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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넘어 영그는 첫 금메달

3월9~18일 ‘또 하나의 평창’ 패럴림픽…

한국 전 종목 출전 금1개·은1개·동2개로 사상 첫 ‘톱10’ 도전
등록 2017-12-26 17:35 수정 2020-05-03 04:28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가 퍽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가 퍽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2010년 3월21일 오전(한국시각), 캐나다 밴쿠버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장애인 컬링 대표팀이 밴쿠버 패럴림픽센터에서 열린 2010년 밴쿠버겨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열린 준결승에서 예선에서 한 차례 패배를 당했던 강호 미국을 만나 7-5로 설욕에 성공했다. 곧바로 열린 결승전 상대는 세계 최강 캐나다였다. 대표팀은 캐나다를 상대로 마지막 8엔드까지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 7-8로 졌다. 대회 전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김학성, 조양현, 김명진, 박길우, 강미숙 등 다섯 하반신 장애인이 일궈낸 기적이었다.

이날 쾌거가 있기까지 대표팀은 말 못할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국내에는 전용 컬링장 2곳이 있었지만, 이를 빌리지 못해 수영장에 물을 얼려 훈련해야 했다. 바지 속 오줌 주머니가 터져 빙판 위에 쏟아졌던 창피한 일을 당한 적도 있다. 비록 겨울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은 놓쳤지만, 이들이 따낸 은메달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틀어 겨울올림픽 단체종목에서 따낸 첫 메달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이번 무대는 안방인 강원도 평창이다. 겨울스포츠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겨울올림픽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김기훈·전이경·김동성·안현수 등 빛나는 별 같은 스타들을 배출한 쇼트트랙과 이제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된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덕분이다. 하지만 화려한 겨울올림픽과 달리 그 직후에 열리는 겨울패럴림픽에는 여전히 생소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한국의 겨울패럴림픽 출전 역사는 짧다. 한국이 겨울패럴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 것은 1992년 제5회 티뉴-알베르빌 대회가 처음이었다. 이후 10년 만인 2002년 제8회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따냈다. 2006년 제9회 토리노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2010년 제10회 밴쿠버 올림픽에선 휠체어컬링의 은메달 덕분에 역대 최고인 종합 18위에 올랐다. 하지만 2014년 제11회 소치 올림픽에선 또다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동안 징검다리 메달 레이스를 벌여온 대표팀의 ‘징크스’를 생각하면, 이번 대회 때 다시 한번 메달이 기대된다.

평창겨울패럴림픽은 3월9일부터 18일까지 열흘 동안 열린다. 50여 개국 3천여 명의 선수단(임원 포함)이 총 6개 종목에서 80개의 금메달을 놓고 실력을 겨룬다. 한국은 사상 처음 전 종목 출전권을 따내며 최대 39명(임원 5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소치 대회(선수 27명)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목표도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사상 첫 ‘톱10’에 도전한다. 이번 대회에 메달이 기대되는 유망주들을 소개해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상 첫 금메달 후보 노르딕 신의현 </font></font>
노르딕 금메달 후보 신의현.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노르딕 금메달 후보 신의현.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두 눈을 떴다. 주위에선 나흘만이라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릎 아래 두 다리가 사라져 있었다. ‘차라리 죽게 놔두지…’라는 절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2018년 평창겨울패널림픽 노르딕스키 종목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신의현(38·창성건설)이 사고를 당한 것은 2006년 2월이었다. 그날은 신의현의 대학 졸업식 전날이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직전, 스물여섯 꽃다운 청춘에게 믿기지 않는 악몽이 찾아왔다.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 맞은편에서 다가온 차량과 정면 충돌했다. 부모는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아들의 두 다리를 절단했다. 의식을 회복한 신의현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교통사고 이후 사람들과 접촉을 꺼리던 그에게 다시 한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준 것은 운동이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3년쯤 지난 2009년 10월, 선배의 제안으로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심장박동을 느끼며 큰 감동을 느꼈다. “숨이 차고 심장이 뛰더라. 그때 내 삶의 심장도 다시 뛰게 된 것 같다.”

신의현은 이후 종목을 넓혀갔다. 겨울엔 장애인 아이스하키, 여름엔 휠체어사이클을 즐겼다. “어릴 때 얼음 위에서 썰매 타고, 눈밭 언덕에서 비료 포대 탄 게 전부”였던 그가 처음 스키를 접한 것은 2015년 무렵이었다. 두 다리가 없으니 스키와 썰매를 합친 ‘좌식 스키’ 위에 앉아야 했다. 좌식 스키에는 썰매 바닥에 스키가 달려 있다. 허벅지를 썰매에 단단히 묶고 강한 팔 힘으로 스틱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눈 구경을 할 수 없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썰매 바닥에 스키 대신 롤러를 달고 훈련한다.

신의현은 평창패럴림픽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1km), 중거리(10km), 장거리(15km)와 장애인 바이애슬론 스프린트(7.5km), 중거리(12.5km), 장거리(15km) 등 총 6개 세부종목 출전권을 따냈다. 이 가운데 크로스컨트리 15km가 금메달에 가장 가까이 있다. 그는 2017년 1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장애인 노르딕스키 크로스컨트리 5km와 15km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2014 소치패럴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막심 야로비(29·우크라이나)와 좌식 노르딕스키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눈이 녹아 약간 질퍽거리는 3월에 경기가 열리는 점이 외국 선수보다 신의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2007년 결혼한 베트남 출신 아내와 초등학생 두 아이의 존재도 그의 도전을 자극한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이 메달은 한국의 겨울패럴림픽 출전 사상 첫 금메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환상의 짝꿍’ 양재림과 고운소리 </font></font>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나는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다. 그녀는 나의 가이드 러너다. 그녀의 목소리만 믿고 나는 달린다. 때론 시속 100km로, 보이지 않는 기문들 사이를…. 우리의 연결에 장애는 없다.” 한 이동통신사의 캠페인 광고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평창패럴림픽의 또 다른 금메달 기대주인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 양재림(28)과 그의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22·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다.

양재림은 미숙아 망막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3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엄마 뱃속에서 7개월 만에 몸무게 1.3kg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그로 인해 왼쪽 시력을 잃었고, 오른쪽 시력도 비장애인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는 눈 바로 앞에 있는 사물만 겨우 알아볼 수 있다.

양재림은 시력이 없는 그에게 몸의 균형 감각을 키워주려는 엄마의 뜻에 따라 5살 때 스키를 배웠다. 이후 미대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한동안 폴을 놓았다가 2009년 이화여대 동양화과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부모는 흰 눈에 반사되는 자외선 때문에 오른쪽 시력까지 잃을까봐 운동을 반대했지만, 끝내 딸의 뜻을 꺾진 못했다.

처음 출전한 2014년 소치패럴림픽은 그에게 큰 좌절을 안겼다. 메달 가능성인 높았던 장애인 알파인스키 회전 종목에서 넘어지고 만 것이다. 대회전 종목에선 4위에 머물러 아깝게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훈련 중 부상 때문에 3개월을 쉬었고, 대회 개막 일주일 전에 운동을 재개한 탓이 컸다. 너무나 아쉬웠다.

이번엔 다르다. 가이드 러너로 이젠 한 몸이나 다름없는 ‘단짝’ 고운소리를 만났다.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출신 고운소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선수생활을 막 접으려던 찰나에 ‘재림 언니’를 만났다. 2015년 8월이었다. 고운소리도 양재림과 같은 학교(이화여대)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가이드 러너는 시각장애 선수의 ‘눈’이다. 가이드 러너가 형광 조끼를 입고 먼저 출발한 뒤 시각장애 선수에게 무선 헤드셋으로 순간마다 코스 상황을 알린다. 선수는 신호에 따라 속도와 움직임을 결정하며 활강한다. 두 선수는 훈련뿐 아니라 여행과 야구 관람 등 취미생활까지 함께하며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가 됐다. 고운소리는 “팀워크로는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고, 양재림도 “소리를 만난 것은 내겐 큰 축복”이라며 화답했다. 양재림과 고운소리는 평창패럴림픽에서 장애인 알파인스키 활강, 슈퍼대회전, 대회전, 회전, 슈퍼복합 등 5종목 출전권을 따냈다. 이 가운데 메달 가능성이 가장 큰 종목은 회전이다. 둘은 “회전 등 4개 종목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빙판 위 메시’ 아이스하키 정승환 </font></font>

5살 때였다. 집 근처 공사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순간 철구조물 같은 게 무너져내렸다. 피투성이가 된 정승환(32·강원도청)은 병원에 실려갔다. 의사는 그의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너무 어려서 아팠던 기억보다 병원생활이 너무 길었던 기억만 남는다”고 했다.

그때부터 의족은 몸의 일부가 됐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전남 신안군 도초도)을 떠나 첫 타향살이가 시작됐다. 그해 6월 그의 삶이 바뀌었다. “아는 사람을 따라 경기도 성남 탄천 빙상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장애인 아이스하키를 처음 봤고, 하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주말마다 썰매, 스틱, 퍽과 씨름하며 기분 좋은 땀을 흘렸고, 2년 뒤 그의 가슴엔 태극마크가 새겨졌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 정승환의 별명은 ‘빙판 위의 메시’다. 빼어난 실력과 잘생긴 외모 덕분에 평창 겨울올림픽·패럴림픽 홍보 영상에도 등장한다. 2012년 노르웨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선 한국에 은메달을 안기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고, 2014년 소치겨울패럴림픽에서 개최국 러시아전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자 현지 언론에선 그를 ‘로켓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라고 극찬했다.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즐비한 빙판 위에서 그의 작은 체구(167cm, 53kg)는 더욱 빛난다. 그는 세계적인 하키 스타이자 한국의 에이스다. 대표팀 맏형 한민수(48), 키 180cm의 만능 스포츠맨 이종경(44)이 정승환과 공격의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다. 이 종목에서 한국의 세계랭킹은 7위지만, 안방에서 캐나다·미국 등 세계 최강국들과 선전할 경우 메달권 진입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 밖에 8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기적의 은메달’을 일군 휠체어컬링도 유력한 메달 후보다.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 세컨드 차재관(46), 서드 이동하(45)와 정승원(60) 등 바뀐 얼굴로 메달에 도전한다. 이들은 이천장애인종합훈련원에 새로 만들어진 컬링 전용 경기장에서 맹훈련 중이다.

이 가운데 방민자는 유일한 홍일점으로 리드를 맡고 있다. 가장 먼저 스톤을 던져 바둑의 포석처럼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이다. 그는 31살이던 1993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고, 이후 모든 인간관계를 끊으며 은둔생활을 해왔다. 그 와중에 여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컬링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태극마트를 가슴에 단 어엿한 국가대표다. 방민자는 “그리운 여동생과 잠시 떨어져 있지만 반드시 값진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고 했다. 평창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반짝반짝 영글어가고 있다.

김동훈 스포츠팀장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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