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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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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돔은 겨울을 지내고 못 보던 쥐치가 잡히고

완도 우럭 양식장, 2016년 고수온 뒤 바이러스로 집단폐사 겪어
진해만에는 올해 장마 영향 홍합 집단폐사
등록 2020-08-30 09:15 수정 2020-09-01 02:01

폭우, 산사태, 폭염, 냉해, 고수온…. 정신없이 몰아쳤던 ‘2020년의 기후위기’를 차분히 기록하려 <한겨레21>이 전국의 피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10대 활동가들이 동행했습니다. 기후재난이 삶을 관통할 당사자이자,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입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이수아 활동가) 기후위기에 관심 갖게 됐다는 이들은 산과 바다, 마을과 농장에서 기후위기의 위력을 목격하고는 “미래를 살아갈 두려움”(박선영 활동가)이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관찰에 기자들의 취재가 더해진 ‘2020 기후위기 목격’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와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기후위기에 관한 최소의 기록입니다_편집자주

김기장(49) 사장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과를 시작합니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옆 완도군의 신지도 가두리양식장을 방문한 8월21일 해 뜨는 시각은 5시58분, 김 사장은 5시에 나와서 물고기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해가 뜨기 전에 식욕이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 두 시간 넘게 걸리던 먹이 주는 시간은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더울 때 먹이를 많이 먹으면 소화를 못 시키고 죽기 때문입니다. 전남 함평 지역에 고수온주의보가 연일 내려지던 때였습니다. 바다의 수온은 달궈진 뭍이 식은 뒤에도 8월 말, 9월 초까지 계속 올라갑니다. “일이 없어서 편하겠다고요? 물고기 무게가 돼야 출하하는데 그게 몇 달 미뤄집니다.” 우럭(조피볼락)은 5월 양식장에 새끼를 넣어서 다음해 12월에 무게 400~500g에 이르러 출하하는데, 여름 먹이가 줄면 그다음 해에나 출하할 수 있습니다.

제주 어부가 통영으로 간 까닭은

군대를 다녀와 부모님 양식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김 사장의 경력도 20년이 넘어갑니다. 고수온을 피부로 느낀 건 최근인 2016년의 일입니다. 폭염으로 뜨거워진 바다에 어류 바이러스인 이리도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어장에 있던 어류가 집단폐사를 했습니다. 바다 온도가 27~28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시기에 바이러스가 확 번져, 80% 정도 성장한 줄돔이 손도 못 쓰고 죽었습니다. “바이러스가 무서워요. 약이 없어요. 휩쓸면 다 죽는다고 봐야 해요.” 여전히 고수온이 생길 때면 해양 감염병이 양식장을 타격할까 두렵다고 합니다.

“완도는 적조도 없는 지역”으로 남쪽에서도 차가운 바다입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바다가 따뜻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럭 외에 줄돔, 감성돔, 빨간돔 등 비싼 종류의 치어(어린 물고기)를 키워 9월 경남 통영으로 보냅니다. 돔은 따뜻한 곳에 사는데 통영 쪽이 완도보다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9년에는 통영에 보내지 않고 완도에 남긴 돔이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았습니다. 완도의 겨울 바다가 돔의 최저 생존 온도인 7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서입니다. “벵에돔, 쥐치 등 안 보이던 게 낚인다는 말도 듣습니다.”

지난 1월 제주에서 만난 어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주에서 잡히던 어종이 이제는 잡히지 않아 통영으로 일터를 옮겨 잡고 있다고요. 익숙하게 잡던 어종을 따라 어부가 이동하는 거지요.

고수온이 빈번해지고 해수 온도가 점차 오르면서 등수온선이 올라가면 돔 등 비싼 아열대성 어종을 많이 잡을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태계는 급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힘듭니다. 이 상황에선 전체 수산자원이 줄어듭니다.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 2020>은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RCP(대표농도경로) 8.5 시나리오) 전세계 해양생물 총량은 최대 15.0%, 어획량은 최대 25.5% 줄어든다고 예측합니다(1986~2005년 대비 2080~2099년).

장보고대교 앞 전남 완도군 신지도 가두리양식장에서 김기장 사장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여름 끝무렵 고수온 시기에 관리를 잘 못하면 물고기 집단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구둘래 기자

장보고대교 앞 전남 완도군 신지도 가두리양식장에서 김기장 사장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여름 끝무렵 고수온 시기에 관리를 잘 못하면 물고기 집단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구둘래 기자


미동도 없는 바닷속 민물덩어리

국립수산과학원 윤석현 박사는 “인근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플랑크톤의 크기가 작아지는 걸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열대 지역은 식물플랑크톤이 작아서 에너지 전달률이 낮아 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데,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거지요.

뭍에서 벌어진,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긴 54일간의 장마(중부지방의 경우)는 바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해만에서 홍합 집단폐사가 일어났습니다. 거제·창원·통영·고성 4개 시군에서 굴, 가리비, 홍합, 미더덕, 멍게 등 6종 피해 신고는 827건, 피해액은 72억5800만원(8월25일 기준, 경상남도 자료)으로 추정됩니다. 원인은 빈산소수괴(산소가 거의 없는 물덩어리, 용존산소량 3㎎/ℓ 미만)입니다. 장마 때 바다로 엄청난 양의 민물이 밀려왔고, 바로 높은 온도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밀려온 민물이 꼼짝없이 바닷속에 갇혔던 까닭입니다. 이 경우 양식줄을 위로 당겨 산소가 풍부한 쪽으로 올리면 되지만, 이번에는 그런 조치로도 복구가 불가능했습니다. 평소 바닷속 10m에 자리하던 물덩어리가 5m 높이까지 올라왔답니다. 이렇게 수면 가까이 올라온 것은 처음이라고 어민들이 이야기합니다. 태풍(바비)이 물을 뒤집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 태풍 대비에 분주한 경남 고성군 해양수산과 관계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어주기만 하면 좋은데 바람이 거세면 양식줄이 날아가 2차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양식장을) 오래 할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김 사장은 “잘 모르겠어요. 어차피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고수온으로 먹이를 적게 주기는 하지만 양식장 한쪽에선 치어가 몇십 마리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치어가 죽은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수온 상승? 산소 부족? 자기들끼리 치였을 수도 있습니다. 얕게나마 이해하기 위해 갔는데 사실 우리가 정말 이해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에 너무 많이 의지하고 살아왔기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한 공감과 얕은 이해,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면 우리가 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피해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무례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더 민감하게 겪는 현장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무게가 얼마인지 결론 내리지 못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치어가 뻐끔뻐끔 숨 쉬는 것을 보니, 폭염을 마주한 우리처럼 보였습니다. ​

전세계 평균보다 높은 한반도 해수 온도

지난 46년간(1968~2013년)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은 약 1.19도 올랐습니다. 전세계 평균 표층 수온 상승(0.37도)보다 3배 이상입니다(국립수산과학원, 2014년). 누구도 예외 없이 기후위기에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피해 정도는 다릅니다. 서울에 사는 나는 완도, 한반도 끝으로 가서 기후위기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지구 평균온도 1.5도 상승(산업화 이전 대비)까지 7년4개월 남았습니다. 한국은 이미 1.8도 올랐습니다(‘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국립기상과학원, 2018). 우리가 만난 이들이 그리고 수많은 기후위기의 당사자가, 모든 생명이 안전하길 바랄 뿐입니다.

완도=김서경(18)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취재 도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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