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우기의 숲은 여전히 싱그럽다. 용암이 흐르다 굳은 크고 작은 돌들과 나무가 뒤엉킨 숲, 화산섬이 남긴 ‘생태계의 허파’ 곶자왈. 뿌리가 돌을 움켜쥐고, 거대한 바위가 늙은 붓순나무 뿌리를 움켜잡고 살아간다. 이 공존의 모습이라니.
며칠 전, 제주포럼의 ‘국가폭력과 기억’을 주제로 한 4·3세션 참가자들과 선흘곶자왈을 찾았다. 외신 기자, 인권운동가, 연구자들은 처음 보는 곶자왈에 매료됐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에겐 생명의 숲이었던 곳. 그곳 나무들을 베어다 집을 지었고, 열매를 땄고, 그곳에서 숯을 구워 팔기도 했던 곳. 이 곶자왈에 크고 작은 자연 동굴이 많다. 지금은 누구나 치유의 공간으로 찾지만 근현대사 속 곶자왈은 아픈 역사다.
4·3 시기 마을민들에게 굴은 은신처였다. 그러다 들키면 몰살당했던, 그런 참혹한 공간이기도 했다. 1948년 11월21일 선흘리 일대가 토벌대에 불바다가 된 뒤 마을 사람들은 그곳 곶자왈과 동굴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나흘 만에 도틀굴이 발각됐고, 토벌대가 굴 밖에 피워놓은 연기로 인해 굴 밖에 나온 많은 주민이 총살당한다. 외국인들의 입이 벌어졌다. 영화 의 무대인 ‘큰 넓궤’에서는 40일간 살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어렵게 곶자왈에서 나오던 인도네시아 누사야바니 카차 사카 카나에게 소감을 물었다. 자카르타 변호사 출신으로 열악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수십 년간 싸우고 있고, 인도네시아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여성연합 사무총장과 여성 폭력에 대한 전국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그가 그랬다.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과 4·3이 너무 흡사합니다. 대량학살에 대해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재차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행하지 않았어요.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4·3의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한 것과 대조적이지요.”
인도네시아 대학살은 2000년에야 처음 말하기 시작했다. 당시 ‘피해자연구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4·3 연구소에서 자발적으로 4·3 자료를 모으는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감명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모은 기록이 우리가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큰 가르침을 줍니다. 2년 전 인도네시아 학살 관련 북토크를 하려 했을 때 압력으로 무산됐는데, 금기의 벽을 뚫고 현기영의 이 나온 것은 다행입니다.”
그의 진지한 부탁 하나다. “국가가 진실 규명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나은 길인데 잘 받아들여지진 않아요. 제주포럼에 언젠가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나 전 대통령을 초대한다면 4·3 유적지를 답사하도록 해서 어떻게 4·3 해결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인도네시아 학살을 30년간 연구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명예교수 사스키아 비링아. 그는 “4·3 답사로 얻은 것은 침묵을 깨고 그것을 어떻게 재생해나가느냐. 침묵이 깨어졌을 때 인도네시아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의 좋은 사례가 된다. 침묵은 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애기무덤 앞에 놓인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것들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4·3을 미국에 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 싱가포르에서 취재하던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팀 셔록.
오로지 살기 위해 사람들이 숲의 가슴팍으로 숨어들었으나, 인간의 눈이 더 안전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본다. 분쟁 지역 생존을 위한 난민의 모습에서. 전쟁은 현실이며, 현재진행형이란 것. 그들의 모습은 전쟁은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징표가 아닌가. 고요한 곶자왈은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전쟁의 참담함도 내포하고 있었다. 한편 누군가에게는 침묵을 깨야 한다는 소리도 내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도 포용하기를. 바란다. 곶자왈에서 그들이 느꼈을 위로가 오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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