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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사람이 드론도 아니고

등록 2020-11-07 15:21 수정 2020-11-11 00:5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내가 드론도 아니고.” 최근 라이더들이 부쩍 자주 하는 말이다. 배민과 쿠팡이츠, 요기요 등 주요 음식배달 플랫폼이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배차 방식을 도입하면서 현장에선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산과 바다 등 주변 지형과 큰 도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도상 직선거리 기준으로 배달시간을 안내하고 배달료를 지급하다보니 ‘드론처럼 날아가라는 말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라이더들은 날아가는 대신 신호위반과 난폭운전으로 대응한다. 거창하게 ‘AI’라 이름 붙였지만 실제로는 효율적으로 인간을 돌리기 위한 관리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 배달업계 알고리즘은 전화와 말로 노동자를 관리하던 매니저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드론이 아니라도 방법은 많다

문재인 대통령도 드론을 언급했다. 10월3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방문한 대통령은 드론 기술이 발전하면 택배노동자가 고생을 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행사 관계자들은 멋진 아이디어라며 화답했다. 곧바로 드론을 비롯한 로봇으로 일자리를 잃을 택배노동자에 대한 문제 인식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무 고민 없이 택배업계에 드론이 뜨면 노동자들은 과로사가 아니라 해고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말꼬리를 잡고 싶지는 않다. 로봇을 도입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굳이 드론 같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도 택배노동자를 도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택배상자에 구멍을 뚫어 손잡이를 만들면 40%까지 하중을 줄일 수 있다. 이에 택배·마트 노동자들이 상자에 구멍을 뚫어달라고 요구했다. 그 시행을 약속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1년 넘게 묵묵부답이다. 택배노동자의 출입을 막는 ‘갑질 아파트’와의 협의, 배송품 분류 인력 투입, 배달료 현실화 등 사회적 합의와 법제도 개선으로 풀 수 있는 일도 널렸다. 대통령의 공약이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배달업계는 기존 하청 구조 위에 알고리즘을 통한 지휘·감독과 실시간 배달료 시스템을 얹어서 기술적 노무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노동자의 최소 소득 보장, 근무조건의 불이익한 변경 금지, 노동시간 제한, 해고 금지 등 기존 근로기준법의 보호망을 피해가고 있다. 싼값에 노동자를 부리던 기업들은 기술 발전으로 로봇 가격이 저렴해지면 해고 제한이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손쉽게 계약 해지할 수 있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인간은 불안한 이유다. 모든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엘리베이터 정체로 배달노동자가 꺼리는 초고층 아파트 배달은 드론에 맡길 수 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친환경 포장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로봇과 AI에는 죄가 없다. 언제나 문제는 인간이었다.

로봇과 AI에는 죄가 없다

기술이 없어서 택배상자에 구멍을 뚫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더 많은 생산과 이윤을 위해서만 쓰이고 노동자의 안전과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활용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착취 도구일 뿐이다. 이윤을 위한 기술 개발은 투자고,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연구는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기는 사회가 변화하지 않고는 노동자를 위한 기술도 없다. 대통령에게 드론 연구개발자가 아니라 노동조합과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인간을 위한 기술혁신뿐만 아니라 지구와 인간을 위한 사회시스템의 혁신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게 바로 정치의 역할이자 대통령의 역할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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