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2007년 일이다. 청년 여성 연구자와 함께 한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를 분석했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정치 성향은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커뮤니티다. 공동연구자는 이 연구 때문에 해당 커뮤니티를 처음 접했는데 게시판 내용을 훑어보고선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게시글에는 본문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여성의 신체 사진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했던 점은 사진 속 여성 모습은 전신이 아닌 신체 일부만 있거나, 얼굴 없이 목 아래만 찍힌 것도 있었다. 유명 배우, 아이돌 스타 사진은 물론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는 일반 사람들 사진도 같은 방식으로 소비됐다.
‘짤방’(유머를 목적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이미지)은 대표적인 인터넷 밈(meme·유행으로 도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온라인 문화 초기부터 게시물 작성 규칙으로 여겨졌다. 게시물에 사진을 함께 올리는 것은 이미지가 중심인 디지털 문화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짤방’으로 주로 왜 여성의 몸을 사용하느냐다. 예를 들어 몇몇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질문에 답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여성 이미지를 올린다. “오늘도 활기찬 하루가 되길 바란다”며 여성 이미지를 첨부하기도 한다. 남성 중심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의 몸 사진이 시각적 볼거리, 유흥 그리고 교환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여성혐오’(misogyny)는 여성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을 동료 시민이 아닌 시각적,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가부장제도에서 여성이 특정한 위치, 남성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고 신체 일부로 환원하고 성적 모욕과 비하 대상으로 삼는 ‘성적 대상화’는 여성혐오의 핵심 기제이다. ‘성적 대상화’라는 단어는 범위가 넓고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종종 받지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 여성은 이 개념을 즉각적으로 인식한다. 자신의 신체가 조각조각 분해돼 남성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현실을 말이다.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서울 혜화역 시위)에서 청년 여성들이 든 시위 문구 중 하나는 ‘내 일상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였다. 이 문구는 현재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불평등을 요약한다. 여성의 일상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미지가 되고, 그 이미지는 다시 기술을 통해 조합·분해·합성되어 볼거리로 유통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보도하는 몇몇 언론 또한 범죄 양상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화, 괴물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상 속에 여성 이미지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디지털성범죄의 기반이자 온라인 문화의 주요한 정서 구조를 이루는데도 말이다.
2019년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선정성 기호에 여성의 몸 이미지를 사용한 적이 있다. 영등위는 영화 관람 등급을 분류할 때 주제·선정성·폭력성·공포 등 7가지를 고려하는데, 이 중 선정성 기호에 신체 굴곡이 드러나는 모습을 한 여성이 비스듬히 앉아 있는 이미지를 썼다. 폭력성은 주먹 모양을, 공포는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기호를 활용했다. 폭력성과 공포 등 다른 6가지 기호에는 성별이 없지만, 선정성은 곧 여성의 몸이 기호가 됐다. 이는 여성의 몸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대상이기 때문에 선정적이고 음란하다고 본다. 청소년에겐 위험하지만, 성인에겐 허용해야 하는 사생활의 자유라고 인식한다. 이 모든 인식이 청소년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선정적인 콘텐츠라는 것을 표현하는 기호 하나에 녹아들어 있다. 논란이 일자 영등위는 새 디자인으로 선정성 기호를 교체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그대로 사용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상호작용적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여성 신체 이미지에 대한 ‘상호작용적’ 요구는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2018년 또 다른 청년 여성 연구자에게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한 경험에 대해 들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을 때 댓글과 디엠(Direct Message·쪽지)으로 ‘다리가 예쁘다’거나 ‘다리만 부각하여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때 그의 반응은 이랬다. “내가 다리냐?” 여성의 몸 이미지는 남성의 시각적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직접 여성에게 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또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같은 상호작용적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더욱 자연스럽게 온라인 문화 속에 등장한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하고 공유하는 게 왜 문제냐는 반론이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성의 욕망을 타고난 것으로 이해하는 문화적 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교육부가 2016년 중학생 성교육용으로 내놓은 교재엔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며 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9년엔 정부가 불법 사이트에 대해 접속 완전 차단 방식(SNI·Server Name Indication)을 시행하자, ‘야동 볼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시위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합법적인 ‘야동’을 보는 걸 막으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야동’과 ‘불법촬영물’을 구분할 기준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량한 피해자(야동인 줄 알고 보았는데 불법촬영물인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야동’은 보아야 하는 것, 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것으로 자연화되고 이해받는다.
이제,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게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고 이를 ‘문화’로 여겨온 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우리가 그간 보아온 ‘법’의 경계는 불법촬영물과 디지털성폭력이 무엇인지 명시하지 못했다. 남성 중심적 시각에 따라 여성의 피해를 따지지 않고 영상물의 ‘음란성’을 판단해왔다.
불법촬영 범죄를 말할 때 남성 중심 온라인 문화를 지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 여성들이 말하는, 포르노로 소비되는 “내 일상”은 말 그대로 일상을 말한다. 2017년 트위터에서 청년 여성들이 구글의 ‘길거리’ 검색 결과를 공유하면서 분노했던 사례가 그렇다. 길거리를 걷는 모습, 휴가를 떠나 바닷가에서 즐기는 모습,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성의 모습은 성적 대상화돼 온라인 공간을 떠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며 사생활을 침해하고,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성은 인격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는다.
사진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온라인 공간은 ‘댓글 쓰기’라는 형태로 상호작용을 보장하는데, 여성 사진이 게시되면 성적 모욕이나 비하가 더 늘어난다.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인터넷 ‘밈’화한 표현은 축적되고 더욱 유행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미지를 더 쉽게 공유함으로써 피해 범위는 계속 확장해간다. 때론 신상이 공개되기도 한다. 온라인에선 자신의 이미지가 누구에게 공유되는지 알기 어려워서 피해자가 자신의 몸 이미지에 대한 권리를 전혀 갖지 못한다. 총체적인 인격 침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지만, 가해자에게는 ‘침해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전혀 없다. 그저 밈화한 방식으로 반응할 따름이다.
불법촬영 사건이 알려지면 촬영물을 검색예를 들어 여성의 몸 이미지가 커뮤니티나 단체대화방 등에 게시되면 ‘ㅗㅜㅑ’(오우야)라는 댓글을 연속해서 쓰며, 여성의 몸 이미지가 남성의 감상을 위해 제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엔 남성 시선이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에 멈춰 있는 이미지가 섬네일(작은 이미지 파일)로 자주 보인다. 또 커뮤니티엔 여성 BJ가 움직임에 따라 특정 신체 부위가 강조되는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올려달라며 “용자를 기다린다” “귀인을 기다린다”는 댓글이 달린다. 이런 온라인 문화는 여성의 몸을 디지털화한 이미지로 착취하는 현재 디지털성폭력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성폭력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일반화된 성별 구조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이 가능했던 것은, 여성의 신체가 타인에게 공개되는 것이 여성에게 낙인 효과를 일으키고,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인격 박탈로 이어지는 문화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일상인 문화에서는 이미지를 이용한 성적 폭력이 폭력으로 인지되기 어렵다. 특정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사건이 알려지면 오히려 해당 영상물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심지어 ‘기자 단톡방’에서도 사건 취재 뒤 영상이나 사진을 공유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수사하면 ‘더 안전한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해 영상 공유를 반복한다. 사회적으로 불법이라고 인지된 상황에서조차 단순히 남성의 시각적 대상물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의 몸 이미지는 교환 대상이 되고 이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산업, 성착취에 기반을 둔 산업 구조가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특정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여성의 이미지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이를 남성의 권리라고 인식하는 온라인 문화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면서 이루어지는 즐거움이 본능의 충족이자 남성들이 오랜 기간 누려왔던 문화라서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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