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부모들을 만나고 나서 로망이던 육아휴직 중 낮술의 꿈을 이뤘다.
“저기, 시간 되면 커피 한잔하러 안 가실래요?”
문화센터를 다닌 지 한 달쯤 됐을 때다. 수업을 마치고 센터를 막 나서려는데, 한 아기 아빠가 나를 불러세웠다. 회원끼리 커피 마시는 모임이 만들어졌으니 같이 가자는 이야기였다. 나도 문화센터에 온 다른 엄마 아빠들을 보면서 궁금하기는 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나만 궁금했던 건 아니었나보다.
서로를 만난 부모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나이도 직업도 서로 달랐지만 곧 오래 만난 친구처럼 허물없이 가까워졌다. 지금 경험하는 문제 대부분을 똑같이 겪고 이해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아기들도 만 8~9개월 정도로 개월수가 한두 달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달라지는 행동, 이유식 먹이는 방법,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신세 한탄 등 이야깃거리는 무궁했다. 나는 이유식을 너무 많이 먹인다고 엄마들에게 말로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턴 뭔 커피냐며, 점심과 함께 낮술을 마셨다. 세 번째 만났을 때 한 부부는 아기옷을 사와서 모든 아이에게 선물로 돌렸고, 다른 엄마는 말린 사과 간식을 나눠줬다. 언제 시간 내서 다 같이 강원도 홍천 같은 곳으로 여행 가자는 의기투합도 했다. 세 번째 모임도 수업이 끝난 오후 2시부터 치맥으로 시작해, 저녁에 퇴근한 아내가 합류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모임 시간이 길어질 줄 예상하지 못해 아이 분유와 이유식을 안 챙겨와서, 다른 아이 엄마에게 젖병과 분유를 빌리는 젖동냥이란 것도 해봤다. 알딸딸한 상태로 석양빛을 받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 나의 1년 육아휴직 후반부는 전반부보단 좀더 재미있으리란 기대로 차올랐다.
아기 키우는 부모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어쩌면 누군가와 대화할 수 없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온종일 아기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지만, 아기는 듣거나 옹알거리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에너지 넘치는 부모라도 하루 내내 아이를 돌보다보면 저녁쯤엔 지쳐 말이 없어진다. 다른 부모들과의 대화는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온 마음속 답답함을 몰아내주는 산들바람 같았다.
그날 집에 와서 샤워하던 중, 문득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아기와 함께 공원에 나와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을 보고 직장인들이 “맘충 팔자가 상팔자”라고 이죽거리던 대목처럼, 한국 사회에선 아기를 대동한 엄마들이 카페나 식당에 모여 있는 걸 곱게 보지만은 않으니까. 우리 모임이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야외석이나 사람이 적은 식당을 찾은 이유도 그런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모여 노는 것은 어른들 정신건강에만 좋은 건 아니다. 어른들 수다는 아기 언어 발달에도 좋다. 소아과 전문의가 쓴 육아의 ‘바이블’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보면 “언어 발달에 관한 한 제일 중요한 것은 아기 옆에서 어른들이 대화를 하는 것”이라며 “하루에 5~6시간 정도” 어른들의 대화에 노출하라고 권장한다. 그러니 앞으로 카페나 식당에 아이들과 함께 부모들이 모여 즐겁게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면 ‘그래, 아이들은 저렇게 키워야지’라고 흐뭇하게 봐주길 바란다.
나는 문화센터를 일주일에 수요일, 금요일 두 번 간다. 앞에서 말한 일은 수요일반 부모들과 있었던 일이다. 그럼 금요일반 부모들은 어떨까? 이 사람들도 누군가 자기에게 말 걸어주기를, 같이 이야기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금요일반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용기 내서 말했다. “저기, 시간 되는 분들은 끝나고 커피 한잔하러 안 가실래요?”
글·사진 김지훈 <한겨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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