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를 읽는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랑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새벽에 고열이 나서 응급실에서 코로나19 검사받고 결과 기다리고 있대요. 어떡하지, 나 밀접 접촉자인데.”
난 태연한 척 기다려보자고, 괜찮을 거라고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만약 안 괜찮으면? 아내가 자가 격리를 한다면 어디서 해야 하나, 나도 감염됐다면 아이는 누가 돌볼까, 만약 아이가 감염됐다면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지난주에 만난 문화센터 육아모임 사람들한테는 뭐라 말해야 하나. 두 시간 뒤, 아내의 직장 동료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 9개월을 통틀어 코로나19가 가장 가깝게 느껴졌던 순간이다.
8월30일부터 2주간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됐다. 이런 때가 다시 오리라고 전문가들이 여러 번 경고해 마음의 준비야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쉽지 않았다. 몇 달 만에 다시 사회적 거리를 두려니 느슨해진 몸이 잘 따르지 않는다. 아이와 다니던 문화센터에선 “새 학기 개강을 2주 늦춘다”고 알려왔다. 바로 이틀 뒤에 다시 한 달 뒤로 개강을 더 연기한다는 공지가 왔다. 문화센터 육아모임 단체대화방에선 곡소리가 나왔다.
집 안에서 버티다 정 답답하면 인근 공원에 간다. 집 앞이라도 신경은 쓰인다. 만 10개월인 아이는 마스크를 씌우려 하면 손으로 밀쳐낸다. 아내는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선 감염될 수 있다”며 불안해하지만, 어떻게 하나.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집 밖에 나오니 선선한 가을바람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기분이 좋은지 연신 팔을 흔드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해진다. 공원에 도착하니 놀이터나 정자처럼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엔 모두 테이프를 둘러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들어갈 수 없는 놀이터 옆에서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멀리서 마흔 명은 돼 보이는 50~60대 무리가 줄지어 지나갔다. 여행을 온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 저리 대놓고 방역 지침을 무시할 수 있는지 어처구니없었다.
확진자가 조금 줄어 9월14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낮춰졌다. 하지만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올해 가을이나 겨울에 감염병 재유행이 올 수 있고, 이런 상황이 2~3년은 갈 거란다. 숨이 탁 막힌다. 당장 아이를 돌 직후인 11월부턴 어린이집에 한두 시간이라도 보내 적응시키려 했는데,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내년 1월에 복직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인데, 만약 어린이집이 휴원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안 나오고 답답하기만 하다.
고민은 꼬리를 문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는 날이 언제 올까? 두려움 없이 친구들과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같이 뛰어노는 날은? 나중에 아이가 큰 다음, 내가 여행했던 나라들을 갈 수 있을까? 왜 앞선 세대가 풍족하게 살며 누린 대가를 다음 세대가 치러야 할까? 이 모든 질문에 당장 답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답이 나와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하는 지침에 잘 따르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아이가 마스크 없이, 두려움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날이 더 빨리 오도록.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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