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조원’!
평창겨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2011년 국내의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추산한 경제 효과다. 삼수 끝에 올림픽을 유치한 기쁨에 취한 듯, 대회 유치를 이끈 정부와 토건세력은 애드벌룬을 띄우기에 바빴다. 장밋빛 전망은 천문학적 개최 비용과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회 분산 개최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일축하는 근거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대회가 임박한 지금 ‘64조원’을 입에 올리는 이는 거의 없다. 평창올림픽의 경제 효과는 단지 신기루에 불과할까. 가리왕산의 소중한 자연 유산까지 희생한 평창올림픽은 결코 신기루로 끝나서는 안 된다.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남는 장사’를 한 대회는 극히 드물다. 노르웨이에서 1994년 열린 릴레함메르겨울올림픽이 거의 유일한 대회로 꼽힌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경기장 신축을 최대한 자제했고, 선수촌을 비롯한 각종 시설을 가건물로 지어 대회 직후 바로 철거해 사후 관리비를 대폭 줄였다. 노르딕스키와 알파인스키 등이 열렸던 스키장은 여름에 트레킹과 하이킹 코스로, 아이스하키 결승전이 열린 호콘스홀은 핸드볼과 실내축구 경기장, 콘서트홀로 변신하는 등 효율적인 사후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이처럼 겨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구 2만6천 명에 불과한 소도시 릴레함메르는 연간 관광객 35만 명이 찾아와 매년 185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북유럽의 관광 명소가 됐다.
투입 예산만 13조여원평창도 릴레함메르처럼 될 수 있을까. 대회를 50여 일 앞둔 지금 조짐은 그리 좋지 않다. 대회가 끝난 뒤 평창 인근에 지은 각종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 확정되지 않은 게 무엇보다 큰 불안 요소다. 올림픽은 도시 단위로 열리기 때문에 여러 시설이 한 도시에 집중된다. 대회가 끝난 뒤 이 시설의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은 온전히 해당 지역의 몫이다. 이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관리비가 늘어 지방정부는 재정난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올림픽 개최 뒤 주민들의 삶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화려한 잔치 뒤 엄청난 빚을 떠안는 ‘올림픽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다.
30년 전 열린 ‘88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열려 대회 시설과 인프라가 충분히 활용됐다. 개최의 정치적 배경과 준비 과정에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서울 시민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평창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에 불과하고 인접한 강릉도 인구가 21만 명에 불과한 중규모 도시다. 인구와 경제 면에서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평창올림픽을 위해 강원도 지역에 투입된 예산은 13조7천억원에 달한다. 이 중 경기장 건설에 8800억원, 고속철도 등 인프라와 부대시설 조성에 11조원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올림픽 시설이 평창과 강릉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올림픽 인프라를 감당할 만한 수요를 창출하기 힘든 곳이다. 자칫 올림픽 인프라가 이 지역사회에 막대한 운영비를 남기는 ‘올림픽의 저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강원도 지역 시민단체들이 2015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를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벌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2014년 말 IOC가 올림픽 대회 유치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산 개최를 허용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키자, 시민단체들이 올림픽 비용을 줄이기 위한 분산 개최 청원에 나섰다.
당시 가 국내 중견 건축설계 업체 2곳에 의뢰해 분산 개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2015년 3월9일치 1면 기사 참조), 아이스하키 경기장과 알파인스키 경기장 등을 서울과 전북 무주의 기존 시설을 활용할 경우 3658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와 무주 스키 리조트 시설을 재활용하면 경기장 신축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회 뒤 시설 유지비가 별도로 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유지비만 연 200억 예상반면 강원도 단독 개최에 따른 비용은 대회 이후에도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추산됐다. 가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보니 평창올림픽 시설 유지비는 연간 200억원을 넘었다. 평창슬라이딩센터 유지비가 연간 31억원,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장은 29억원 등이다. 이로 인해 강원도의 올림픽 시설관리 적자 규모는 연간 165억원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평창 단독 개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의 분산 개최 청원운동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문제는 이처럼 불 보듯 뻔한 ‘올림픽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림픽 인프라를 활용할 지역 수요 창출은 제쳐두고라도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조차 확정된 게 없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국회 업무보고 때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12월 말까지 평창올림픽 관련 시설의 사후 활용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활용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곳은 전체 7개 신축 경기장 가운데 평창슬라이딩센터, 강릉하키센터,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강릉오벌 등 3곳이다. 1163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올림픽플라자는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개·폐회식에만 사용한 뒤 철거해 기념공원으로 만든다는 게 기본 구상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설계안이 확정되지 않았다.
사후 활용 방안이 결정된 4곳도 운영 주체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 운영권은 조직위원회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간다. 하지만 강원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강원도가 최근 도의회에 제출한 행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보조경기장을 포함한 전체 13개 경기장 가운데 도가 관리해야 하는 7개 시설의 운영수지를 분석한 결과 연간 101억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이 36억8200만원으로 예상 적자가 가장 컸고,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22억5400만원, 강릉 하키센터는 21억4300만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강원도개발공사가 운영하는 스키점프·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 3개 시설의 적자액은 11억4300만원,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의 예상 적자액은 9억900만원으로 추산됐다.
강원도의 재정 상태로는 이 비용을 도저히 떠안을 수 없다. 2018년 기준으로 도의 재정자립도는 21.3%로, 전국 평균인 47.1%에 크게 못 미친다. 특히 강릉시와 평창군, 정선군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18.7%, 11.8%, 25.5% 수준으로 열악하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사후 활용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세 경기장 외에 전문 체육시설인 스피드스케이팅·강릉하키센터·슬라이딩센터·스키점프 등 4개 시설을 국가가 관리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떠넘기기그러나 주무 부처인 문체부의 반대로 강원도의 요구가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도종환 장관은 2017년 9월22일 국회에 출석해 평창올림픽 시설의 국가 관리 근거를 만들기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법 개정은 그것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예산 수천억원을 투입해 만든 올림픽 시설을 두고 국가와 지자체가 서로 ‘떠넘기기’를 하는 것이다.
경기장 사후 관리 주체 논란은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하는 문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사후 활용 방안이라는 ‘콘텐츠’를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대회가 끝난 뒤 올림픽 열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콘텐츠가 없으면 관광객의 발길을 잡지 못한다. 관광객이 찾지 않으면 거액이 투입된 올림픽 시설은 자칫 혈세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올림픽 대회의 흥행을 결정짓는 입장권 판매가 아직까지 부진한 것도 걱정거리다. 전체 판매 목표 107만 장 가운데 2017년 11월16일 기준으로 39만 장이 팔려 목표량의 40%를 넘지 못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은 목표량 22만 장 중 4.3%에 불과한 1만 장이 팔렸다. 이는 평창겨울올림픽에 대한 나라 안팎의 관심이 그만큼 저조함을 드러낸다.
기업들의 후원금도 최근에야 목표액을 채웠다. 조직위는 2017년 12월18일 현재 기업 후원금이 목표액 9400억원을 초과한 1조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치르는 일본과 뚜렷이 대비된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의 기업 후원금 목표액은 1조4천억원인데 벌써 3배 가까운 4조원이 모금됐다. 그만큼 일본 기업들이 도쿄올림픽의 광고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기업 후원금은 평창올림픽 대회 전체 예산 2조8천억원의 3분의 1(33.6%)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기업들이 올림픽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면, 대회를 둘러싼 축제 분위기의 조성에 큰 도움이 된다. 평창겨울올림픽 후원사는 모두 49곳에 이른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엘지(LG), 에스케이(SK) 등 대기업부터 트랙터 제조사인 대동공업, 대회 기간 중 한우를 공급할 평창영월정선축협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업종이 다양하다.
삼성은 이번 대회에 총 1천억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현금 800억원에 대회 운영에 필요한 프린터 등 200억원 규모의 현물이 제공된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올림픽 공식 파트너다. 다른 후원사들은 국내에서만 올림픽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삼성은 전세계를 무대로 홍보할 수 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때는 참가 선수 전원에게 약 1만2500대의 갤럭시 휴대전화를 준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각종 모바일 기기를 협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LG, SK의 협찬 규모는 250억~5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대회 기간에 사용될 각종 차량을 지원한다. LG는 공식 홍보 영상, 옥외광고물 제작 등을 포함한 마케팅 전반을 대회가 끝날 때까지 지원한다. SK는 대회 운영에 필요한 정유를 제공한다. 기업들은 또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을 맡아 훈련과 각종 장비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대회 재정은 맞췄지만…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는 기업들의 막판 후원 활동으로 대회 재정은 균형을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12월19일 강릉행 KTX 대통령 전용 열차 안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대회가 흑자는 아니더라도 수지 균형은 대충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저주를 피할지는 축제가 끝난 뒤에 알 수 있다. 올림픽 인프라 활용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축제의 여파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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