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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 역지사지가 필요한 이유

북, 5월4·9일 발사체 훈련… 이견과 잠재적 갈등 노출
등록 2019-05-11 13:52 수정 2020-05-03 04:2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4일 화력 타격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이 다음날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됐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4일 화력 타격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이 다음날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됐다. 연합뉴스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군사 활동이 대표적이다. 나는 방어적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겐 공격적으로 비칠 수 있고, 나는 통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겐 도발로 간주될 수 있다. 5월4일과 9일에 있었던 북한의 발사체 훈련도 이에 해당한다. 4일 발사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행동이 9·19 군사 분야 합의를 비롯한 남북 정상회담 합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라며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그러자 북한은 “정상적이며 자위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이 5월4일에 실시한 화력 훈련은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단거리 지대지미사일로 분류할 수 있는 발사체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게 탄도미사일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이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를 위반하는 셈이라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과 미국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탄도미사일로 규정해 북한을 자극하기보다는 계속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7일 전화 통화에서 되도록 빨리 대북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는 북한의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할 수 있는 기술적 정보가 부족하고, 어떻게든 협상 동력을 살리려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의지와 북한의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을 최대 외교 업적으로 내세워온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판단이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안보리에 회부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 양국의 절제된 대응에 추가적인 발사로 응수하고 말았다. 5월9일 쏘아올린 발사체는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아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낸다. 자칫 한반도 정세가 2017년으로 회귀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약속도 한-미 훈련 ‘축소’ 아닌 ‘중단’

북한의 잇따른 발사체 훈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미 동맹과 북한 사이의 군사 활동에 대한 이견과 잠재적 갈등은 여전하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사례에서 교훈을 추출하지 못하면 언제든 갈등은 더 큰 형태로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태도가 바로 역지사지다.

지난해 말에 있었던 일이다. 한-미 군 당국은 올해부터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된 형태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 심지어 정부 관계자들도 군사훈련 축소는 북한을 배려한 것이자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략 자산 투입을 최소화하고 훈련 규모를 많이 줄인다는 점에서 이 주장이 타당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하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한-미 군사훈련의 축소가 아니라 ‘중단’이었다. 군사훈련 축소를 두고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을 배려한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북한은 약속 위반으로 간주했다. 거칠게 비교해보자. 만약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규모를 줄여서 하겠다’고 하면 한-미 양국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오해 없길 바란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자, 역지사지 관점을 가질 때 우리가 원하는 결과에 다가설 수 있다는 의미의 반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발사체 논란은 이러한 양쪽의 간극을 좁혀야 할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문제는 한-미 군사훈련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북은 지난해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부전(不戰)의 약속을 다양한 군비 통제 조처로 실천에 옮겼다. 매우 의미 있는 약속이자 실천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합의 취지에서 벗어난 정책도 계속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대규모 국방비 증액과 무기 도입이다. 정부는 올해 국방비를 8.2% 올린 것을 비롯해 2023년까지 약 270조원을 투입해 대규모 전력 증강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단계적 군축”에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 취지에 맞지 않는다. 특히 전력 증강 사업에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보이지 않는 전투기’ F35의 전력화도 포함됐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대규모 전력 증강 계획을 크게 하향 조정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들 현실이다. 정부 내에선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려면 독자적인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미국제 무기 도입 계획을 하향 조절하면 ‘무기상’ 트럼프의 반발을 야기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갖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군비 증강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인 군비 증강이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북한에 군사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2배 정도 국방비를 인상하는 것은 결코 어울리는 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과 언론 역시 북한에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조속히 가동해야

상대가 있는 게임인 안보 문제를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다. 남북 정상이 지난해 9월 평양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런 취지의 반영일 것이다. 군사공동위원회는 합의만 있을 뿐 아직 구성조차 되지 못했다.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미 군사훈련과 한국의 전력 증강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불발이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북한도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 ‘민족 공조’를 강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남북 합의 사항 이행에 주저하는 것은 결코 자주적인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북-미 관계가 막힌 상황에서 남북대화로 자주적인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대화 없는 안보 게임은 ‘내로남불’로 흐르기 쉽다. 이걸 ‘공동 안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역지사지와 상호 이해의 태도로 대화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공동위원회 가동은 그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을 상대하는 태도도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북한은 미국의 “최대의 압박”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런데 최근 미사일 발사는 북한식 대미 압박의 하나다. 미국의 압박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미국을 압박해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심사인 셈이다. 이러한 북한식 일방주의로는 결코 트럼프의 용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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