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 각자 생활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다보니, “값싸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 “옛날처럼 육지랑 떨어진 섬도 아닌데, 왜 물가가 여전히 비싼지 이해가 안 된다” “관광지라고 음식값도 비싸고 맛집이 없다” 등 여러 의견이 쏟아졌다. 나 역시 남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은 먹거리에 대한 것이었다. 물가도 비싸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사시사철 바다와 논밭에 둘러싸인 시골 생활을 하면서 도시에 살 때보다 먹거리 고민이 더 깊어졌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처음에는 시골 오일장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고령화로, 시장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대신 남해 곳곳에 있는 중소형 마트를 이용했는데 단골을 네 번이나 바꿔보았지만 어디서든 장 보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떤 마트는 공산품은 아주 저렴하지만 채소나 과일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것도 죄다 비쌌다. 어떤 곳은 채소 가격은 싸지만 신선도가 떨어지고 금방 물렀다. 읍에 있는 마트에서 한 달간 아르바이트하며 지켜보니,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인근 다른 지역에서 대량생산된 것을 다시 소분해 파는 방식이었다. 마을에서 나는 작물은 대부분 농협에서 일괄 수매해, 도시로 흘러간다. 차라리 진주, 사천 등 인근 지역 대형마트를 이용한다는 남해 사람도 많이 만났다.
물론 시골에 살면서 직접 먹을 것을 생산하고, 잘 몰랐던 제철 재료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집 앞 텃밭을 가꾸고, 어르신이 산이나 밭에서 난 것을 수확해 나눠주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의 거대한 시스템과 규모 있는 시장을 벗어나니,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도 홀쭉해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유 대신 두유를 사고 싶다든지, 공장식 계사에서 생산된 달걀이 아닌 자연방사로 키운 달걀을 사고 싶다면, 여러 마트를 돌고 돌아야 겨우 찾을 수 있다. 환경에 관심 갖는 소비자층을 겨냥한 친환경 상품은 더더욱 남해에서 보기 어렵다. 이미 고령화된 시골 마을에서 더 생태적이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할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시골에 살면 더 푸짐하고 신선한 식사를 쉽게 그리고 자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그건 도시인으로서 시골에 대해 품었던 환상 중 하나였다.
결국 최근 장 보는 방식을 아예 온라인으로 바꾸었다. 꽤 만족스럽게 이용한 적 있는, 한 단체의 꾸러미 정기 배송을 다시 신청했다. 각 지역 농부들이 키운 무농약·친환경 제철 식재료를 한 바구니에 담아, 한 달에 한두 번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장 보러 마트를 오가는 데만 왕복 1시간이 걸리고, 그렇게 마트에 가봤자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없으니, 차라리 내가 원하는 것을 인터넷으로 사서 집 앞 배송을 받는 게 낫겠다 싶었다.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원하는 삶을 찾아 내려온 시골에서도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될 뿐이다.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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