm이라는 연세대 김경환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고 마그네슘염 혈중농도 67.8ppm으로는 인체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견해에 동의한다고 증언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이었다.

김광훈에 대한 증인심문을 마친 검사가 황적준을 상대로 증인심문을 벌였다. 황적준은 사체에서 나온 주사 자국이 모두 생존시에 주사된 것이 확실하다며 정맥주사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 주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11월20일 자정부터 새벽 2시50분 사이이며 그 이후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치사량에 대한 변호인의 반격을 검사가 사망 추정 시각으로 되받아친 형국이었다.

검찰 쪽의 재반격을 받은 변호인은 다음 공판에서 설욕전을 준비했다. 변호인 쪽 법의학자를 증인으로 요청한 것이다. 재판장은 다음 기일에 결심공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결심공판에선 검찰의 구형이 이뤄진다.

호텔 앞 목격자의 놀라운 증언

결심공판은 5월20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열렸다. 법의학자 이광수가 변호인 쪽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그는 김성재의 혈중 마그네슘염 함량(67.8ppm) 수치로는 인체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 사체의 틸레타민 0.85μg(마이크로그램)의 농도만으로 치사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도 했다. 졸레틸50과 황산마그네슘이 함께 투약되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검찰 쪽 법의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당연하지 않다며 반드시 합해져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2

검찰의 법의학과 변호인의 법의학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해석은 극과 극으로 대립했다. 이날 결심공판에선 사건 당일 새벽 호텔 앞에 있었다는 한 목격자도 마지막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의 증언은 놀라웠다.

오승훈 <한겨레> 기자 vino@hani.co.kr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1. K 1심 공판 진술
2. 이광수 1심 공판 진술, K 변호인 내용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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