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땅’ 강원도 평창에서 평화의 축전 올림픽이 열린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짙은 안개 속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는 시작될 기미가 없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평창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다른 나라 대표단을 안심시키고, 평창겨울올림픽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높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림픽으로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에 훈풍을 몰고 올 수 있을까.
평창은 분단의 공간이다. 갈라진 한반도에서도 분단도인 강원도에 속해 있다. 평창과 강릉을 가르는 태백산맥은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땅이다. 올림픽은 분쟁의 땅에서 피는 꽃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을 시작한 이유도 도시국가들 사이의 빈번한 전쟁을 잠시라도 멈추기 위해서였다. 평화가 곧 올림픽 정신이며, 평창은 올림픽에 가장 어울리는 도시다. 분단의 땅에서 평화가 열린다. 평창은 한반도의 기회이며 동시에 도전이다. 평창이 평화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분단의 땅에서 열리는 평화올림픽평창은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올림픽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반도에서 민주의 문을 열었다.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올림픽’은 군부정권이 넘지 말아야 할 하나의 선이었다. 당시 국제사회의 인권단체들은 올림픽 불참을 수단으로 한국의 인권 개선을 요구했다. 올림픽이 폭력의 개입을 막았고 결국 민주주의로 가는 문을 열었다.
또한 서울올림픽은 북방의 문을 열었다. 1980년 옛 소련의 모스크바올림픽은 서방국가들이 불참했고, 1984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부했다. 두 번의 반쪽 올림픽을 치른 뒤라서, 사회주의국가들의 참여가 서울올림픽 성공의 열쇠였다. 그래서 전두환 정부는 북방의 문을 두드렸고, 사회주의권의 참여를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했다. 1983년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선 유일한 이유는 모두 올림픽 때문이었다.
평창은 한반도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이다. 평창은 어려운 유치 경쟁을 벌였고, 삼수 끝에 올림픽 개최권을 얻어냈다. 초기 유치 과정에서 우리는 ‘분단의 땅에서 열리는 평화올림픽’을 강조했다. 북한과의 공동개최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았다. 마침 김정은 체제가 강원도 원산 인근 마식령에 스키장을 만들면서 공동개최 가능성이 진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회는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의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협력 가능성은 모두 물 건너갔다. 마식령은 국제 경기를 치를 자격을 얻지 못했고, 겨울올림픽 참여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자는 제안도 실현되지 못했다.
남북관계는 최악이고, 북핵 문제는 여전히 악화의 상승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끝이라는 체념과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합리를 섞어,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다르다. 국제사회는 한반도를 위험한 땅으로 본다. 일부 국가들은 한반도의 긴장을 우려해 평창올림픽 참여를 고민한다.
평창이 평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을 방문했을 때,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했다. 올림픽 휴전은 고대 올림픽의 핵심이다. 집을 떠나 경기장에 도착할 때부터, 경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즉 개막 일주일 전부터 폐막 일주일 뒤까지 분쟁을 중단하자는 제안이다. 1993년부터 관례적으로 올림픽 주최국이 제안하고, 유엔총회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의결했다. 유엔은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11월13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도 북한도 모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평창에서 올림픽 휴전은 관례가 아니라 실현해야 할 과제다.
이념과 정파를 떠난 염원
올림픽 휴전은 대체로 겨울올림픽 다음달에 열리는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까지 유효하다. 3월에 열리는 패럴림픽 기간이 바로 한-미 군사훈련 기간과 겹친다. 문재인 정부는 올림픽 휴전 기간에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단순히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넘어서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그동안 북한은 핵무장 완성을 향해 질주했고, 국제사회는 그때마다 제재와 압박으로 대응했다. 그야말로 억지와 압박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이제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때다. 북한도 정치적으로 핵무장 완성을 선언했기에 숨을 고르고 있다. 평창은 북핵 문제가 그야말로 문턱을 넘기 직전에 열린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려면 악순환의 상승을 우선 멈춰야 하는데, 올림픽 휴전이 기회의 문이다. 개막 일주일 전인 2월 초부터 장애인올림픽 폐막 일주일 후인 3월 말까지 올림픽 휴전 기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북핵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보수정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강원도 의회는 이미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를 의결했다. 한-미 군사훈련을 바라보는 보수적 시각에 비춰보면 파격이고, ‘이념과 정파를 떠난 합리적인 결론’이다. 강원도는 평창의 성공이 절실하다. 평창 이후 해결할 과제가 쌓여 있지만, 우선 성공해야 과제의 무게도 덜 수 있다.
올림픽 휴전이 북핵 해결의 입구지만, 출구까지 가는 길은 아주 멀다. 북핵 문제의 역사는 길고,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됐기에 해결 과정 역시 길고 복잡하다. 다만 올림픽은 언제나 극적인 감동의 무대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북핵 문제가 악화의 길이 아니라 해결의 길로 갈아탈 수 있는 교차로가 바로 평창이다.
북한은 평창에 올까
체육은 언제나 관계의 문을 열었다. 1971년 우연처럼 다가온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처럼 말이다. 중국은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고, 마침 리처드 닉슨 정부도 중국의 문을 두드리던 시점이었다. 핑퐁 외교는 미-중 관계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 과정에서 작동한 ‘베이스볼 외교’도 마찬가지다. 적대관계에서 체육은 마음을 여는 문이다.
남북관계에서 체육 교류의 역사는 길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나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남북 체육회담이 열렸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만남이었다. 대화 자체가 어려운 냉전시대였지만, IOC의 중재로 남북한은 단일팀의 단가로 을 선정하자는 데 쉽게 합의했다. 물론 단일팀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팀이 중국을 꺾고 우승했다. 그때 이 울려퍼지고 한반도기가 올라갔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남북한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 입장했다. 그때 개막식에 모인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낸 이유는 그 순간이 올림픽 정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돼 올림픽에서 공동 입장조차 못하고 있다.
평창은 체육 교류의 기회이며,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다. 남북관계는 모든 연결 부위가 하나도 남김없이 단절됐다. 2016년 2월 비바람 부는 들판에서 꺼질 듯 말 듯 홀로 불을 밝혔던 개성공단마저 중단되면서, 그야말로 ‘남북관계 제로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개발에 몰두하면서 남북 교류의 문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평창에 북한이 올까? 2014년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남북관계가 악화됐음에도 북한이 참여했다. 북한의 2인자와 3인자인 최룡해와 황병서가 직접 인천을 방문했다. 북한은 체육을 남북관계 재개의 기회로 생각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호응하지 않았다. 모든 남북관계가 중단된 지금, 평창은 남북 접촉의 기회고 남북관계 재개의 출발이다. 북한의 참여는 평창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다른 나라 대표단을 안심시키고, 평창겨울올림픽에 관한 세계적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모든 남북관계가 중단됐지만, 북한은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에 무술 시범단을 보냈다. 필자가 무주에 내려가 북한의 장웅 올림픽 위원을 만났을 때 그는 “체육은 정치와 다르지만, 그래도 정치가 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여러 가지를 계산할 것이다. 평창올림픽 참여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반영한다.
아직 북한의 참여 여부는 안갯속이다. 유일하게 출전 자격을 얻은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에 북한은 끝내 등록하지 않았고, 결국 출전권은 후순위 선수에게로 넘어갔다. 출전 자격 규정에 따르면, 북한은 평창에 단 한 종목도 참여할 수 없다. 선수가 없으면 임원도 응원단도 못 온다. 물론 아직 변수는 있다. IOC는 북한이 참여할 의사가 있으면 ‘와일드카드’를 줄 생각이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북한이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다른 국가들도 북한의 출전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IOC는 평창의 성공을 위해 다각도로 북한과 협의하고 있다.
평창이 여는 문
어두울수록 별이 빛나듯이, 이제 평창이 기회의 문이다. ‘평화 올림픽’으로 성공해서 한반도가 더 이상 위험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지구촌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참여해서 남북 교류의 문을 열고, 남북대화의 문도 열고, 북핵 해결의 문도 열기 바란다. 평창에 이어 2020년 도쿄여름올림픽, 2022년 베이징겨울올림픽이 예정돼 있다. 그야말로 평화의 제전이 한국, 일본, 중국에서 연달아 열린다. 올림픽 평화가 동북아 지역의 대결 구도를 허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창의 어깨가 무겁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힘을 모아서, 평창으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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