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복 입은 이등병? 병특이 족쇄인가

갑질 사각지대 놓인 산업기능요원

군복무 대체 내세워 도 넘은 횡포
등록 2018-08-31 00:17 수정 2020-05-03 04:29
연합뉴스

연합뉴스

직무: 산업기능요원(병역특례)/ 급여: 연봉 28,000,000원 이상, 면접 후 재조정 가능

근무시간: 주 5일 근무, 평균 근무시간: 40시간/ 기숙사 제공, 회사에서 100% 부담

그는 병역 신체검사에서 4등급으로 공익 판정을 받고 채용정보 사이트를 검색했다. 전남의 한 제조업체는 멀리서 온 직원들에게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했다. 군대를 대신하면서 월급도 받을 수 있는 곳, 그는 공장에 취직했다.

수습기간 한 달이 끝나고 대체복무가 시작됐다. 월급명세서에 기본급 140만원이 찍혔고, 4대 보험 13만원이 공제됐다. 그런데 무료로 제공한다는 기숙사 사용료 10만원을 떼갔다. 사전 동의나 협의도 없었다. 불만이 있으면 계량기를 달아 전기료, 수도세를 자비로 내라고 했다. 그것도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기숙사를 나간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돈을 내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사는 부대장, 산업기능요원은 병사

소나기가 쏟아지던 여름날이었다. 그는 비를 맞으며 음식 폐기물을 쏟아놓은 현장을 치우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돼가는데 빗줄기가 거세졌다.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 있던 과장에게 다음날 치우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손을 씻었다. 퇴근 시간 10분 전이었다. “너희 지금 몇 시야? 다 튀어 들어와, 이 새끼야!” ○○○ 이사의 난데없는 고성에 산업기능요원들이 사무실로 달려왔다.

“니네가 6시에 옷 갈아입고 나가려면 작업장에서 몇 시에 나온 거야? 들어가 이 새끼야! 니네 들은 적 없어? 이렇게 씨발, 악을 쓰고 얘기해야지 들어 처먹어? 야, 개새끼! 다리 꼬고 있는 거야? 야, 너 전달 안 했어? 이리 와 씨발, 너부터. 너네한테 이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몇 번 얘기했어? 몇 번 이야기했냐고? 야, 대답해봐. 몇 번 들었어? 네가 일한 게 씨발, 얼만데, 개새끼야! 지금까지 그걸 모른다는 거야? 다 오늘 출근 안 한 걸로 해버려.”

폭언은 5분 넘게 계속됐다. 분하고 억울했다. 비 맞으며 더럽고 냄새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손만 씻고 퇴근하려고 한 죄밖에 없었는데, 사실관계도 일절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폭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어느 가을날, 이사가 산업기능요원 30명을 불렀다.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는 요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성실했다. 이사는 10분 넘게 연설했다. 사기꾼이고 개새끼들이라고 했다. 경찰서에 사기죄로 신고하겠다고 했다. 도열한 채 욕설과 훈계를 경청해야 했다. 이사는 부대장이었고, 산업기능요원은 병사들이었다.

회사는 타지에서 온 요원들에게 주소를 전남으로 옮기라고 했다. “주소 옮긴다고 회사에 뭔가를 바라지 마라. 아주 고약한 심보다. 빨리 주소 이전해.” 군복무를 대신하는 신분, 그와 동료들은 모두 전남도민이 되었다. 회사는 지역민을 많이 채용했다고 국가에서 상장을 받아온 것이었다.

회사는 지게차 운전을 해본 적도 없고 면허도 없는 동료에게 지게차를 몰게 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산업기능요원들을 감시했다. 건물 벽이 찌그러지자 범인을 색출한다고 지게차 근무자들을 불러모아 자수하도록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대체복무자들에게는 인권도, 민주주의도, 상식도 없었다.

군복무 기간이 끝날 즈음, 그는 무단 공제했던 기숙사 비용을 돌려달라고 했다. 수도 없이 퍼붓던 폭언에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사 한 명이 30명 넘는 요원을 관리하면서 일어난 일이고, 기숙사 비용 공제는 회사의 경영 악화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고용노동부를 찾았지만 폭언을 들은 시점에 퇴직하지 않아 실업급여 수급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군복무 대체 때문에 참았던 것인데, 그때 나갔어야 한다니 황당했다.

허울뿐인 지역민 우수채용기업상

“중소기업 청년 추가 고용 정책이 이렇게 쓰이고, 지역민 채용을 이렇게도 한다고, 왜 대한민국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꺼리는지, 음지에서 행하는 조용한 갑질을 나라에서 아시는지, 대통령상? 지역민 우수채용기업상? 상공인의 날 모범상? 빛 좋은 개살구, 허울뿐인 상장들인 것 같습니다. 오래 참았다는 이유로 직접적 퇴사 사유로 인정을 못한다니, 너무 억울합니다.”

병역특례로 정보기술(IT) 기업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한 청년은 대표이사의 무시와 폭언 때문에 괴로웠다. 익히는 데 2년 정도 걸리는 프로그래밍언어(C++)를 1~2주 만에 하라고 했다. 일주일 만에 인공지능 알고리즘(MLP)을 C++로 구현하라고 했다. 못하면 공개적으로 모욕과 멸시를 줬다. 잡플래닛 평가가 심각하게 좋지 않자 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긍정 평가를 하라고 했다. 전문연구요원은 외근이나 출장·야근·주말 출근이 없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주말에 문을 잠가둔다는 말도, 자유 복장이라는 말도 사기였다. 남도 끝까지 출장 가야 했고, 야근은 일상이었다. 토요일 아침 출근해 회사에서 밤새우고 일요일 저녁에야 퇴근하는 요원도 있었다.

회사는 출퇴근 시간을 조작했다. 출입문 지문 시스템에 인증한 시간이 아닌 업무관리 시스템에 로그인한 시간이 출근 시간이었다. 야근을 하든, 밤을 새워서 아침까지 일하든, 퇴근 시간은 무조건 오후 6시(6:00:00)로 고정됐다. 당연히 추가 수당은 없었다.

사기업만이 아니었다. 정부기관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신하는 젊은이는 사무관에게 견디기 힘든 욕설과 모욕을 당한다고 했다. ‘씨발놈’ ‘개새끼’는 기본이었다. 사무관은 “군대 안 다녀와서 저렇게 행동한다” “군인이니까 엘리베이터 이용하면 안 된다” “군대에 보내버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매일 퇴사를 협박당했다. “군복무 기간 때문에 참는 거지 하면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점점 한계가 오고 밤에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듭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병무청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산업기능요원이 1만3천 명, 연구기관 전문연구요원이 2500명, 해운·수산업체 선박 승선근무예비역이 1천 명이다. 인력을 배정받는 민간업체는 2018년 4월 말 현재 9569곳. 병무청은 산업기능요원의 산업재해와 임금 체불 피해가 늘어남에 따라 최저임금을 위반할 때 업체 퇴출 등 강력히 제재하기로 했다.

산업기능요원 갑질 실태 조사를

“병특들 빠따 맞아야지. 살기 좀 편한가봐?” 한 정보통신업계 병특 노동자가 관리자들에게 매일 듣는 소리다. 산업기능요원은 자진 퇴사시 복무기간 중 4분의 1만 인정받고 사회복무요원(공익)으로 근무해야 한다. 악덕 사장들에게 산업기능요원은 사복 입은 군인, 까라면 까야 하는 이등병이다. 마도로스를 꿈꾸며 해양대를 졸업하고 배에 올랐던 승선근무예비역 구민회씨가 지난봄 상사의 괴롭힘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했다. 그의 누나는 직장갑질119를 찾았고,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갑질 근절 대책 첫 사업으로 고용노동부와 병무청이 산업기능요원 갑질 실태를 조사해보면 어떨까? 1만6천 명 중 회사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았다는 요원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