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월쯤부터 주양육자를 아빠로 인식하는 듯한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안겨 있다가도 아빠를 보면 웃는다.
요즘 넷플릭스에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줄줄이 올라와 즐거운 복습을 하는 중이다. 개중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 사람 얼굴을 한 사슴신이 나온다. 사슴신이 걸을 때마다 발굽이 닿은 곳에선 갑자기 수풀이 울창하게 자라고 꽃이 피어난다. 그의 숨결이 닿으면 칼에 찔린 상처도 하룻밤 새 말끔히 낫는다. 다친 사람을 고쳐주고 죽은 것을 되살리는 생명력. 인간은 이런 생명력을 갈구하기에, 예수 같은 메시아가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도 한다.
이런 근원적인 생명력이 아이 안에 속삭인다는 느낌이 든다. 3.64㎏으로 우람하게 태어난 아이는 6개월 만에 8.8㎏으로 2.5배 정도 늘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수많은 뼈와 근육과 장기와 기관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면서도 어떻게 정교한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는 몸의 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기술도 착착 습득해간다. 뒤집기, 옹알이, 잡기, 물기, 뜯기, 마시기 등 몇 달 만에 능력치가 빠르게 올라간다. 특히 점점 원하는 대로 손을 쓸 수 있었다. 분유를 받아먹기만 하다 이젠 젖병을 가까이 가져가면 두 손으로 젖병을 받아 스스로 먹는다. 떡뻥튀기를 손에 쥐여주면 혼자 다 먹고, 또 달라고 칭얼대며 손을 내민다. 새벽 대여섯 시에 일어나 칭얼대며 아빠를 깨운 뒤, 아빠가 앞에 나타나면 그 작고 통통한 손을 뻗어 아빠 얼굴을 조몰락거린다. 그 손길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나에게 의지하고 애정을 주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야 했던 중요한 이유 하나를 알아가는 느낌이다.
아이가 5개월쯤 되니 나를 조금씩 주양육자로 인식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안겨 있다가도 나를 보면 활짝 웃는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부모님 집에 아이를 맡겨놓고 나왔다가, 세 시간 만에 아이 울음을 배경으로 “아이가 숨넘어갈 듯이 운다”고 연락이 와서 급하게 다시 들어간 적도 있었다. (아, 이제 아기를 두고 외출할 자유도 사라지는 건가.)
아이와 관계에서 주양육자라는 의미가 더 커지지만, 내가 그 역할을 잘해낼지 여전히 자신이 없다. 특히 나는 아이와 놀아줄 때 ‘텐션’(반응 정도)이 떨어진다. 아내가 주말에 아이와 종일 놀아주는 모습이나 다른 엄마들이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아이와 잘 놀아주는지 부럽다.
나는 특히 말하는 게 힘들다. 과장된 몸짓을 하고 높은 톤으로 말하는 게 잘 안 된다. 내가 묵언수행하듯이 묵묵히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거나 놀아주는 모습을 아내가 보다못해 한마디 한다. “제발 말 좀 해라.” 하지만 어떻게 하나. 영어 문법엔 빠삭하지만 정작 회화는 못하는 한국인들처럼 입이 잘 안 떨어지는걸. 이러다 아이가 말 배우는 게 늦어지거나 사회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슬며시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몸으로 놀아주는 건 좀더 잘하는 듯하다. 까꿍하기, 간지럽히기, 안고 뒹굴기를 하면 아이는 자지러지며 웃는다. 그림책처럼 읽을거리가 있으면 나는 비로소 입을 열어 열 권이고 열심히 읽어준다.
아이가 태어나면 도마뱀이 허물 벗듯 애벌레가 나비 되듯, 부모도 육아에 맞는 몸으로 탈바꿈하면 얼마나 좋을까. 난 도마뱀이나 나비가 아니니, 그저 시간이 가며 좀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난 이미 아빠지만, 아빠가 되어가는 중이기도 하다. 아빠가 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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