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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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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장애] 발을 쿵쾅거리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

발달장애인이 보내는 신호는 단지 ‘문제행동’일까?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나타나는 ‘반응행동’!
등록 2020-11-01 17:20 수정 2020-11-05 10:34
물놀이장 놀러가는 줄 알았는데 고궁에 와서 빨리 물놀이장 가자고 울고 있는 아이. 류승연 제공

물놀이장 놀러가는 줄 알았는데 고궁에 와서 빨리 물놀이장 가자고 울고 있는 아이. 류승연 제공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딸이 일부러 발을 쿵쾅거리며 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쾅! 하고 닫는다. 후후훗.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아느냐. 나도 우리 엄마한테 수없이 해봤던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옷차림만 쳐다보는 줄 아는 사춘기지만 멋을 위해 감기도 불사하겠다는 용맹함을 아직은 못 본 척하기 힘들다. 똑똑 노크하고 들어가 이야기 좀 하자며 마주 앉는다. 그다음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왜 외투가 입기 싫은지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이해해주며, 외투 없이 보온성을 높일 대안을 찾아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상생의 길을 찾는다.

아들에게만 이유를 묻지 않았던 이유

이번엔 쌍둥이 아들에게 가본다. 아들이 일부러 발을 쿵쾅거리며 거실을 돌아다니다 누나 방 문이 닫힌 걸 보고선 그 앞에 드러누워 두 발로 문을 쾅 때린다. 후후훗. 그런다고 내가 쫄 줄 아느냐. 나도 다 해봤던 일이다. 대학생 때 여동생이 아끼던 내 치마를 몰래 입고 나갔다 온 걸 발견한 순간 씩씩대며 돌진해 동생 방 문을 냅다 발로 찼다. “너 한 번만 더 내 옷 입고 나가면 끝인 줄 알앗!”

이젠 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들에게도 너무나 당연한 과정을 거치면 된다. 누나에게 왜 화가 났는지 이야기를 듣고 화나는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과거의 난, 유독 아들에게만은 이 과정을 생략하곤 했다. 그저 방문을 발로 찬 행동만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 아들과 관계 맺고 있는 이 중에도 과거의 나처럼 아들을 대하는 이가 많은 것을 안다. 이유는 하나. 아들이 말 못하는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아들에겐 늘 교육이 먼저였다. 문을 발로 차면 “삐뽀삐뽀 문제행동 발생! 문제행동 발생!” 경보를 울리고 문제행동을 잡기 위한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발달장애 특수성을 공부하고, 그렇게 찾은 원인은 애초에 소거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달라진 결과를 도출하려 애썼다. 구조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문제행동이 생길 여지를 없애려고도 노력했다. 과장을 살짝 보태서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발로 차지 않게 문을 아예 없애든가, 소리 나지 않게 문에 스티로폼을 덧대든가.

그런데 아들의 문제행동이 사실은 문제행동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마음을 전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비장애인 딸처럼 유창한 언어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에 비언어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고 얘기하는 중이었다면. 그러면 문제행동을 잡겠다며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초점을 맞췄던 내 노력은 아들의 마음을 무시하고 한발 더 나아가 “침묵하고 살라”며 입을 틀어막는 행위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장애계’란 곳에서 더욱 편견이 단단해

문제행동을 마냥 이해해달라거나 교육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교육보다 먼저 살펴야 하는 게 마음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얘길 하는 것이다. 마음이 중요한 시대 아니던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는 늘 마음 챙김에 관한 책이 있고, 너도나도 “내 마음의 힐링”을 외치며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마음을 중요시하는 우리는 그동안 왜 발달장애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엔 그토록 인색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이른바 ‘장애계’라는 곳에서 더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거리에서 스치듯 지나치는 비장애인에게 발달장애인의 행동은 문제행동이라기보단 그냥 이해 못할 이상한 행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애계에 속한 부모, 교사, 의사, 치료사, 사회복지사들은 발달장애인을 더 자주 접하면서 비장애인인 자신의 편견에 힘을 더하고 확증편향을 공고히 해줄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처음부터 방향성이 정해진 정보 수집 때문에 발달장애인은 사람이 아닌 ‘특수한’ 존재가 된다. 이미 문제행동으로 규정해버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대응해야 해”라며 매뉴얼 먼저 들이민다.

요즘은 장애계에서도 ‘문제행동’이란 용어에 문제가 있다며 ‘도전적 행동’ ‘어려운 행동’ ‘반응행동’ 등으로 바꿔서 부르고 있다. 나는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의 용어를 골라야 한다면 반응행동에 한 표 던지겠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상호관계에서 나타나는 반응행동이다.

모든 사람은 비언어적 수단을 쓴다

말 못하는 아들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수록, 말을 못하게 막을수록 더 큰 행동언어로 말한다. 이만큼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 더 크게 얘기할 수밖에. 하지만 자신의 행동언어를 읽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문제행동이라 불렸던 것들을 스스로 거둬들인다. 큰 행동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기 마음이 전달되니까 작게 말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노트북 자판이나 그림카드를 통해 비언어적 표현을 언어적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더 편하겠지만 아직 아들은 그것이 가능한 발달단계에 들어서지 않았다.그래도 괜찮다. 마음은 비언어적 수단으로 더 잘 전달되는 법이니까. 이건 장애/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다. 중학교 때 옆 반의 뉴키즈온더블록 멤버 도니를 닮았던 남자애는 내가 짝사랑한다는 걸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떠벌렸다. 매번 웃는 얼굴로 “어머 잘 있었어?”라며 인사말을 건네는 동네 아줌마도 사실은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 눈빛과 표정과 말투 등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내 마음이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의사소통을 위해 비언어적 수단을 쓴다. 다만 누군가에겐 그 비중이 압도적으로 클 뿐이다. 그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는 건 수신자인데 발신자를 문제 있다 해버리면 누구에게 좋은 걸까? 승자가 없는 질문이다. 바뀌어야 하는 건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이유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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