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런 경험을 해봤을 거다. 종일 일만 하다 누웠는데, 이대로 자는 게 너무 억울한 기분이 들 때. 분명히 지금 잠들어야 내일 제시간에 깰 수 있는데도, 내 정신이 잠을 거부할 때 말이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이나 티브이를 보고 가벼운 책을 읽는 것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뭔가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잠이 오지 않는다. ‘나를 위한 시간 총량 보존의 법칙’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난 육아휴직(육휴)을 하고 나서 이런 욕구가 더 강해졌다. 아침 6시쯤 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해, 내 육아 업무는 아이가 잠드는 밤 9시쯤 끝난다. 성실한 주양육자라면 충실한 내일 육아를 위해 아이와 같이 잠자리에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부터 눈을 반짝인다. 밤 11시에 잠들기까지 두 시간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마지막 업무인 설거지나 아기 재우기가 끝나면 바로 샤워를 한다. 하루 동안 흘린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뒤 책상에 앉으면 나의 하루가 비로소 시작되는 느낌이다. 내가 육휴를 시작하기 직전 육휴를 마치고 돌아온 남종영 기자가 “아기 재우고 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맥주 마시고 노느라 살이 쪘다”고 했던 말에 뒤늦게 무릎을 쳤다.
주로 휴직하기 전에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던 책을 읽는다. 하지만 항상 집중하지는 못한다. 이미 에너지를 소진한 뇌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유튜브나 웹툰, 페이스북 같은 것에 손이 가버린다. 또 어떤 날엔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 자야 할 시간을 넘겨버려, 다음날 아침 골골대기도 한다. 육휴를 하기 전에 만난 육휴 선배들이 알려준 비결 중 하나는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이승준 기자는 내 육휴 직전에 밥을 사주면서 “난 육휴 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창작과 비평> 읽기 모임에 나갔는데, 너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봐”라고 조언했다. 다른 자리에선 육휴를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고 경영전문대학원(MBA) 석사과정을 수료하는 ‘위업’을 세운 기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그는 “너무 고생해서, 가능은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흐름을 끊어줄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다. 나한텐 그게 공부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육휴 시작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집을 나섰다. 홍익대 앞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저서를 강독하는 세미나인데, 내용이 난해해서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좋았다. 세미나 전에 어떤 맛집에서 저녁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까지 그 모든 시간이.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물론 내가 집을 나서려면 아내의 협조가 필요하다. 흔쾌히 승낙한 아내도 마음속으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넉 달간 진행된 세미나가 끝나고 다른 세미나를 들으려 한다고 말하니, 아내가 “어디 써먹을 데 없는 철학 같은 건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생활에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거예요”라고 핀잔을 줬다. 철학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등 대부분 취미 활동이 조선시대엔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일이었다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아내에게 애교를 부려서 윤허받는 길을 택했다.
왜 ‘나를 위한 시간 총량 보존의 법칙’ 같은 게 작용하는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안의 무엇이 ‘아이를 낳았지만, 내 일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걸까. 이유는 몰라도 효과는 확실하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육휴자여, 일주일에 한 번은 배우자에게 당당하게 아기를 맡기자.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요구할 자격이 있으니까.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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