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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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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만 보며 살자

불안으로 자신의 바람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부모들
등록 2020-02-09 03:40 수정 2020-05-03 04:29
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한 학생이 겨울방학 생활계획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한 학생이 겨울방학 생활계획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기 중에는 30분씩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눈썹을 그리던 아이가 방학이 되자 점점 늦게까지 잠을 자더니 급기야 해가 중천에 뜰 때 일어난다. 어떤 날은 완벽하게 12시간 이상 잔다.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는 중이란다. 내 아이의 요즘 장래 희망은 ‘팔등신’이다.

많이 자야 많이 크는 건 맞는데 심하게 게으름 피우는 걸 보면 답답하긴 하다. 엄마 경력, 돌봄 경력이 오래되면서 나에게도 적잖은 ‘레퍼런스’가 쌓였다. 어설픈 잔소리는 하지 않는 게 낫다. 게다가 학원도 안 다니고 놀 친구도 별로 없는 아이와 방학 내내 함께해야 하는데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서로 불행해질 게 뻔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아이에게 주문을 건다. 이리 보아도 예쁘다, 저리 보아도 예쁘다.

해보니까 아이만이 아니다. 팔순 넘은 부모도, 쉰 넘은 배우자도, 개돼지(70년, 71년생)인 친구들도 예쁘다, 예쁘다 하면 진짜 예뻐 보인다. 마법의 주문 같다. 하지만 맑은 심성의 시인과 달리 걸쭉한 심성의 나는 너무 오래 보거나 자세히 보는 건 삼가는 편이다. 특히 아이에게는 더 그렇다. 적정 거리감을 두고 봐야 계속 예쁘다. 잘 안 될 때는 나름 필터링을 한다. 그래, 너는 팔등신이 되려는 거지, 혹시라도 공부하면 골치 아프지, 골치 아프면 덜 자라지, 못생겨지지….

아이를 통해 간혹 그 또래의 비밀을 듣는다. 가장 마음 아픈 건 아직도 부모에게 매 맞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아빠를 두고 ‘엄마 남편’이라 칭하고, 다른 아이는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막말까지 한다. 성향이 특별히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다. 한 동네 오래 살며 봐온 바로는 대체로 ‘묻어가는’ 아이들이다. 부모가 문제다.

발단은 어이없게도 다들 ‘학습’이다. 정해진 분량의 문제집을 안 풀었다고, 시간 되어 책상에 앉지 않는다고, 놀다가 학원에 늦게 갔다고 쥐어박히거나 욕먹거나 막무가내 얻어터진다. 한 사례는 상습 가정폭력이 아닌가 유심히 살피는 중이다. 손찌검만 폭력이 아니다. 고함과 막말, 으름장도 폭력이다. 친구네 숙제 때문에 갔다가 그 집 아빠가 오빠에게 소리치는 모습을 본 아이가 얼이 빠져 돌아온 적도 있다. 공부하기로 한 시간에 오빠가 몇 분 꾸물댄 게 이유였단다.

부모의 바람을 아이에게 투사하면서 모든 사달이 벌어진다. 혹자는 그것을 욕심이라 하지만, 아마 불안에 더 가까울 것이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내 아이가 20에 끼지 못하면 어쩌나, 20이 어렵다면 80 중에서도 제발 높은 쪽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절박한 마음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그 불안은 부모의 불안이다.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사실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눈앞의 성적표와 아이의 학습 시간으로 당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의 전언 속에 등장하는 몇몇 부모의 히스테리를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나중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이렇게 키우면 아이가 떠날 수 없다. 원망과 의존과 경멸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부모가 묶어놓은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생의 에너지 상당 부분을 써야 할지 모른다.

나를 포함해 많은 부모는 어정쩡한 자세로 때론 걱정하고 때론 예뻐하며 아이를 키운다. 아이는 타고난 제 복대로 자라겠지만 부모의 양육 성적표는 아이가 성인이 된 뒤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 20이나 10에 속해 으스대며, 혹은 5나 1의 마름 노릇을 하며 이웃은 물론 제 부모까지 무시하는 ‘개싸가지’ 자녀를 두면 그 인생이 성공한 것인가. 폭력을 불사하며 공부시켜봤자 잘 자라야 그 정도다.

자꾸 멀리만 보려 하니 불안 쪽에 베팅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앞날은 잘 모른다면 지금 편안하고 행복한 쪽을 선택하자. 더욱 한 치 앞만 보고 살아야겠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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