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라고 답하던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였다. 아이들은 맹렬히 자란다. 윤가은 감독의 2013년 작품 <콩나물>. 한겨레 자료
초등 고학년 때까지만 해도 등굣길 몇 번을 돌아보며 손 흔들던 아이였다. 심지어 제 모습 잘 보라고 우리 집 창문에서 잘 보이는 길로 빙 둘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절대 내다보지 말라고 한다. 부르거나 손 흔들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하는 것도 만류한다. 쪽팔린단다.
세상 모두가 자기를 쳐다본다고 여기며 코에 난 뾰루지나 앞머리 뻗친 거에 종일 신경 쓰는, 역지사지가 안 되는 웃기는 ‘짬뽕 같은’ 시절을 내 아이도 관통하고 있다. 자라는 과정이겠으나 요새 아이들은 그 시절이 더 짠하다. 더 획일화되고 튀는 걸 더 못 견뎌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집, 학교, 학원으로 동선이 빤해진 탓은 아닐까.
세상은 훨씬 다양하고 넓어졌지만 아이들 활동범위는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게 오종종해진 것 같다. 덩달아 마음도 좁아질까 염려된다. 온갖 정보가 손바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시간과 공간은 빡빡하게 제한되니, 답답증이 생기고 갑갑증이 커질 수도 있겠다 싶다.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세대가 바뀔수록 더 격렬해진다는 ‘중2병’도 이 어름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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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가끔 입이 댓 발로 나와 있으면 왜 저러나 싶지만, 뾰족수가 없다. 어느 날은 학교 다녀온 아이에게 “배고프지? 요구르트 먹을래?” 물었다가 “나 좀 가만 놔두면 안 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이없어 따져 묻자, 귀찮게 자꾸 질문하는 듯해서 기분이 나빴단다. 학교에서 뭔 일이 있었거나, 그저 피곤했거나, 아니면 호르몬의 ‘몹쓸 농간’이거나… 그럴 만하니까 그랬을 텐데 그냥 놔둘걸 그랬나.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는 졸졸 따라다니며 별별 얘기를 늘어놓다가도 내 말은 잘 듣지 않는다. 건성이거나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한참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 “그때 거기서 붕어 싸만코 진짜 먹고 싶었는데” 하는 식이랄까. 이 무슨 ‘갑붕싸’스러운 국면이란 말인가. 저는 그러면서 혹시라도 내가 그러면 목소리가 세 옥타브쯤 낮아진다.
다섯 살 때 유치원 공개수업에서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라고 답하고, 이유를 묻자 “엄마가 좋아서”라던, (그렇다. 그 순간이 내 양육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천사는 어디 가고 오리 주둥이를 한 까마귀가 지금 내 앞에 있니.
사춘기 아이를 둔 집에서 나오는 빈번한 큰소리는 “너 표정이 왜 그래?”나 “대체 뭐가 불만이야?”일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입을 닫는다. 타일러 물어도 “그냥”이나 “알 거 없다”는 말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내 아이를 봐도 그렇다. 딱히 이유는 없어 보인다. 날이 구려서 날이 구리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기분이 별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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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아이들을 오래 돌봐온 한 지인은 아이들의 태도나 행동거지에 굉장히 관용적이다. 어지간한 일은 다 이해된다고 한다. 가정의 양육자에게는 아이가 한두 명, 많아야 두세 명이라 “대체 왜 이럴까” 싶겠지만, 많은 아이가 그러는 걸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고. 어느 틈에 자라 ‘독립’ 욕구는 달아오르는데, 물정은 잘 모르고 여건도 안 되니, 더 맥락 없이 몸도 마음도 뻗치는 게 아닌가 짐작만 해본다.
아이마다 성장 라인은 들쑥날쑥이다. 절대 줄 맞춰 자라지 않는다. 돌봄은 필요하나 살핌은 거절하는 시기의 아이 기분까지 부모가 어찌해줄 수는 없다. 어찌해보려다 큰소리 나고 문짝이 날아간다. 상실감과 궁금증을 이겨내고 내가 터득한 바는 제 마음은 제가 다스릴 일이라는 것이다. 물과 마음 관리는 셀프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아니라면, 두고 보자. 눈여겨보되 보는 척하면 안 되고 할 말이 많아도 아껴야 한다. 믿고 기다리거나, 믿고 기다리는 척하기. 에휴, 느는 건 연기력이다. 분명한 건 아이의 감정은 언제든 바뀐다는 것이다. 제 속도와 리듬대로 맹렬히 크는 중이니까. 온 산에 단풍이 물들듯이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찬란하다.
김소희 칼럼니스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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