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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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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6개월은 자가격리

코로나19가 있으나 없으나 아이와 집에 갇혀 있어야 하는 우울함에 대하여
등록 2020-03-31 20:55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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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난 건 지난해 10월.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돼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규모의 재난이 닥쳐왔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곧 지나가겠지’라며 낙관했던 코로나19가 일상을 이렇게까지 뒤흔들어놓을지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코로나19 피해자는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그중 하나다. 초·중·고 개학 연기와 함께 유치원, 어린이집도 문을 닫아, 아이들과 집에 갇힌 부모들은 삼시세끼 해먹이고 놀아주느라 몸은 너덜너덜, 영혼은 하얗게 불태워지고 있다.

사실 난 1월13일 육아휴직을 시작한 뒤로 일종의 ‘자가격리’ 상태에 있었다. 우리 아기는 이제 태어난 지 만 5개월에 접어들었다. 외출이 권장되는 시기는 생후 4개월부터다. 하지만 6개월 전까지도 자외선에 노출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외출을 시작한 것이 5개월이 다 돼서였다.

그러다보니 지난 2, 3월엔 온종일 집 밖에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종일 집에 갇혀 있으니 왜 주부가 우울증에 잘 걸리는지 조금은 감이 온다. 우리 아기는 아침 6~7시에 깨서 밤 8~9시에 잠든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하루 13~15시간이다. 그러면 평일만 쳐도 주간 노동시간이 65~75시간에 이른다.

말 못하는 아기와 둘이 있으면 몸은 바쁜데 심심하다. 아기와 계속 놀아줘야 하는데, 자꾸 휴대전화에 손이 간다. 출근한 아내한테 카톡이라도 오면 너무 반갑다. 오죽하면 아내한테 ‘하루에 한 번은 꼭 전화하라’고 부탁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연애감정이 다시 살아나고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날이 섰다. 웃으며 넘어갔던 아내의 실수에, 더는 너그러울 여유가 없다. 바로 도끼눈 뜬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오후 4~5시. 이때가 고비다. 머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턴 시계를 하염없이 보면서 아내가 집에 올 시간만 기다린다. 아내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오는 데 걸리는 40분을 못 참고 전화해 묻고 만다. “언제 와?” 이승준 기자(<한겨레21> ‘주양육자 성장기’ 참조)는 아내가 늦게 오는 어느 날 아이를 재운 뒤 혼자 폭탄주를 말아 먹었다고 하는데, 나도 좀 있으면 그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던 3월 중순 토요일, 조카를 보러 처제 부부가 집에 왔다. 아이를 맡기고 오랜만에 아내와 집을 나섰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이태원에 가서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고,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를 찾아갔다. 하늘이 보이는 마당엔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여기에 달달한 당근케이크와 진한 아메리카노. 아, 머리를 짓눌러온 어두운 기운과 마음속 화가 스르르 사라지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내와 아들 외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셋이 있으니, 가끔 육아에서 해방시켜주는 어머니와 장모님과 처제다. 카페 마당에 선 이름 모를 나무 아래서,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개학을 세 차례나 연기했지만, 4월6일에도 개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여름에 남반구로 갔다가 겨울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팬데믹 규모의 전염병이 찾아오는 주기가 더 빨라질 것이다’ 등 무서운 말이 들려온다. 태어나자마자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우리 아이.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걱정하며 ‘자가격리’의 하루가 또 간다. 근데 여보, 언제 와?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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