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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n] 온라인 그루밍 피해…랜덤채팅 단계서 보호해야

온라인 그루밍 관련 법
등록 2020-06-13 15:42 수정 2020-06-17 09:55
‘엔번방’을 모방해 이른바 ‘제2의 엔번방’을 만든 닉네임 로리대장태범의 재판이 진행된 지난 3월31일 춘천지법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 등이 손팻말을 들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엔번방’을 모방해 이른바 ‘제2의 엔번방’을 만든 닉네임 로리대장태범의 재판이 진행된 지난 3월31일 춘천지법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 등이 손팻말을 들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가해자는 젊다. 온라인을 이용해 피해자를 물색하고 유인하는 성범죄자의 평균나이는 31.2살로, 오프라인 그루밍 가해자(41.7살)나 일반 성범죄 가해자(38.1살)에 견줘 어리다. 일반 성범죄 가해자는 20대부터 50대까지 고르게 분포한 반면, 온라인 그루밍 가해자는 20~30대에 몰려 있다. 피해자는 10대가 많아 피해자와 가해자의 나이 차이가 적다는 특성을 보인다.(201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그루밍의 특성 및 대응방안 연구’)

이 연구를 진행한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실 실장(심리학 박사)은 “인터넷 접근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층이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르기 쉽다. 디지털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오가는 메시지로 조종해 착취가 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운 유형의 성착취 행위가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 연구에선 디지털성범죄로 수익을 창출한 사례는 없었지만, n번방 사건은 범죄 수익에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등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나라가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그루밍 법을 서둘러 제정하고 있다. 영국은 2003년 성범죄법(Sexual Offences Act)을 제정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그루밍 행위를 모두 처벌하고 있다. 18살 이상 성인이 16살 미만 아동을 성적 목적으로 만나는 것은 물론, 연락을 취한 뒤 만나려 하거나 만날 의도가 있는 것만이라도 10년 미만의 구금형에 처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는 형법에서 16살 미만 아동과 성행위를 할 목적 또는 의도적으로 유인할 목적으로 정보처리장치를 이용한 대화를 한 성인은 10년 이하 구금형으로 처벌한다. 이때 아동이 12살 미만일 경우 형량(14년 이하 구금형)이 올라간다. 네덜란드도 2007년 성적 그루밍 처벌 법규를 만들었다.(2020년 5월 형사정책연구원 이슈페이퍼 특별호)

아동 성적 착취에 맞서는 비영리단체 ‘국제실종및착취아동센터’(ICMEC)에 따르면, 196개국 중 63개 나라(2017년 기준)에 온라인 그루밍 법이 있다. 하지만 우리 법에는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지난해 13살 이상 16살 미만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황을 이용해 성관계를 맺을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 아청법에 들어갔지만, 온라인에서만 그루밍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디지털성범죄 근절 대책을 내놓으며 온라인 그루밍 처벌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을 입법할 때, 성적 목적으로 유인하는 과정을 좀더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래야만 오프라인에서 성범죄가 발생하기 전 단계인 랜덤채팅 앱이나 SNS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수사기관이 개입하고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는 “온라인으로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해 성적 의도가 담긴 부적절한 대화를 건네거나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노출 사진 등을 요구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입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숙 실장도 “n번방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최근 온라인 성학대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엔 직접 만날 생각이 없어도 성적 그루밍 목적으로 접근하는 행위를 범죄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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