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을 뒷춤에 꽂은 독자. 이정우 선임기자
톨스토이 할배는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다. 나는 할배와 다르게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다. ‘가정’을 ‘사람’으로 바꾸면 더 분명해진다. 불행한 사람은 엇비슷한 이유로 불행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하다.
이 후원제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후원이 얼마나 그럴듯한 일인지 폼 잡으며 말하지 않아 더 반갑다. 솔직히 힘들어 죽겠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고, 형편껏 도와달라고 한다. ‘21답다’. 그럼,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크림통에 빠졌다면 그대로 가라앉을 게 아니라 발버둥이라도 쳐서 버터를 만들건 치즈를 만들건 해봐야지.
1994년 봄 창간 때 나는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 있던 내 남자친구는 18개월 방위복무 틈틈이 알바해서 100만원을 모았는데, 그 귀한 돈으로 여자친구 보러 올 생각은 못하고 컴퓨터(그것도 286!)를 사는 데 털어 넣는 바람에 이역만리에서 참 어이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돈도 그렇지만 마음도 ‘쫄려’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는 일이 엄두가 안 났다는 게 그의 변명이다. 지금도 그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그럴듯한 말은 더 못한다.
얼마 뒤 “이런 신기한 주간지가 나왔다”며 창간호를 포함한 서너 권을 항공우편으로 보내줬다. 학교 선배에게서 ‘뜯어낸’ 것이었다. 그 선배는 비교적 있는 집 자식이고 통도 큰 편이었는데, 몹시 아까워하며 귀한 것이니 꼭 돌려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건넨 모양이다. 남자친구는 몇 차례 더 보내줬다. 창간 초기에는 가판에 깔리면 바로 동났고 우리는 어리숙해서 지난호 구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동아시아 인권 수업에서 한번은 ‘양심수 김성만을 석방하라’는 제목의 비디오를 틀며 토론을 했다. 사우스코리언인 나에게 시선이 몰렸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거냐”는 난감한 질문이 이어졌다. 당시 나는 말도 짧았지만 생각은 더 짧았다. 엉겁결에 가방에 있던 을 꺼내들었다. 민주주의는 언론으로 자란다, 나는 이런 시사주간지에서 일할 것이다, 이 주간지는 진보적인데 심지어 아주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런 식으로 떠벌렸던 것 같다. 그즈음 내가 일하던 이탈리안 식당의 오너이자 주방장에게도 보여줬는데 그는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이게 한국에서 새로 나온 코미디 잡지”라고 엉뚱하게 소개했다. YS의 차남 김현철이 코미디언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몇 년 뒤 나는 진짜 에서 일하게 되었다. ‘덕업일치ʼ의 순간이었다. 기자로 즐겁게 일했고 더 오랜 기간 독자로 지냈다. 아이가 나에게 왜 읽지 않으면서 들고 다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쩌겠니. 몸에 익은 패션 코디랄까, 포인트인 것을. 누군가는 나와 내 친구들을 X세대라고 하지만 나는 취업하고 월급 받아 을 구독한 첫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빛나던 시절을 공유한 오랜 벗이다. 1990년대 중·후반 서울 종로의 피카디리극장이나 단성사 앞에서 소개팅하던 이들은 을 들고 ‘접속’했다.
내가 아는 한 독자들은 독특한 취향과 스타일, 까칠함과 정직함을 지닌다(점잖은 분들은 보통 을 읽으신다). 목에 힘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도 독자의 ‘머리’ 노릇을 하려고 들 때는 외면받았다. 독자의 눈과 귀, 손발일 때 사랑받았다. 가끔 성질낼 때조차 지지받았다. 죽 쑬 때는 격려받았다.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매체 환경이 바뀌어 종사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무지 어찌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손바닥 안에 더 자극적이고 손쉽게 접속할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만 잘하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정작 불행해지는 것은 불행이 닥쳐서가 아니라 불행을 느끼는 마음에 굴복해서라고 생각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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