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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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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휴가 있어도 못 쓴다

난임휴가 1년 3일 보장됐지만 난임 편견에 휴가 못 내…

“시험관 시술 땐 한 달에 4∼7일 병원 진료, 휴가 일수 턱없이 부족”
등록 2018-07-24 15:51 수정 2020-05-03 04:28
난임 여성들은 각종 검사와 난자 채취 등을 하러 한달에 3∼7번 병원에 가야 한다.류우종 기자

난임 여성들은 각종 검사와 난자 채취 등을 하러 한달에 3∼7번 병원에 가야 한다.류우종 기자

“시험관 시술을 하면 한 달에 적게는 4번, 많게는 7번 정도 병원에 가야 합니다. 제 경우는 지난 3년 동안 시험관 시술을 9차례 했으니 36번 넘게 병원에 갔어요.”

이은주(36·가명)씨는 인천에서 서울 강서구에 있는 난임 병원에 다닌다. 10번째 시험관 시술을 준비 중이다. 이씨는 병원에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옮겨야 했다. 세무서 사무직으로 5년 동안 일했는데 지금은 서비스업 계약직으로 일한다.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을 어쩔 수 없이 택했다. 전 직장보다 휴가를 더 쓸 수 있고 출근 시간이 늦어 오전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무서 사무실에서 계속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싶었어요. 하지만 휴가를 자주 내는 것도 눈치 보여서 그만뒀어요. 오전 진료를 보고 출근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라도 됐더라면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

3일 난임휴가 중 하루만 유급

정부는 난임 노동자를 위한 난임치료 휴가 제도 신설을 골자로 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 5월29일부터 시행했다. 이 법률에 따라 난임 노동자는 5월29일부터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등 난임치료를 위한 휴가를 연간 최대 3일을 쓸 수 있다. 최초 1일은 유급이고 나머지 2일은 무급 휴가로 적용된다. 난임휴가를 부여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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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관계자는 “그동안 난임 의료비 지원에만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난임휴가제를 통해 난임치료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라고 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송희(32·가명)씨는 “난임휴가는 꿈도 못 꾼다”고 한다. 난임휴가를 내려면 난임 진단서를 회사에 내야 한다. 난임 ‘낙인’(제1213호 ‘사회적 난임’을 만드는 사회) 때문에 난임인 걸 밝히기 어렵다. “한번은 회사 임원분께서 ‘애를 안 낳는 거냐, 못 낳는 거냐?’라고 묻더라고요. ‘아직 안 생기네요’ 했더니, ‘못 낳는 거고만’ 이러는데 눈물이 날 뻔했어요. 화도 나고요.”

김씨는 난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힘들단다. “기껏해야 1년에 3일밖에 안 되는 휴가를 쓰려고 난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차라리 다른 연차를 쓰는 게 마음 편해요.”

김씨는 친한 여직원 몇 사람에게만 난임 병원에 다니는 걸 말했다. 다른 분들의 난임 고민도 들었다. “회사 동료 언니가 인공수정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직접 놓아야 하는데 여직원 휴게실이 없어 차 안에서 주사를 놓았대요. 어떤 분은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주사를 놓고, 화장실에서 하는 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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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직장인 민효린(32·가명)씨에게도 난임휴가제는 ‘그림의 떡’이다. 난임휴가를 당당히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난임이라고 말하면 배려보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제 선임은 난임 병원에 다닌다고 상사에게 말하고 시험관 시술을 받으러 다녔어요. 하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어요. 시험관 시술로 가진 아기를 유산한 뒤에는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는다며 상사에게 큰소리로 혼났다고 합니다. 결국 그 선임은 퇴사했어요.”

임신부 단축근무도 안 되는 회사

임신부를 위한 모성보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민씨는 시험관 시술로 임신한 적이 있는데 당시 임신부 단축근무제조차 쓸 수 없었다. “그때 같은 시기에 임신한 다른 부서의 상사분도 단축근무 신청을 했더니, 개인 연차를 눈치껏 사용하라며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민씨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직원 90%가 여성인데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자들의 대체 인력을 뽑지 않는다. 출산한 사람도 휴직을 마음 편히 쓰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직장 오너가 제가 결혼할 때 아이 3명은 낳으라고 하셨지만 말뿐이었죠. 임산부들을 위한 모성보호제도도 못 쓰게 하니 말이죠. 그들도 못 받는데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이 어떤 제도적 지원을 받겠어요.”

민씨는 임신 준비를 위한 단축근무제를 마련해줬으면 좋겠단다. “시험관 시술을 하려면 생리 2일째날, 난자 채취하는 날, 이식일, 피검사 할 때 등 한 달에 4~5번 병원에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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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민씨는 휴가를 자주 낼 수 없으니 출근 전에 병원에 간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 첫차를 타고 병원에 갑니다. 의료진보다 먼저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가 아침 7시30분이 되면 초음파 검사를 1분 정도 하고 의사 진료를 1~2분 봐요. 진료 뒤 아침 8시에 다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거리의 회사에 겨우 출근합니다. 이렇게 한 달에 몇 번 병원에 갔다 출근하면 무척 힘들어요. 출근을 한두 시간만 늦출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난임뿐 아니라 임신 준비를 하는 모든 가임기 여성에게 필요한 거죠.”

몸이 고되지만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난임시술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민씨는 지난해 시험관 시술 비용이 1500만원 정도 들었다. 그러니 병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힘들어도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복수가 차서 10일 넘게 입원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나 임신만 한다면 다 견딜 수 있어요.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은 얼마든 괜찮아요. 아이 딱 한 명만 가질 수 있다면요. 그 희망으로 버티고 있어요.”

“난임휴직 1년 이상 기다리라니…”

5번째 시험관 시술을 하는 직장인 34살 박미경(가명)씨는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에 다닌다. 지난해부터 회사에 난임휴가제도가 생겼다. 인공수정 시술날, 난자 채취와 이식날에 휴가를 쓴다. “저희 회사는 탄력근무제, 시간단위 휴가 사용제 등이 있어 그나마 일을 그만두지 않고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팀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1시간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거나, 1시간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할 수 있고요. 병원 갈 때마다 연차휴가를 1~2시간 단위로 쓰고요. 저희 회사처럼 난임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지 않고 난임 시술을 받도록 약간의 제도적 배려만 있어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임신을 위해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박씨는 회사에 난임휴직제도도 있어 지난해에 휴직도 했다. “제가 1년 동안 휴직을 하며 병원에 다녔지만 임신이 안 됐어요. 쉬는 기간 무기력하고 우울했어요. 외벌이가 되니 경제적으로 쪼들리고요. 지난해 의료비로 1천만원을 썼거든요. 그래도 회사에 복직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직까지 난임휴직은 일부만 누리는 혜택이다. 공무원들은 난임치료로 최대 2년 동안 휴직할 수 있다. 신세계,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에서만 난임휴직을 자율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인 최미선(32·가명)씨는 회사에서 난임휴직을 시행하고 있지만 신청 조건이 까다롭다고 했다. 최씨는 올해 4월 말부터 난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인공수정 1차를 했고 2차를 준비 중이다. “회사 휴직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3번 이상 해야만 난임휴직서를 제출할 수 있다. 또한 분기당 3명으로 제한한다. 대기자가 많아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전 아직 인공수정 1번만 한 경우라 신청조차 할 수 없어요. 만약 인공수정 2번 더하고 신청해도 대기자가 많으니 휴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러다 임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릴 것 같아요.”

최씨는 장거리 비행 스케줄이 잡히면 병원에 다니기 힘들다. “장거리 노선을 한 달에 3번 정도 가요. 한 달에 8일 정도 쉬고요. 생리주기에 맞춰 2~3번 병원에 가야 하는데 비행 날짜와 겹치면 갈 수 없고요.” 장거리 비행을 갈 때 난포 키우는 주사를 정해진 시간에 직접 놓아야 하는데 그걸 갖고 비행기에 탈 수가 없다. 엑스레이 검문대에 걸리기도 하고 나라마다 주사제 반입 규정이 다르다.

최씨는 앞으로 어떻게 난임 병원에 다닐지 막막하다. “아이를 갖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가 많아요. 주변에 임신 가능한 때를 놓쳐 아이가 없는 분도 많고요.”

저출산 대책에서 소외된 난임 부부

이들처럼 아이를 낳고 싶은 난임 부부들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서 소외돼 있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 끝에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 과제’를 발표했다. 핵심 과제는 20~40대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대책에서 그나마 난임 부부 관련 정책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은 ‘사실혼 부부에게도 난임 시술시 건강보험 혜택 적용’ 정도다.

국립중앙의료원 최안나 난임센터장은 “아이를 갖고 싶은데 임신 순번제가 있고 난임휴가도 눈치를 보며 못 쓰는 상황이 결국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며 “국가가 출산 장려를 한다면 난임 부부들을 위해 휴가 일수를 늘리고 이들이 편히 휴가 낼 수 있도록 대체인력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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