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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준 ‘성의 격’

피해자 서사에 피로감 운운하며 ‘미투플레인’ 하는 남자들…

어쩌지? 가해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데
등록 2018-04-06 07:20 수정 2020-05-03 04:28
정봉주 전 의원이 3월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 공원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정봉주 전 의원이 3월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 공원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하고 ‘성격 차이’로 헤어지곤 하는데, 둘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사랑 성격이 안 맞아 떠나고 부부나 연인이 일신상의 이유로 갈라서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고 보니 일신상의 이유에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성격이네. 성(性)의 격(格).

내 남편은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남자답게 다종 다기한 일탈을 저지르지만 성장기에 스포츠로 풀지 못해 그러리라 여긴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남자’인 내 처지에서 딱히 할 말도 없거니와, 스무 해 넘게 함께 살아오는 동안 ‘관계’를 위협하거나 ‘안전’을 해칠 만한 일은 없어서다(어디까지나 믿음의 영역이다). ‘성격적’으로 싱크로율이 꽤 높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느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이은 증언과 공방과 2차 가해 속에서, 그는 별로 아파하지 않았다. 공감에도 시비를 가리는 데도 한계가 뚜렷했다. 아, 너와 나는 삶의 기반이 달랐구나, 다르구나, 새삼 느꼈다. 주변 여자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통증을 느낀다. 그 아픔이 어쩌면 이 물결을 밀고 가는 힘일 것이다. 계급도 이념도 세대도 막론한다. 딸들이 더 용감하다. 덜 가져서 그런 것도 같다. 연극계에서 제일 먼저 터져나온 이유가 “잃을 게 없어서”라는데,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정치권과 우파에서 의외로 잠잠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이웃들과 “역시 이 나라에는 ‘청년 학도’밖에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나눴다. 제대로 연대하고 용감하게 싸울 줄 아는 이들은 사회인도 대학원생도 아닌 학부생들인 것 같다.

이제는 어린애들까지 설친다고? 교수님들, 그러기에 그런 어린애를 왜 밝히셨어요?

우리의 박 본부장님, 부서 회식에 한발 늦게 갔더니 남직원들이 가장 어린 여직원 옆자리를 비워놓았단다. “집사람보다 더 어린 여자 옆에 앉으면 혼난다”며 다른 곳에 앉았다는데, 그 말을 들은 여직원이 당연히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지. 우리의 본부장님, “그 여직원이 나에게 거절당해 기분 나빠한 것”이라는 놀라운 해석을 내놓으셨는데…, 저기요 지금 직원과 배우자를 세트로 ‘성적 대상화’하셨거든요. 그의 ‘집사람’은 “제발 회식 자리서든 어디서든 아무 소리도 말라”고 당부하며 이자를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나 심란해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는 이 지점장님, 회식 뒤 귀가해 마누라 무릎에 엎어져 한참을 서러워했단다. 이유인즉, 직원들 기 살려주려고 사비 들여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렀는데 도우미들이 젊은 놈들 옆에만 앉아 술 따르더라는…. 어이쿠, 노래방에서 술 시키면 위법입니다. 그 댁 ‘마누라’께서는 돈 쓰고 기죽어 억울한 이자를 달래야 하나 후려쳐야 하나 암담했다고 한다.

대망의 대(한민국)표(준)적인 김 부장님. 사무실에서 일하는 틈틈이 음란채팅 즐기고, 여자 직원 없는 회식은 재미없어하는 ‘개저씨’. 야심한 귀갓길 성인 PC방에 들러 밀폐된 방에서 야동을 즐감하며 바지를 내리는 취미를 갖고 계신다. 그의 행보에 위법은 없다. 여럿 거쳐간 마우스 만진 손으로 거시기를 만지다 몹쓸 성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성생활에도 제재가 없다. 그런 김 부장님조차 요즘 하실 말씀이 한 바가지다. 급기야는 ‘펜스룰’을 들먹이시니 번번이 원치 않는 회식에 끌려나가는 그 부서 여자 직원들은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와중에도 가르치려 드는 이른바 ‘미투플레인’(남성이 여성에게 미투 운동을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행동을 의미하는 신조어) 남자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수만 가지겠으나, 가장 실소를 금치 못하겠는 것은 ‘피해자 서사’가 넘쳐 피로감이 크다는 걱정이다. 어쩌지? 가해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데. 사실이 아니거나, 합의에 의한 관계이거나, 카드 결제 내역을 보고 뒤늦게 알았지만 기억은 도통 안 나기 때문에.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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