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으로 연재되다가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된 엔 ‘이시다’라는 이름의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시다’는 첫째 딸에게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던 아버지가 붙인 이름으로,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 같은 표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넌 아비처럼 무시당하고 살면 안 돼!”라는 소망으로 붙은 이름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이시다’님이 아닌 ‘시다’씨의 것이다. ‘시다’씨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는 막내 직원이다. 안동에서 자라 부모에게서 독립해 서울에 방 한 칸을 얻어 홀로 살아가는 이시다에게 일상의 닻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윤발이’라는 이름의 햄스터 한 마리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0대를 관통한 외환위기 </font></font>삶의 끝에 아무것도 남길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을 체념으로 대체하면서 살아가는 듯한 이시다는 홀로 서울에서 비혼 직장인으로 살게 되기까지 어떤 삶의 경로를 걸었을까. 이 보여주지 않는 이 경로를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최근에 출판된 《IMF 키즈의 생애》다.
책은 흔히 IMF 위기로 일컬어지는 1997년의 외환위기 당시 10대였던 1980년대생 7명을, 마찬가지로 1980년대생인 저자 안은별이 인터뷰해서 엮은 책이다. 책 제목만 보면 7명의 삶이 외환위기로 갑작스런 전락을 겪었을 것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터뷰이 대부분은 외환위기의 직접적 여파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직업을 가진 부모 아래 자랐다. 그런데도 이들이 외환위기 이후 변해버린 시대상으로부터 안전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 30대인 이들의 생애사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밟은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이 교육의 서사는 직업의 서사와 인생의 서사로 직결된다. 이들 스스로, 또는 그들의 부모는 교육을 도약이나 성공 혹은 탈출의 유일한 도구로 여기지만, 결국 교육마저 모두의 성취가 허락되지 않는 확률 싸움이다. IMF 키즈들의 삶은 그 싸움을 뚫고 명문대에 안착한다 해도 기대했던 ‘성공’이나 ‘안정’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때 남은 선택지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의미’ 또는 ‘쾌락’을 찾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관리하는 것이다.
단 7명의 삶, 그것도 주관적 기억과 편집에 의존한 회고로 시대를 읽어내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7명의 이야기를 읽고나면, 1997년 이후의 한국 사회에 얼마나 다양한 맥락에서 전락과 단절이 일어났는지 절감하게 된다.
개인들이 예상할 수 없었을 그런 단절은 IMF 키즈와 그 부모들이 내린 ‘나름대로 최선인’ 선택을, 실은 선택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구조와 상황이 제한하는 선택지들 안에서 그 여파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내리는 선택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빚어낸다. 선택은 불완전하나마 선택이긴 하지만, 그런 선택들에서 드러나는 경향성조차 각 인물의 특성 때문만으로 결론짓기는 어렵다.
줄어든 선택지에도 그 선택지 안에서 단기적 최적화를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되는 것에도 구조적 압력이 작동한다. 어쩌면 그 선택들이 지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의 선택들과 선택의 결과들을 서사화하는 방식만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온전한 선택이며, 그게 곧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 태도는 과거에 대한 회고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개인의 상상력을 결정짓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힘 </font></font>인터뷰이 7명 중 하나인 김마리의 말로 책은 끝난다. “미래를 그릴 때 현재를 그대로 연장하는 대신, 여지를 많이 두는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시간대, 전혀 다른 상황을 거쳐왔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내 맘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말이다. 현재의 경향을 그대로 연장해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다른 미래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는 진실로 힘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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