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키만 한 스키를 신은 육중한 체격의 사나이가 몸을 던져 설원에 누운 뒤 소총을 겨눈다. 이마로 흘러내린 금발을 뒤로 젖히고 과녁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은 파란색이지만 유니폼 팔뚝엔 태극마크가 반짝 빛난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러시아 출신 바이애슬론 귀화 선수 티모페이 랍신이다. 바이애슬론은 눈 위에서 스키를 타며 사격을 하는 스포츠다. 그는 요즘 설원을 가를 때 휘날리는 금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뭇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한국판 안현수’ 바이애슬론 랍신
“저는 한국의 바이애슬론 선수 랍신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국민들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2017년 12월16일 프랑스 안시-르그랑보르낭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월드컵 3차 대회 남자 10km 스프린트에서 23분22초의 기록으로 106명 중 8위에 오른 뒤 랍신이 한국 팬들에게 건넨 인사말이다. 이날 기록은 역대 한국 바이애슬론 월드컵 최고 성적이다.
“삼겹살 가장 좋아요. 매, 매운 음식도 잘 먹어요.” 즐겨 찾는 한국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랍신이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이었다. 2017년 5월 훈련 중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재활을 하면서 총 대신 펜을 잡고 한국어를 익혔다. 재활 기간에 힘이 돼준 한국 코치진에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전해 주변에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박철성 바이애슬론 대표팀 감독은 “낯설 텐데 큰 거리감 없이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게 무엇보다 보기 좋다”며 “삼겹살뿐만 아니라 보쌈, 제육볶음, 불고기, 김치 등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랍신은 한국에서 첫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한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20℃에 이르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났다. 설원으로 뒤덮인 마을에서 3살 때부터 스키를 타다 중·고등학교 시절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뛰었다. 뒤늦게 사격에 재미를 붙여 성인 때부터 바이애슬론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월드컵에서만 통산 6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강자의 면모를 뽐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러시아 대표팀 훈련장에서 랍신을 대하는 동료 선수들과 코치진의 태도가 싸늘해졌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러시아 대표팀에서 저를 훈련에 안 데려갔어요.” 결국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도 2016년 말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랍신은 2017년 11월 초 평창겨울올림픽 출전 귀화 선수들을 다룬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선수들 개별 소속팀의) 코치진끼리 파벌 싸움에 휘말려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과거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시절 대표 자리를 잃은 뒤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안현수)과 판박이인 셈이다. 랍신은 “한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좋은 동료들과 같이 훈련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안현수가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겨주며 쇼트트랙 흥행에 힘을 보탰듯이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내 한국에 바이애슬론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설상 종목 사상 첫 메달 기대감“지금이 아니면 올림픽 메달에 다시 도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주변 여건에 끌려 한국 국적을 선택했습니다.” 러시아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한 랍신은 결국 귀화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2017년 3월 대한민국 귀화 선수 가운데 가장 늦게 대표팀에 승선했다. 랍신의 합류는 바이애슬론 불모지인 국내 대표팀에도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박 감독은 “랍신이 처음 국내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을 때는 국내 선수들과 기록이 4분 넘게 차이 났지만 지금은 2분30초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랍신은 빙상이 아닌 설상 종목에서 한국에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안겨줄 후보로 꼽힌다.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핑을 문제 삼아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면서 랍신의 메달 획득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을 포함해 겨울올림픽 바이애슬론에서만 금메달 21개를 따낸 부동의 강자다. 박 감독은 “랍신은 정신력이 무척 뛰어난 선수다”라며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돼 제 컨디션을 찾으면 메달 획득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랍신은 12월3일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나선 2017∼2018 월드컵 1차 대회 남자 10km 스프린트에서도 13위에 올라 메달 기대감을 높였다.
이제 꿈의 무대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랍신과 박 감독 모두 메달을 따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숙제로 체력 보완을 꼽았다. 특히 경기 막판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을 극복해야만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감독은 “5월에 무릎 부상을 당한 뒤 다리 근육이 약해졌다”며 “남은 기간 이를 보완해 경기 후반에 밀리지 않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랍신도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내가 운동하는 동안 내 나라에서 언제 다시 올림픽이 열릴지 알 수 없는 만큼 이번에 꼭 메달을 목에 걸겠다”라며 “올림픽이 끝나더라도 한국 바이애슬론의 부흥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 소치 땐 1명, 평창엔 19명랍신을 포함해 평창겨울올림픽에선 역대 최다인 19명의 귀화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스포츠의 다문화·다국적 시대를 상징하는 이들은 아이스하키(남 7명·여 4명), 바이애슬론(4명), 스키(2명), 아이스댄스(1명), 루지(1명) 대표팀에 포진해 있다. 국적별로는 캐나다(8명), 미국(5명), 러시아(4명), 노르웨이(1명), 독일(1명) 등의 순서다. 2014 소치겨울올림픽 때 여자 쇼트트랙의 공상정이 유일한 귀화 선수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었다.
랍신 외에 스키 종목의 김마그너스와 이미현도 기대되는 귀화 선수다. 이중국적자였던 김마그너스와 이미현은 각각 2015년 4월과 12월 한국 국적을 택했다. 2017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마그너스는 이번 대회보다는 2022년 베이징겨울올림픽 메달이 기대되고, 이미현은 메달 획득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예전과 달리 귀화 선수가 부쩍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올림픽 출전을 꿈꾸는 외국 선수들과 선수층이 얇은 한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이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따낸 53개 메달(금 26개, 은 17개, 동 10개)은 모두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 나왔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 8개, 은 4개, 동 8개로 역대 최고인 종합 4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려면 빙상 외 다른 종목에서의 선전이 필수적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여름올림픽도 그렇지만 한국은 올림픽에서 특정 종목 메달 편중이 심하다”며 “대회마다 10위권 이상 좋은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귀화 선수 영입 등으로 메달 소외 종목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귀화 선수들의 가세로 대표팀 전체가 좋은 자극을 받고 있는 것도 평창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또 다른 이유다. 2017년 남자아이스하키팀이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한 것은 국내 선수와 귀화 선수가 함께 훈련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기에 가능했다. 양승준 평창올림픽 준비기획단장은 “올림픽 메달이라는 (단기) 성과만을 위해 (우수한 외국 선수들의) 귀화를 추진한 것은 아니다”라며 “(귀화 선수들의 존재가) 국내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밖에 대회의 흥행을 위해선 개최국인 한국이 기존에 강세를 보였던 쇼트트랙 등 빙상 종목뿐 아니라 다양한 종목에서 고루 활약하는 게 중요하다. 겨울올림픽의 최고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유독 귀화 선수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년 넘은 ‘국대’ 귀화 선수 역사물론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잇따른 귀화가 ‘메기 효과’(미꾸라지를 운송할 때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천적인 메기를 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서 살아남듯, 막강한 경쟁자가 다른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파란 눈과 금발의 태극전사들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 낯선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문화 사회인 한국에선 이미 귀화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이가 15만 명을 넘어섰다. 대만 출신 화교였던 배구 선수 후인정이 1994년 귀화한 뒤 이듬해 국가대표에 뽑힌 것을 시작으로, 귀화 ‘국대’의 역사도 20년을 훌쩍 넘었다. 특히 일반 귀화와 달리 의무 거주 기한이나 필기시험이 없는 ‘체육 분야 우수 인재 특별 귀화’ 제도가 2011년 도입되면서 다양한 종목에서 귀화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외국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돈으로 성적을 사려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스포츠 무대에서 민족·국가 간 경계는 허물어졌다. 귀화 선수들이 진심으로 한국 대표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하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양승준 단장은 “귀화 선수를 특정 대회 입상을 위한 ‘반짝 활용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낙후 종목의 저변 확대라는 좀더 큰 틀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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